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메이저리그 올스타게임을 보면서 현재 부상자명단(Disabled list)에 올라있는 추신수(28·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생각났다. 며칠 만 더 지난 다음에 다쳤으면 최소한 올스타로 뽑힌 경력이라도 생긴 후 다른 선수로 교체됐을 텐데 타이밍 때문에 더욱 아쉽다.
다이빙캐치를 시도하다가 글러브를 낀 오른손이 꺾이는 바람에 7월2일부터 못 뛰고 있는 추신수에게는 도대체 얼마짜리 엄지손가락 부상인지 그야말로 ‘견적’도 안 나온다. 지난 봄 구단의 장기계약 오퍼를 거부하고 더 좋은 성적을 올려 훨씬 큰 계약을 받아내겠다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인데, 아무래도 연봉조정 중재자 앞에 ‘올스타 이력서’를 들고 가지 못하는 차이가 날 전망이다.
추신수는 또 이미 10경기에 빠지면서 훌륭한 ‘협상용 성적표’를 만들어내기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나마 예상보다 회복이 빨리 이달 말 복귀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게 다행으로, 애당초 수술을 받고 시즌을 접어야할 가능성이 보인다는 진단이 떨어졌을 때는 눈앞이 캄캄했을 것이다.
프로스포츠는 다쳤다고 널리 이해해주는 세상도 아니다. 어깨수술도 딛고 일어선 추신수처럼 100경기 이상 소화한 시즌이 작년 한 해밖에 없을 때는 협상 테이블에서 그 점(durability) 또한 흠으로 잡히기 마련이다.
바로 그런 위험부담이 에이드리언 곤잘레스(28·샌디에고 파드레스)와 라이언 브론(26·밀워키 브루어스) 등 이번 올스타게임에 나온 ‘영건’들이 추신수와 비슷한 커리어 시점에서 일찌감치 장기계약에 합의한 이유다. 추신수의 인디언스 동료인 그레이디 사이즈모어(27)도 마찬가지인데 그는 2년 연속 부상으로 거의 뛰지도 못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기가 막힌 보험을 들어둔 셈이다.
곤잘레스는 연봉조정 자격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을 때까지 5년 동안 1,500만달러를 개런티 받았고, 브론은 홈런 34방을 날리며 화려하게 데뷔한 직후 FA가 되는 해까지 미루기로 하면서 7년간 5,100만달러 계약서에 사인했다.
하지만 추신수가 이들처럼 안전하게 나가지 않고 모험을 걸 것은 그가 지난 2월 ‘벼랑 끝 전술의 귀재’ 스캇 보라스(57)로 에이전트를 바꾸면서 예고된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시즌 전 인디언스는 2013년 시즌 후에야 FA로 풀리는 추신수를 5년 계약으로 묶고 싶지만 추신수의 에이전트인 보라스는 별다른 관심을 안 보인다는 보도가 나왔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떠오르는 스타 저스틴 업튼(22)은 바로 그 때쯤인 3월4일 6년간 5,125만달러 계약에 합의하면서 추신수와 대조를 이뤘다.
인디언스는 추신수가 FA로 풀릴 때까지 매년 반복해서 연봉조정 절차를 밟아가며 서로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이 없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선수에게 그 아무 것도 보장해 줄 의무가 없는 시점에서 장기계약을 해주면 선수는 최소한 팀을 떠나는 시점을 늦춰 줘야한다는 입장으로 5년 계약 카드를 내민 것으로 알려졌다. 인디언스는 팀의 간판스타나 다름없는 사이즈모어의 계약도 이런 방식으로 연장했다.
하지만 보라스가 볼 때 그건 모두 구단 사정이자 구단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보라스의 명성’이란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특히 한인들은 선수나 팬이나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처럼 보라스가 워낙 달변인 협상의 천재라 천문학전인 단위의 계약을 잘 따낸다고 믿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그의 ‘마술’은 구단이 아닌 선수(고객)를 잘 설득시키는데 있다. 선수의 커리어를 놓고 최악의 시나리오가 두려워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지 못하는 에이전트가 많은 반면 보라스는 선수가 후환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드는 아주 특별한 재주가 있다.
보라스가 최상의 시나리오 때 최고의 성과를 낸다는 점은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지금 박찬호나 김병현에게 물어보면 어떤 ‘추천서’가 나올지 궁금하며, 또 이번처럼 추신수가 다친 ‘최상의 시나리오’가 아닌 경우에는 과연 어떤 결과를 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규태 / 스포츠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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