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찜질방에 푹 빠졌다. 펄펄 끓는 불가마에서 한바탕 몸을 지지고 나면 시름은 온데간데없고 뻐근했던 몸도 새털처럼 가벼워지는 맛에 최소한 일주에 한번은 ‘출석 도장’을 찍는 충성스런 고객이 됐다. 한 주라도 거를라 치면 뭔가 빠뜨린 것처럼 허전하고 몸도 찌뿌드드하니 ‘찜질방 중독’ 초기쯤은 된 것 같다.
찜질방을 그저 뜨끈한 곳에서 찜질이나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직 찜질방의 참 맛은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요즘 찜질방을 갖춘 한인 대형 사우나들은 원스탑 휴식센터라 부를 만하다.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어 식사, 수면, 마사지, 헬스, 미용서비스, 인터넷, TV, 만화 등을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데다 24시간 오픈하는 곳은 숙박까지 해결된다.
남가주에 본격적인 찜질방 바람이 분 것은 LA 한인타운을 비롯 풀러튼, 로랜하이츠, 가든그로브, 토랜스, 터헝가 등 주요 한인 밀집지역마다 대형 사우나가 속속 오픈하기 시작한 최근 1~2년 사이다. 한국의 초대형 찜질방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최근 남가주에서 문을 연 사우나들은 500명 이상을 수용할 정도로 대형화되고 분위기나 시설도 고급스럽다. 볼거리와 즐길 거리도 있다. 일부 사우나는 요가 클래스 등 강좌를 열고 있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매직쇼 등 이벤트도 펼친다.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리는 주말 저녁 찜질방 모습은 버라이어티 그 자체다. 인산인해, 남녀노소 구분도 없다. 갓 돌이 지났을 법한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고 있는 새내기 엄마, 애완견이 새끼를 낳았다는 얘기부터 자녀들 성적 향상 비법까지 시시콜콜 수다 꽃을 피우고 있는 아줌마 부대, 왠지 낯설게 보이는 양머리 수건을 머리에 두른 채 게임에 열중하는 2세 대학생들. 거나하게 한잔 걸치고 몸을 풀러 온 중년의 직장인들,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닭살 커플, 불가마에서 땀을 흥건히 뺀 후 다정하게 둘러앉아 팥빙수를 맛있게 먹고 있는 가족 3대,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누워 만화 삼매경에 빠진 사람 ….
한인들에게 찜질방이란 휴식장소요 사랑방이요 데이트장소까지 겸하는 복합 공간인 셈이다. 찜질방의 본산 한국에서는 한술 더 떠 계모임, 회식은 물론 직장인 회의, 신세대 미팅까지 한다니 한국인들의 찜질방 사랑은 못 말릴 정도다.
‘국민레저’ 찜질방은 언제 어디서 생겼을까. 위키백과사전에 따르면 예전에 숯막 노동자들이 피로를 풀기 위해 시작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한국에서 찜질방이 활성화된 시기는 1990년대 중반부터다. 원래 일본에서 먼저 찜질방이 선보였지만 온돌문화가 익숙지 않아 빛을 보지 못하고 한국에서 새로운 사회, 경제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됐다고 한다.
찜질방은 타인종들에게도 인기다. 양머리 수건을 한 백인, 흑인, 히스패닉 등이 황토방, 소금방, 숯불방 등을 오가며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미국에 상륙한 찜질방이 구들장의 향수를 잊지 못하는 한인들은 물론 타인종까지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 공간과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미국인들이 생면부지 사람들과 함께 한곳에서 목욕을 하고, 찜질을 하며 심지어 수면 공간까지 공유한다니 놀랍기만 하다.
미 지역정보 사이트 ‘예프’ 같은 곳에 가면 찜질방 이용 후기가 꽤 많이 올라와 있다. 이들은 새로 생긴 한인 찜질방에 대한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기도 하고 올바른 찜질법 등을 묻고 답하기도 한다. 특히 LA, 뉴욕, 시카고 등 주요 대도시에 대형 사우나가 잇달아 들어서면서 주류 언론들의 관심도 커졌다. 시카고 트리뷴지는 최근 일리노이주에 문을 연 한국식 사우나에 대해 기자의 체험기와 함께 권고사항까지 소개했다. 이중에는 “한국식 스파에서는 여러 사람이 옷을 벗고 사우나를 하는데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친절한 조언까지 실었다.
찜질방을 찾는 타인종들은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LA보다 먼저 주류사회에 찜질 문화를 선보인 뉴욕의 일부 사우나의 경우 비한인 고객이 머저리티로 역전되기도 했다.
한 업계 전문가는 “타인종들에게 찜질방은 휴식 뿐 아니라 건강과 재미를 동시에 주는 신비로운 체험이며 중독성도 강하다”며 “가장 한국적인 동시에 가장 세계적인 레저”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제 찜질방은 미국 사회에서 한국을 알리는 문화인 동시에 상품으로 거듭나야 할 때다. 또 다시 한류열풍의 재연을 기대해본다.
이해광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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