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너 이용훈, 두다멜과 할리웃 보울 ‘카르멘’ 무대
1일 할리웃 보울에서 있었던 ‘카르멘’ 콘서트는 정말 즐거운 공연이었다. 한인 테너 이용훈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것이 물론 가장 흥분된 사건이었지만, LA 음악팬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구스타보 두다멜이 LA 필하모닉과 오페라 음악을 지휘하는 첫 무대이기도 했고, 또한 정열적인 ‘카르멘’을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할 수 있었으니, 쌀쌀한 밤바람마저 싱그럽게 느껴진 황홀한 음악회였다.
2시간여에 이르는 콘서트를 감상하면서 이용훈이 왜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주역으로 러브콜을 받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놀랍도록 부드럽고 서정적인 목소리로 비운의 군인 돈 호세의 노래들을 연주했다.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울려 나오는 듯한 그의 노래는 듣는 이의 마음을 흔드는 힘을 지녔으며, 배역의 감정에 몰입하고 이를 표현하는 능력도 뛰어나 청중과 쉽게 일체감을 이루었다. 그것은 다른 한국인 테너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가창력과 호소력으로, 보통 한국인 성악가들은 좋은 소리를 가졌어도 막상 무대에서는 자연스런 연주가 나오지 않거나 때로 중요한 아리아에선 쥐어짜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이영훈은 힘들이지 않고 연주해 나가는 모습이 무척 자연스러웠다.
그의 공연을 오페라 프로덕션에서 세트와 의상, 연기와 함께 감상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큰 키와 건장한 체격, 호감 주는 마스크를 가진 것도 국제무대에서 주역으로 활약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LA타임스는 이용훈이 처음에는 다소 ‘쿨’한 돈 호세로 시작했으나 금방 변신하여 갈수록 엄청난 감정을 쏟아내며 열연했다고 호평했다.
‘카르멘’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음악과 아리아가 많은 오페라로, 1막부터 4막까지 스토리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음악도 신나고 재미있기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다. ‘투우사의 노래’ ‘하바네라’ ‘꽃노래’,‘집시의 노래’ 등 유명한 합창곡과 아리아들이 계속 나오는데 전체적으로 템포가 빠르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가 풍성하여 누구나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이날 카르멘 역의 메조소프라노 나타샤 페트린스키는 무난한 공연을 펼쳐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노래보다는 매혹적인 모습과 한쪽 어깨가 드러난 빨간 드레스로 카르멘 역에 어필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어쨌거나 최고의 카르멘으로 꼽히는 마리아 칼라스의 연주를 생각하며 ‘하바네라’와 ‘집시의 노래’를 듣는다면 누구의 공연이라도 어느 만큼은 실망하지 않을 수 없을 테지만.
LA타임스는 이 공연을 두다멜의 성공적인 ‘오페라 미국 데뷔’로 극찬했다.
이 기사에 의하면 두다멜은 최근 밀라노 라 스칼라에서 모차르트의 ‘돈 지오반니’와 푸치니의 ‘라보엠’을, 베를린 스타츠오퍼에서는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을 지휘해 현지 음악계를 ‘감전’시켰으며 이때 이후 이탈리아 유명 오페라단의 유력한 지휘자 물망에 올라있다. 타임스는 “에사 페카 살로넨은 그를 ‘지휘하는 동물’(conducting animal)이라고 불렀는데 이제 그는 ‘오페라 동물’(opera animal)임도 증명해 보였다”고 찬사를 보냈다.
한편 두다멜은 3일 콘서트에서는 번스타인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심포닉 댄스’와 ‘온 더 타운-3개의 댄스 에피소드’, 거쉰의 ‘랩소디 인 블루’와 ‘파리의 미국인’을 역동적으로 연주해 1만5,000여 관객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재즈를 클래식에 도입한 가장 미국적인 두 작곡가 번스타인과 거쉰의 곡들은 두다멜의 지휘봉 아래 젊고 생기 넘치고 날카롭게 재탄생하여 가장 ‘할리웃 보울 적인’ 콘서트를 선사했다.
그는 이날 자신이 6년 전 말러 지휘 콩쿠르에서 처음 에사 페카 살로넨을 만났던 이야기, 그의 초청으로 5년 전 처음 할리웃 보울에서 LA필을 객원 지휘했던 이야기, 그리고 작년에 상임지휘자로 취임하면서 이곳서 첫 무료 콘서트를 열었던 이야기와 함께 이제 할리웃 보울 시즌 프로그램으로는 처음 무대에 선 특별한 감회를 전했다.
두다멜은 5일 콘서트를 끝으로 올여름엔 할리웃 보울 연주가 없다. 10월부터는 월트 디즈니 홀에서 LA필 2010/11 시즌을 시작하지만, 일단 내년도 보울 시즌이 오면 반드시 두다멜 콘서트를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온 몸으로 ‘지휘하는 동물’ 두다멜을 감상하기에는 디즈니 홀보다 대형 스크린으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여주는 할리웃 보울이 훨씬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할리웃 보울도 카메라를 그에게 고정시킴으로써 청중의 기대에 한껏 부응하는 것이다.
<정숙희 기자>
테너 이용훈이 돈 호세의 애절한 호소를 노래하고 있다.
구스타보 두다멜이 열정적으로 지휘하고 있다. (LA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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