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가 더 멀리뛰기 위해 잠시 움츠린다는 표현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 말은 “자벌레가 몸을 구부리는 것은 더 많이 뻗어나가기 위함이다”란 주역의 척확굴이구신(尺?屈以求伸)으로 줄여서 굴이구신이라고 한다.
한참 응원열기로 우리를 달군 한국 축구팀이 국제적 수준의 질적 축구를 선보이며 원정 16강의 목표를 이루었다. 우리나라 팀의 16강전에 바로 뒤이어 미국경기가 있었다. 이제 한국응원이 끝났으니 미국을 응원해야 한다는 주변의 말이다. 난 그냥 미국이 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가나와의 경기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스포츠라면 인터넷 문자중계나 스마트 폰을 통해 스코어보드를 힐끔대는 내가 미국경기에 눈길 한번 보내지 않고 남들이 함성을 지를 때마다 혹시나 이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죄책감까지 갖고 있었다. 졌다. 휴~우 다행이다.
나의 일 년은 스포츠로 계절이 나뉜다. 프로야구의 스프링캠프가 차려지는 설레는 봄이 있고 온갖 꽃이 만개하는 봄의 끝자락에 테니스의 여왕인 윔블던 대회가 화려하게 자리 잡는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몸에 받으며 야외에서 치러지는 US 테니스의 함성이 뉴욕을 흔들 때면 야구가 후반으로 치달아 프로팀이 있는 동네마다 여름더위를 한방의 홈런에 날려버린다. 땀이 말라갈 때면 슬슬 프로미식축구로 몸을 달구며 시즌 전 경기로 아직 식지 않은 여름자락 끝에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린다.
가을의 결실은 역시 프로야구의 ‘World Champion’이고 가을이 깊어지며 우린 미식축구로 추위를 녹인다. 늘 주일 오전 10시에 중계되는 미식축구와 경쟁을 하는 교회들은 몸살을 하다 결국 수퍼볼에 전교인이 함께 모여 응원과 전도의 기회로 협상을 마무리한다. 엄동설한의 추위는 프로농구와 하키응원이 함께 하기에 살갑다. 계절의 여왕은 뭐니 뭐니 해도 역시 프로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프로농구의 프레이오프 1차전이 매일 치러지는 4월이다. 올림픽이 있는 해는 보너스의 계절이며 윤달이나 윤년인 셈이다.
그런데 왜 미국의 축구경기를 안봤을까? 미국은 너무 잘났다. 유아독존이다. 혼자 하고 ‘World Champion’이란 말을 쓰는 것에 대해 낯 뜨거운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세계야구대회 (World Baseball Classic)란 생소한 경기가 2006년 처음 조직이 되었다. 한국과 일본은 피가 마르는 경기를 하는데 미국 팀을 보니 한두 명만 아는 얼굴이고 다 생소하다. 유명 프로선수들은 명예나 돈이 생기지 않는 게임에서 공연히 몸만 다칠까봐 WBC를 동네 야구 취급하는 것이다. 조단이 끼어 드림팀으로 불리던 올림픽농구도 세계 다른 나라와 치루는 게임에는 관심이 없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미식축구를 세계 팬들에게 팔기위해 시즌 오픈게임을 중국과 일본에서 치르면서도 세계가 열광하는 축구에는 관심조차 없다. 아직도 미국 스포츠의 ‘World’는 좁은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도 프로축구는 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1994년 월드컵도 유치했었고 1996년에 프로팀의 경기를 시작하며 축구의 원년으로 삼았는데 하필이면 그해 OJ 심슨 재판이 매일 중계가 되며 또다시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 후에도 축구는 점수가 별로 나지 않아 재미가 없다, 쉬는 시간이 없어 광고유치에 어렵다, 열심히 뛰고도 승부차기로 어이없이 승부가 갈린다, 아직 스타선수가 없다는 등등의 이유로 미국인의 관심을 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축구협회는 멀리 내다보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 미국 전역의 초등학교에서는 축구공을 차보지 않은 아동이 없을 정도로 각 학교에 축구팀이 있고 이미 “사커맘”이란 말이 나오고 경기 오심으로 선수의 아버지가 이성을 잃고 심판과 싸우는 일이 흔해졌다. 하지만 아직 미국축구가 미국인의 열광을 등에 없지 않고 16강을 넘어 월드컵에 쉽게 다가선다면 그들은 세계에 대한 존경심을 배울 기회를 영원히 잃고 말 것이다.
아동이 배워야 하는 것은 승리의 기쁨도 중요하지만 상대에 대한 존경심과 세상에 대한 경외감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녀들도 인내하며 기다리는 동안 작은 실패의 경험을 하는 것이 굴이구신의 체험이 될 것이다.
김효선 교수
<칼스테이트 LA 특수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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