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회장 선거가 열렸다. A씨와 B씨 두 후보가 나서 선거 운동을 벌였다. 선거일을 앞두고 선거관리위원회가 느닷없이 B후보의 후보 자격 상실을 선언하고 A후보의 무투표 당선을 확정 공고했다. B후보가 한인회장 선거를 ‘불법적인 협잡선거’라고 성명을 발표해 선관위의 위신과 공신력을 떨어뜨렸다는 게 후보 자격 박탈의 이유 중 하나였다. A후보는 ‘불공정 선거’라는 여론을 무릅쓰고 회장직 취임을 강행했다”
한인회장 선거과정에서 이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고 한다면, 올해 LA 한인회장 선거 파행사태를 말하는 것이라 여기실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A후보에 스칼렛 엄씨를, B후보에 박요한씨를 대입해 보면 얼마 전 30대 한인회장 선거를 둘러싸고 발생했던 상황과 거의 그대로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요즘 이야기가 아니다. 연도별로 LA 한인사회 주요 사건들을 정리해 놓은 신문사의 자료를 들춰보다 발견한 80년대 초반, 정확히는 1982년의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28년의 세월이 흘러 한인사회가 비약적인 변모를 한 지금에도 그 당시와 정말 흡사한 사태가 다시 재연됐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여서 한 번 옮겨본 것이다.
당시 ‘한인회 파동’으로 불리며 커뮤니티를 떠들썩하게 했던 한인회 분규는 결국 A후보가 취임 6일만에 회장직을 사임했고, 이후 ‘한인회 정상화추진위원회’라는 단체가 구성돼 2명의 새로운 후보들을 두고 재선거가 시도됐지만 이번에도 한쪽 후보의 실격과 다른 후보의 무투표 당선이라는 파행이 반복되면서 결국 문제가 법정으로 비화되는 파국을 맞게 됐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사실 LA에 본격적인 한인 이민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한 후 지금까지 한인회 문제로 커뮤니티가 시끄럽지 않은 해가 거의 손에 꼽을 정도로 한인회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아 왔다. 그런데 올해는 이 같은 한인회 역사(?)에도 없던 상황으로까지 일이 전개되면서 역대 최악의 한인회 분규라는 오명이 남을 모양새가 됐다. 동시에 두 개의 한인회가 생겨났으니 말이다.
현직 한인회장이 재선 불출마 약속을 깨고 나와 자신이 임명한 선관위를 ‘심판’으로 두고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불공정하고 절차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경기를 벌여 ‘몰수게임승’을 거뒀다고 밀어붙인 것은 일반 친목단체에서도 그리 보기 힘든 코미디였다.
이같이 부당한 상황에 반발이 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똑같은 우격다짐 방식으로 또 다른 한인회를 만들어 세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은 이미 누누이 지적돼 왔듯이 올바른 해법이 될 수 없다. 또 하나의 한인회라는 것이 단지 상대방의 부당성을 지적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 뿐이라면 그야말로 존재 자체가 자가당착적 아닌가. 상대가 맘에 안 든다며 너도나도 한인회장이라고 우기는 전례를 남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한인사회는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한인회는 30여년 전의 구태를 여전히 반복하고 있다면 이건 거꾸로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차제에 한인회가 우리에게 무엇인지에 대한 발상을 획기적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끼리끼리 모이는 ‘그들만의 한인회’가 아닌 정말 한인사회에 도움이 되는 ‘한인들의 한인회’로 만들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얼굴 마담’ 자리에 연연하는 인물이 아닌, 정말 유능한 인재를 월급제 회장으로라도 영입해 진짜 전문화된 봉사단체로 운영하는 것은 어떤가. 주류사회의 유력 비영리단체들이나 타 커뮤니티의 사례들을 벤치마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한인 커뮤니티에 산적한 프로젝트들을 진척시키고 진정으로 일반 한인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능으로 한인회를 탈바꿈시키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본다.
물론 그 전에 선행돼야 할 것은 2010년판 ‘한인회장 파동’ 사태의 중심에 있는 장본인들이 지금 당장 깨끗이 물러나는 일이다. 이번 사태로 주류사회와 한국에까지 한인사회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잘못이 그냥 뭉개면서 시간이 흘러가면 결국 유야무야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오산이다. 침묵하고 있는 다수의 무서운 눈초리가 있음을 당사자들은 절실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김종하 /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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