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홀로 계신 아버님께 전화를 하면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장남으로서 뫼시지 못하는 객관적 사실이 순간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한다.
불안해서 밤에 전화를 드려보지만 여전히 전화를 통화하기가 쉽지 않다.
경로당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같이 밥도 지어먹고 하면서 잘 지내니 걱정말라시지만 마음 불편하긴 매한가지다.
본인은 그게 편한 것이라고는 하시지만 자기자식들도 거두기 불편해하는 세태이고 보니, 동네분들께 폐를 끼쳐 드린 것 같아서 항상 마음 한구석이 걸린다.
동생이 손 전화를 사 드린 뒤로는 통화가 잘 되어서 다행이나 주무실 때를 제외하면 마을의 경로당은 어르신들의 놀이터요, 직장이고, 삶의 중심이 된지 오래다.
연로하신 장모님도 사시는 곳만 다르지 거의 같은 생활이다 보니. 객지에 나와 있는 나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는 경로당은 이제 없어서는 안될 만큼 중요한 곳이고, 고향에 가서도 경로당에 인사가면 동네 분들을 한꺼번에 만나 뵐 수가 있고, 그래서 빈손으로 갈 수도 없지만 다녀오고 나면 마음이 흡족하다.
이런 경로당이 선거철만 되면 북적인다.
어지러운 듯한 세상사에 젊은이들 하는 걸 보면 정신 나간 친구들 같기도 하고, 아무리 지들이 잘났다 한들 내 자식들 하는 걸로만 짐작을 해봐도 배알이 뒤틀리는데, 어느 해였던가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두고, “연세 드신 어르신들은 집에서 쉬시고...,”라는 유력 정치인의 뼈있는 말실수는 전국의 경로당을 ‘격노당’으로 만들고서부터 정치에 관한 한 부모 자식 간에도 대화의 여지가 없어졌고, 한마디라도 정중하게 거들라치면 ‘너도 똑같은 젊고, 싸가지 없는 것들’로 매도당하기 십상이었다.
잊을 때가 되면 우국충정을 둘러 맨 사람들이 신문과 방송으로 어렸을 적 전쟁타령으로 도배질을 해대니, 그 시절 피난길에 들었던 ‘바람찬 흥남부두~’가 느닷없이 되살아나고, 한 겨울에 짚신 엮어서 신고 지고 피난 다니던 아픔이 다시 도지고, 그 배고팠던 시절을 모르는 철부지들이 무엇을 한다한들 믿을 구석이 눈 씻고 찾아 봐도 찾을 길이 없으니, 이 강토 조상 땅, 부지한 이 목숨 지켜줄 이는 미국과 미국을 할아버지처럼 섬기는 그들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은 당연지사.
이리 꼬이고, 저리 엮인 기막힌 현대사를 오랜만에 찾아뵈는 어른들 앞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옳을지 몰라 하다가 ‘투표 잘 하십시오’ 하고는 되돌아 나오니, 평소에 마을 일을 뒤에서 맨 나중에 할 말씀 한다는 분이 ‘저 보소, 뭔 말을 제대로 못하잖여, 구관이 명관인 거여’ 하고 한마디 하고나니, 경로당이 온통 ‘묻지마 투표장’ 되는 건 한순간이다.
그런데, 당장 올 겨울부터 전국의 경로당에 지급되는 난방비가 지급되지 않을 수도 있다.
무슨 말이냐구요?
어느 야당 국회의원이 7월23일 기자회견을 갖고 보건복지부가 최근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2011년도 예산 요구안’을 공개했다. 우선 노인들이 추운 겨울날 경로당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하며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경로당 난방비를 410억6천500만원 전액 삭감했다. 그는 “대한민국 어르신들은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 1위, 노인 자살률 1위로 절벽 끝에 내몰려 있다”며 “4대강에 수십조의 예산을 증액 편성하면서 돈이 없어 어르신들의 경로당 난방비를 삭감한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잘하라고 투표해서 나랏일 맡겼으면 조용히 지켜보면 될 일 가지고 왠 소란인가, 할 수도 있겠고, 자식들 잘 가르쳐서 호의호식하는데 경로당 같은 델 왜 가느냐고 한다면 할 말을 더해 무얼 하겠는가!
이에 앞서 7월 18일 기획재정부가 2/4분기 경제성장률이 4.9%이고, 내년 전망치를 5.0%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가 하면 공교롭게도 같은 23일 날 한해 1조원 이상 순익을 내는 ‘꿈의 1조원 클럽’ 가입기업이 20개를 돌파할 것이라는 기사가 신문마다 넘쳐나고 있다.
모두가 희생했다.
오직 한사람을 위해서 누이들은 겨우 초등학교만 마치면 그나마 다행이었고, 장남 하나를 위해서 나머지 형제들은 더 똑똑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 장남이 서울로, 미국 유학으로 떠 올려지고, 입지를 이루고 날 때쯤 아버지는 긴 숨 몰아쉬면서 형제간의 우애를 유난히 강조하시지만 허망하기만 하다.
강창구
사람사는 세상,
워싱턴,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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