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이 무겁게 느껴진다’-. 누가 한 말이던가. 국치(國恥)에, 광복에, 건국의 날이 모두 8월에 몰려 있다. 한국인으로서는 집단적 굴욕감과 감격이 동시에 교차되는 달이 바로 8월이기 때문일까.
그래서인지 이 무거운 달 8월을 맞아 새삼 스치는 생각은 역사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한국인은 심각한 ‘역사 콤플렉스’에 갇혀있다. 한 국내 사학자의 지적이다.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도록 훈련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 역사에 대해 좀처럼 자신감을 갖지 못한다. 아니, 지긋지긋해 한다. 승리와 정복이란 말은 한국 역사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어서다.
그 역사에 대한 우울증은 근·현대사로 가면 더 심해진다.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은 고구려사에만 심취한다. 그리고 아직도 정리가 채 안 된 고대사의 판타지에 빠져든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밖으로만 나돈다. 한국인은 자국의 경험에서 무엇인가 배우려 들지 않는다는 거다. 과거를 타도와 극복의 대상으로만 본다. 대한민국을 그 탄생에서부터 부정하는 식으로.
역사 콤플렉스에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민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오랜 역사’랄 게 아예 없는 데서 비롯된 콤플렉스다. 이는 미국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콤플렉스를 벗어나 새로운 변신하는 데 있어 두 나라는 그러나 큰 대조를 이룬다.
무엇이 그러면 역사 콤플렉스로부터 미국을 벗어나게 했을까.
1831년 5월 프랑스의 젊은 귀족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미국 뉴욕에 도착했다. 그는 이후 9개월 동안 미국 전역을 돌면서 각계각층의 미국인들을 만난다. 당시 대통령 앤드류 잭슨에서 아메리칸 인디언에 이르기까지.
이 여행을 통해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저서를 내놓는다. 이 책은 두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미국의 역사와 정치 이론의 필독서가 되고 있다. 이 명저를 통해 그가 파헤친 것은 이른바 ‘미국적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이다.
토크빌이 미국방문에서 먼저 발견한 것은 건강한 민주주의였다. 사람들이 떼를 지어 서부로 몰려간다. 그 과정에서 신분적 차이는 없었다. 모두가 평등했다. 그 건강한 민주주의를 서부 개척정신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가 발견한 또 한 가지의 희망은 미국인 특유의 신앙심이었다. 당시 유럽의 자유주의자들 사이에 팽배했던 것은 종교 무용론이다. 그 사조에 토크빌은 비판의 일침을 가했다. 인본주의적 사고는 혁명과 같은 과격한 돌파구를 찾게 된다. 피로 물든 프랑스 혁명이 그 경우다.
이런 유혈의, 필연적 고리를 단절시키고 있는 것이 신앙의 양심에 바탕을 둔 종교의 힘이다. 프랑스는 하지 못한 일, 다시 말해 처절한 혁명을 거치지 않고 민주주의로 비상하는 이상적 역사 과정을 미국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요약하면 자유주의와 평등사상 그리고 청교도정신을 미국적 예외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가치관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때로는 개인의 이익을 희생시키며 공익을 위해 헌신한다. 그리고 창조주가 부여한 소명의식을 지상에서 구현한다. 미국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함께 예외주의는 이후 미국의 국가이데올로기로 발전한다. 역사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미국인이라는 정체성 확립을 이룩하는 데 발판역할을 한 것이다.
이 예외주의는 그러면 백인 중심의 미국사회 기득권층의 전유물인가. 그렇다고만은 볼 수 없다. 미국적 예외주의, 다시 말해 미국의 국가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이 요즘 들어 주류사회 일각에서 유행을 타고 있어 하는 말이다.
이 미국 예외주의에 대한 반론은 연전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과 함께 계속 증폭되고 있다. 영국인이 영국 예외주의를 믿는 것처럼, 그리스인이 그리스 예외주의를 믿는 것처럼 나는 미국적 예외주의를 믿는다고 한 것이다. 뒤집으면 미국 예외주의를 일종의 국수주의 인양 받아드린 것이다.
이후 비판은 계속 쏟아지고 있다. ‘미국 예외주의는 미 제국주의가 마치 이타적인 제국이나 되는 것처럼 채색하고 있다’ 등등.
이런 면에서 미국 예외주의의 진정한 신봉자는 오히려 이민그룹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이 땅을 스스로 선택했다. 그리고 어려움 가운데에도 종교적 열정과 함께 신실한 삶을 추구한다. 미국적 가치관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면서.
뭐랄까, 비(非)이탈리아계 속주민들이 보다 충실한 로마정신을 구현, 로마제국의 영광을 1000년 이상 계속 이어간 것처럼.
미국 이야기는 그렇다고 치고 한국인들이 그 역사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할 때는 과연 언제쯤일까. 과거사 속에 얽매어 지적 경직증세마저 보이고 있는 자학(自虐)의 사관이 여전히 판치고 있어 던지는 질문이다.
옥 세 철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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