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40여 년을 넘게 미국서 살다가 대학에서 은퇴하고 지금은 한국에서 8개월, 미국에서 4개월을 살고 있다. 한동대에서 학기 중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방학이면 미국 집에 와서 쉬기 때문이다. 미국 시민권자 신분으로 한국에 머물고 있지만 한국 국적 자에 비해 불편한 점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많은 외국 국적 자들이 한국에서 공직을 가지고 있거나 개인 일들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리라 믿는다.
공직생활, 국민건강보험, 고령자 대우, 부동산 구입, 개인 사업 등에서 국내인과 거의 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한동대에만 해도 40여 명의 외국인 교수와 그들의 가족들이 살고 있지만 언어 이외의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사실 언어불편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학 안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중앙 관공서는 물론 지방 관공서에서까지 영어가 불편 없이 통용되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대가 한국 곳곳에 파고 든 것이다.
한국정부가 복수국적제도를 법적으로 도입함으로써 ‘글로벌 한인시대’를 더 활짝 열었다. 우리는 국경의 개념이 무너진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다. 한 국가나 민족의 문화는 글로벌 문화라는 대세에 흡수되어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글로벌 문화는 국경을 초월한 무한경쟁을 유발했으며 어느 국가이던 이 경쟁에서 밀려나면 도태되고 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복수국적제도는 시대적 변화와 현실적 필요에 따른 글로벌 시대에 부응하는 필수조건을 충족시키는 조치이다. 또 저출산 고령화라는 사회적 문제에 직면하여 국력의 근간이 되는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로 볼 때 복수국적제도는 ‘한국인 늘리기’에 큰 몫을 하게 될 것이다. 복수국적제도는 제외동포 700만을 국력의 일부로 간주할 수 있는 큰 터를 마련해 준다.
현재 선진국들을 포함 100여 개 국가들이 복수국적제도를 가지고 있다. 즉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대만, 독일, 이스라엘은 징병제 국가이면서 병역의무에 상관없이 복수국적을 허용하고 있다. 대만과 중국은 인구 늘리기의 차원에서 보다 경제 및 두뇌유치의 차원에서 복수국적자 유치에 경쟁을 벌이고 있다. 화교의 경제적 비중과 이들이 각각 대만과 중국에 기여한 경제가치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복수국적 허용국가 가운데 우리의 관심을 끄는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미국에 약 6백만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다. 이 가운데 약 20%가 미국과 이스라엘 복수국적자이며 이스라엘에는 약 30만의 미국-이스라엘 복수국적자들이 살고 있다. 이 복수국적자들의 경제적인 기여는 이스라엘 정부 예산의 30%를, GDP의 35%를 차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한국정부가 국적법을 개정, 복수국적제도를 시행한 지 2달이 지났으나 미국 한국영사관들에는 복수국적 관련 신청업무가 한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사관을 통해 신청 가능한 복수국적 대상자는 2세 가운데 만 22세 미만으로 한국 호적에 등재되어야 한다고 한다. 남성은 한국국적을 취득하는데 병역의무가 따르게 되며, 누구나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자칫 잘못하면 외국인 국적자들이 한국에서 누리고 있는 외국인 학교입학, 경제활동, 납세혜택 등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도 있다.
여기에서 관심의 초점은 무엇보다도 남성의 병역의무다. 복수국적 대상자 가운데 ‘원정출산’ 외국 국적자들을 제외시킨 것을 보면 가히 그 이유를 알 수가 있다. 이와 관련해서 복수국적자들에게 병역의무를 부과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경우가 재미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복수국적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이 자진해서 국방의무를 수행한다는 사실이다.
내년 1월부터 실시되는 복수국적법 시행령에 의하면 65세 이상의 동포들은 국적회복과정을 통해 복수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고 한다. 미국 시민권 취득으로 한국 국적이 호적등본의 등기말살을 통해 상실된 나로서는 한국 국적을 다시 회복할 수 있으며 한국의 주민등록증을 부여 받게 된다. 한국 복수국적제도의 도입은 많은 해외 동포들에게 조국 사랑의 자부심은 물론 국가경제 발전에도 크게 기여 할 것을 확신한다.


허종욱

한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