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민주주의에 기초한 헌법을 가진 나라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을 기본 원리로 하고 소수는 다수의 결정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미국 헌법을 자세히 보면 곳곳에 다수결을 부정하는 부분이 눈에 띈다.
연방 대법관 자리만 해도 그렇다.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거기다 종신까지 보장된 9명의 판사들이 미국의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관해 최종적인 결정을 내린다. 500명이 넘는 연방 상하원 의원과 대통령이 사인한 법안도 이들이 “위헌” 한마디만 하면 무효가 된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200여 년 전 미국 헌법을 만든 사람들은 그리스와 로마 역사에 정통했다. 이들이 역사에서 배운 귀중한 교훈의 하나는 다수라고 항상 옳지 않으며 ‘다수의 횡포’를 방치할 경우 1인 독재보다 더 비극적인 결과가 초래된다는 점이었다.
‘소수의 횡포’를 막기 위한 다수결을 원칙으로 하되 소수의 권익도 보장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고 이것은 연방 헌법에 반영돼 있다. 연방 헌법이 수차례의 수정을 거쳐 흑인 등 유색 인종과 여성에 대한 차별 금지와 참정권 부여에 이르게 된 것은 이같은 정신을 이어받은 것이다.
2004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재선을 앞두고 공화당은 선거 공약으로 동성애자 결혼 금지를 위한 헌법 개정안을 들고 나온 적이 있다. 이라크 전이 죽을 쑤면서 재선 가도에 빨간 불이 켜지자 기독교 우파 표를 결집시키기 위한 작전이었다. 이 작전은 들어맞아 대선을 결정해 온 오하이오 주에서 기독교 몰표가 나왔고 여기서 이기면서 부시는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후 4년 동안 공화당은 이 헌법 개정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다. 처음부터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일로 선거용 쇼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60년 동안 헌법을 수없이 통째로 뜯어고친 한국 같은 나라도 있지만 미국 헌법은 가장 고치기 어려운 법의 하나다.
지난 200년간 고작 27개 조항이 추가됐는데 그중 10개는 이미 헌법 제정 때부터 약속된 것이었고 2개는 금주와 그 취소를 선언한 것으로 실질적으로 새로 바뀐 조항은 15개에 불과하다. 이처럼 수정 조항이 적은 것은 헌법을 바꾸려면 연방 상하원 2/3와 50개 주 의회 3/4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주 연방 지법은 동성애자 결혼을 금지한 가주 주민 발의안 8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동성애자에 대한 이런 차별은 수정 헌법 14조가 규정한 ‘적법 절차’와 ‘평등 보호’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이다. 이 조항은 링컨이 노예 해방을 선언한 후 이들에 대한 불이익을 철폐하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 민권 보호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이 문제에 관한 최종 결정은 연방 대법원까지 가야 하겠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지법의 판결을 뒤집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서양 문명은 유대 기독교와 그리스 로마 문명의 종합이다. 많은 공통점에도 불구, 두 문명은 이질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동성애에 관한 견해다. ‘소돔’이래 동성애를 죄악시 해 온 유대 기독교와는 달리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동성애가 보편화됐었다.
소크라테스를 위시한 그리스 철학자들이나 알렉산더 대왕 등이 모두 동성애자였으며 시저, 아우구스투스와 로마 황제 대부분이 동성애자였다. 로마에서 동성애가 금지된 것은 기독교 황제 테오도시우스가 즉위하면서부터다. 그 후 중세 1,000년 동안 가혹한 박해를 받던 동성애는 르네상스와 함께 그리스 로마 문명이 재발견되면서 다시 널리 퍼졌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가 모두 동성애자다. 20세기 들어서도 케인즈에서 차이코프스키, 오스카 와일드에 이르기까지 동성애 명사들의 이름을 들자면 한이 없다.
동성애 결혼 반대자들은 이를 허용하면 이성간의 결혼이 파탄날 것처럼 주장하고 있으나 이미 미국 가정의 절반은 이혼으로 깨지고 있다. 이를 동성애자 탓으로 돌리는 것은 잘못이다. 자기와 다르다는 이유로 남을 차별하고 자기 식으로 살기를 강요하는 것이 당장은 옳은 것 같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잘못이었다는 것을 민권 운동사는 보여주고 있다. 동성애 결혼 금지를 외치는 사람들은 자신이 혹시 과거 흑인과 여성을 차별해왔던 사람들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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