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번한 총기 사용 살인 사건들에 대한 보도를 접할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아내의 고등학교 후배였던 그 사람은 아주 불우한 성장 과정을 거쳤다고 들었다. 그의 어머니가 부자의 첩이었기 때문에 일류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온 미술가 지망생이었지만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자기 언니가 UPI 특파원과 결혼해서 한국을 떠났던 영향인지 또는 자기 자신도 미국 유학을 오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랬던지 미군 해군 하사관으로 한국에 주둔했었던 필리핀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된다. 나 자신과 아내가 연애하느라고 음식점과 다방을 쏘다니던 1960년대 초 나는 기억도 안 나지만 어느 다방에서 그를 만났던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뇌리에 남을 해후는 물론 아니었기에 이름도 모르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가 노폭 스테이트(Norfolk State)란 흑인대학에 교편을 잡고 있던 1976년 경 Virginian Pilot이라는 조간 신문에 기고를 한 적이 있었다.
내 글 위에 게재된 사진을 보고 자기 선배의 남편이 된 나를 알아본 그 여자는 학교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래서 왔다 갔다 하는 사이가 되어 우리 아이들과 그 집의 아들과 딸이 친해지기까지 했다. 필리핀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의 남편은 키가 비교적 작은 편이었다. 그는 노폭 해군 기지에 근무 중이었는데 집도 사서 열심히 식구들을 벌어 먹이려는 근면, 성실형으로 보였다. 그의 부인은 대학원에 진학하는 한편 그림도 열심히 그려 우리 집안의 입구에도 좀 어둡다 싶은 그의 유화가 한 폭 걸려 있었다. 선배라 무흠하다고 생각해서 그랬던지 자기 생활을 속속들이 아내에게 호소하고 그랬던 모양이다. 당시 자기 주변의 한국 여인들의 남편들은 의사나 엔지니어 등 상류 직종에 속하고 있었던 것이 고등학교 출신 하사관이었던 자기 남편과 대조가 되어 상대적인 열등감을 느꼈던지 남편에게 야간 대학을 가라고 해도 말을 안 듣는다고 해서 가정불화도 잦았다는 이야기였다.
그에 더해 시동생인지 시누이 문제로 다투기도 했던 것 같다. 그들의 부부 싸움 끝에 아내가 종종 그 집으로 불려 갔다 오곤 했었다. 별거와 이혼 가능성까지 대두되었을 때 내 아내로서야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참고 살아야 될 것이 아니냐는 원론의 충고 밖에 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날도 울부짖는 소리로 그가 전화를 걸어오니까 아내는 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너희들 부부 문제는 너희들이 알아서 해야 할 것 아니냐”는 대꾸였다. 그런지 얼마 안 되어서 그 집의 옆집 사람이 전화를 걸어왔다. 딸과 아들을 바깥으로 내보내고 부부싸움을 하던 중 남편이 아내를 총으로 쏘아 죽이고 자기도 자살을 했는데 그 아이들은 그 사실도 모른 채 자기 집에 다 있는 바 어찌 했으면 좋겠는가라는 황급한 하소연이었다.
급히 달려가 우선 아이들을 우리 집으로 데려올 수밖에. 집으로 오는 도중 차에서 아이들이 엄마 아빠가 어찌 되었는지를 물어도 할 말이 없었다. 그 다음날 해군의 군목이 전화를 걸어와 그 아이들에게 부모의 사망 사실을 알려주어야 하는데 자기의 도움이 필요하면 우리 집으로 오겠다는 제의를 했다. 우리 둘이 해보겠다고 거절한 다음 우리 아이들이 없는 자리에서 그 아이들에게 부모의 비극을 설명해준 일은 아마도 내 생애에 있어서 가장 곤혹스러운 경험 중 하나였을 것이다. 당시 홍콩에 살던 그들의 이모가 와서 보호자 임명을 받을 때까지 두어 주 그들을 데리고 있으면서 그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줄까 싶어 우리 아이들에 대한 껴안아주는 등의 사랑의 표현도 삼갔던 기억이다.
집에 권총을 소지한다는 것이 모르는 괴한의 공격으로부터 집 식구들을 보호하기 보다는 부부 싸움이나 부모 자식 간의 충돌에 있어서 되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가져오기 쉽다는 사실을 그 사건이 잘 예시한다. 가족 내의 살인, 자살 사건의 대부분이 총기에 의한 것이고 어린 아이들의 오발사 역시 그렇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권총 강도들의 희생자들과 직장이나 학교에서의 무차별 총기 난사의 희생자들도 미국 특유의 총기 소유 전통과 문화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방대법원은 작년에 연방 정부가 시민의 총기 소유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근거로 워싱턴 DC의 민간인 권총 소유 금지법에 대한 위헌 판결을 하더니 금년에는 주나 시 정부도 그리할 수 없다고 시카고의 비슷한 법을 무효화시켰다. 연방 대법원 판사들이야 밤에는 물론 때로는 낮에도 총성이 들리는 위험한 DC의 남서 지역이 아니라 조용하기만 한 북서 지역 아니면 교외에 살고 있어 자기들의 판결의 결과를 피부로 못 느낄 것이다. 미 헌법 개정 제2조가 다시 개정되거나 대법원의 획기적인 해석이 있기 전에는 필자가 경험한 노폭에서의 비극은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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