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한국일보 1면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 우리의 눈과 마음을 끌어 당겼다. 오열하며 성조기 덮인 아들의 관을 쓰다듬는 어머니의 슬픔이었다.
지난 달 말 아프간에서 작전 중 전사한 대니얼 임 병장의 장례식이 오랫동안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던 아프간 전쟁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 도대체 아프간 전쟁은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그리고 미국은 승리할 수 있을까, 아프간에서?
개전 9년을 맞는 아프간 전쟁은 미 역사상 가장 길게 끌어온 전쟁이다. 미군 사망자가 1,200명을 넘어섰고 전비도 3,500억 달러를 쏟아 부었으며 지금도 9만3,000명의 미군이 전투 중이지만 대부분 미국인들은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한국전이 잊혀진 전쟁이었다면 아프간전은 무시당한 전쟁”이라고 프린스턴대 줄리언 젤리저 교수는 비유한다. 우선은 경기침체의 그늘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베트남전쟁 당시와는 달리 징병제가 아니니 반전운동이 일상의 관심사로 확대되지 않는데다 정치권이 아프간 전쟁의 이슈화를 꺼려하는 정략도 한몫하고 있다. 확전은 반대하지만 오바마와 정면충돌을 피하고 싶은 민주당, 전쟁은 지지하지만 오바마의 손을 들어주기 싫은 공화당, 이들의 서로 다른 속마음이 같은 결과를 빚어낸 셈이다.
그래도 지난 한두달 인터뷰 설화로 아프간 사령관이 전격 경질되고, 군사 기밀문건이 인터넷 사이트 위키리스크를 통해 대량 폭로되면서 ‘무시당해온 전쟁’도 한발씩 관심권으로 들어오고 있다. 뜨겁진 않지만 찬반논쟁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전쟁 회의론자들의 보이스가 훨씬 강하다.
하긴 들려오는 뉴스란 게 온통 나쁜 소식 일색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과 아까운 생명, 엄청난 자원을 투입했는데도 탈레반 반군의 세력은 날로 강화되고, 내전은 점점 심화되며, 아프간 정부의 부패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진보와 보수의 아프간 전쟁에 대한 처방은 정반대다. ‘조속한 철군’과 ‘아직은 계속 주둔’으로 팽팽하게 맞선다. 그러나 아프간 전쟁이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선 의견을 같이한다.
첫째는 불확실한 목표다. 아프간 전쟁이 시작된 것은 9.11테러 직후 탈레반의 보호를 받으며 숨어있던 오사마 빈라덴을 체포하기 위해서였다. 빈라덴은 파키스탄으로 도주했으나 탈레반은 축출되었고 알카에다 대부분은 살해 혹은 체포되었다. 당시는 미국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았던, 목표가 확실한, 필요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부시는 도주하는 알카에다를 뒤쫓아 섬멸하는 대신 이라크로 관심을 돌렸고 버려진 아프간 전쟁은 이후 방향을 상실했다.
취임후 증파를 계속하며 아프간전쟁을 확대시켜온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간에서의 임무완료는 미국안보에 중요하다”고 수시로 강조해 왔다. 그 임무가 테러조직 섬멸인지, 탈레반과의 전면전인지, 바람직한 국가 재건인지…그 결과로 미국이 쟁취해야 할 ‘승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조차 명확하지 않은 것이 현재의 상태다.
둘째는 파키스탄의 이중 플레이다. 기밀 문건이 폭로한 파키스탄 정보국의 탈레반 내통은 관계자들에겐 놀랍지도, 새롭지도 않은 사실이다. 아프간과의 관계 지렛대로 탈레반을 활용해야 하는 파키스탄에겐 자국보호책의 일환이므로 쉽게 해결하기 힘든 과제다. 미국에게 파키스탄은 아프간보다 훨씬 중요한 국가다. 이곳을 핵 테러 음모의 온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도 미국은 파키스탄과 잡은 손을 놓을 수가 없다.
셋째는 미국이 지원해온, 계속 지원해야 하는 카르자이 아프간 정부의 부패와 무능이다. 특히 대통령의 인척들이 앞장 서 자행하는 온갖 부패는 정부 뿐 아니라 미군에 대한 아프간 국민들의 불신을 심화시키고 있다.
‘오바마의 전쟁’으로 불리는 아프간에 대한 현 행정부 정책의 큰 줄기는 증파와 철군이다. 미군증파로 반군을 확실하게 진압하고 군경 훈련 등을 통해 정부 능력을 강화하여 아프간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한편 내년 7월 미군철수를 시작하겠다고 못 박고 있다.
전략은 아직 별 효과를 못 보고 있다. 반군의 기승은 여전하며 간혹 탈레반이 약화된 지역에서도 카르자이 정부는 그 빈자리를 메울 통치력조차 변변히 갖추지 못한 형편이다. 내년 7월 철군에 대해 ‘제한적 실시’라는 부연설명이 군 지도부에서 계속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철군이 지지부진하면 재선을 앞 둔 오바마는 만만치 않은 정치적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그러나 리버럴의 주장처럼 조속히, 완전히 철수하기도 힘들다. 내전의 악화로 아프간국민들은 고통에 빠질 것이고 미국은 무책임한 국가로 곤두박질 칠 것이다. 아프간전을 외면하는 여론이지만 57%가 ‘철군시작은 현지 상황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문가들의 제언은 다양하다 - “규모를 축소하고 방향을 바꾸라” 아프간에서 “제2의 스위스를 기대하지 말고 제2의 베트남이 되는 것만 피해라” “아프간은 미국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말고 상황을 관리하는데서 그쳐라” 오바마의 아프간 정책은 백악관의 재평가가 나오는 12월에 다시 조정될 것이다.
어제 중동에서 밝은 소식이 날아왔다. 아프간 군경 증원 및 훈련이 급여인상 등에 힘입어 목표보다 빠르게 달성되고 있다는 것과 이라크 상황이 안정되어 전투병력이 이달 말까지 완전 철수한다는 것. 드물게 전해진 굿 뉴스다. 수렁 같은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는 아니어도 ‘성공적 마무리’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이 비친다.
박 록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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