미국을 세운 ‘건국의 아버지’ 가운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도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 토마스 페인이다.
1775년 4월 19일 매사추세츠 렉싱턴과 콩코드에서 식민지 민병대와 영국군 사이 유혈 충돌이 있었다. 그러나 전투가 시작됐음에도 영국과 싸워 독립을 쟁취하자는 사람은 소수였다. 첫째,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영국과 정면으로 부딪쳐 이길 자신이 없는 상황에서 일을 벌였다 질 경우 반역자로 몰려 교수형을 당할 위험이 있는데 굳이 전쟁까지 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회의론이 다수였다.
1776년 1월 이런 분위기를 일시에 바꿔놓은 팜플렛이 출간된다. 토마스 페인의 ‘상식’(Common Sense)이 그것이다.
당시 식민지 인구가 200만이었는데 이 책은 나오자마자 10만부가 팔려나갔다. 생각이 있는 주민은 거의 다 사 봤다고 보면 된다. 미국 독립의 필요성을 조목조목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어조로 설파한 이 책은 망설이던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돌리게 했다. 이 책이 없었더라면 그 해 7월에 나온 ‘미 독립선언서’도 없었을 것이란 게 많은 사가들의 생각이다.
그는 또 ‘위기’(Crisis)라는 팜플렛을 통해 “지금은 인간의 영혼을 시험하는 시간이다. 한여름 전사와 햇볕 애국자는 이런 위기 상황에서 국가의 부름을 피하려 하겠지만 이에 응하는 사람은 모든 인간의 사랑과 감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 압제는 지옥과 같이 쉽게 정복되지 않지만 싸움이 힘들수록 승리도 더 영광스런 법”이라고 썼다. 독립군 사령관이던 조지 워싱턴은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이 글을 읽어주도록 했다.
그러나 이처럼 독립을 위해 헌신한 그였지만 전쟁이 성공으로 끝난 후에는 찬밥 신세가 됐다. 그 이유는 그가 쓴 ‘이성의 시대’라는 책 때문이었다. 그는 성경에 나타난 기적과 초현실적인 신을 부인하고 이성에 바탕을 둔 사회 건설을 주장했다. 그의 이런 입장은 보수 기독교의 분노를 샀고 1809년 그가 7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자 어떤 교회도 그의 장례식을 거부하는 바람에 집 헛간 옆에 조용히 묻혔다.
10년 뒤 그의 추종자 한 사람이 성대하게 장례식을 치러주기 위해 그의 고향인 영국으로 유해를 가져갔으나 흐지부지 되고 그마저 죽은 후에는 유해가 분실돼 지금은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실정이다.
페인은 18세기를 대표하는 이신론자였다. 이신론이란 신은 시계를 만든 시계공처럼 한번 세계를 만든 후에는 태엽만 감아주고 시계(세계) 작동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르면 기적 등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현상은 무지했던 시절의 오해에 불과한 것이 된다.
17세기 유럽 종교 전쟁의 참화를 직접 목격하면서 영국에서 싹튼 이 주장에 영향을 받은 사람은 페인 하나만이 아니다. ‘독립 선언서’를 쓴 토마스 제퍼슨, ‘최초의 미국인’으로 불리며 유럽에서 명성을 날린 벤저민 프랭클린이 모두 이신론자였고 연방 헌법 초안자인 제임스 매디슨, 국부 조지 워싱턴, 초대 재무장관으로 미국 경제의 기틀을 닦은 알렉산더 해밀턴, 초대 부통령 존 애덤스 등등이 모두 이신론의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이 정도면 이신론과 무관한 ‘건국의 아버지’는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이 세워졌을 당시 국민 다수는 성경을 글자그대로 믿는 전통적 기독교인이었을지 몰라도 엘리트는 이성을 기반으로 한 계몽철학에 물든 사람들이었다. 미국 헌법이 정치와 종교 분리의 원칙을 선언한 것은 이것이 정치가 종교에 개입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진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이들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9.11 테러 현장 인근 회교 사원 건립 문제를 놓고 오바마가 이를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홍역을 치르고 있다. 공화당은 11월 선거를 의식, 호재를 만났다고 이를 물고 늘어지고 국민 대다수도 이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연방 헌법은 종교 문제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오바마가 인기에 영합해 회교 사원 건립 반대에 앞장섰다면 그야말로 지탄받을 일이다. 테러 현장에 모스크를 짓겠다는 발상은 어리석지만 그렇다고 이에 대해 법적 제재를 가하는 것은 미국의 건국이념에 어긋나는 행위다. 정치인들은 당장의 표도 좋지만 역사의 평가를 생각하기 바란다.
민경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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