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리조나만이 아니다. 미 전국 곳곳 10여개 주와 수십개 도시에서 이민단속 법안이 하루가 멀다 하고 속출하고 있다. 네브라스카 주의 소도시 프리몬트도 그중 하나다.
지난 6월 하순 통과된 시 조례가 시행되면 앞으로 프리몬트에서 아파트를 렌트하려는 사람은 먼저 경찰에 가서 5달러를 내고 입주 라이선스를 받아 주인에게 제시해야 한다. 가구당 한 장이 아니라 18세 이상 가족 수대로 필요하다.
이사를 가려면 또 새 라이선스를 구입해야 한다. 물론 라이선스는 합법적 거주자에게만 발행된다.
오클라호마 주 의회는 내년 초 불법이민 고용 비즈니스의 재산을 압류하는 법안상정을 벼르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와 유타 등 17개 주 의회에도 애리조나와 유사한 이민단속 법안이 이미 상정되었거나 추진 중이다.
‘악명 높았던’ 펜실베니아의 헤이즐턴을 비롯한 뉴저지의 리버사이드, 미주리의 밸리팍 등 도시들은 이미 시 조례들을 통과시켰다가 예외 없이 위헌소송을 당했다. 대부분 패소했는데 일부는 항소 중이고 일부는 엄청난 소송비용 때문에 포기했다. 곧 소송당할 것으로 알려진 프리몬트도 비용 때문에 회의를 거듭하며 대책을 강구중이다.
‘이민정책’이 각 시나 주가 아닌 연방정부 소관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현재의 연방이민정책은 기능불량 내지 기능마비 상태다. 지난 20년간 국경수비 인력을 9배나 늘렸지만 밀입국자가 줄기는커녕 매년 증가, 미국내 불법체류자는 현재 1,100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극우보수파들도 불체자를 한꺼번에 추방하자는 주장은 하지 못한다. 대량추방 자체도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모두 내보낸다면 농장에서 청소, 건설, 식품제조, 요식업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저임금 단순노동에 의존했던 미국의 경제는 당장 밑이 꺼진 듯 휘청댈 것이다. 개인생활도 마찬가지다. 잔디 깎아줄 사람, 아이 돌봐 줄 사람, 집안 청소해줄 사람이 하루아침에 전부 사라져 버린다면 불체자 단속법안을 제정하러 의회에 나갈 의원도, 단속법 시행하러 거리에 나갈 경찰도 제시간에 출근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불법이민이 늘어나면서 관련 범죄가 잦아지고 이들의 교육·의료 등 복지까지 떠맡느라 지역정부의 재정난은 심화되고 주민들의 세금은 올라가는데 워싱턴은 정치 잇속 차리느라 포괄적 이민개혁의 실현은 아직도 요원하고…’ 그래서 주정부, 시정부들은 제각기의 이민정책을 만들어 집행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이 모인 항의집회에 이런 문구의 피켓이 등장했다 : “we are ALL Arizona.(우린 모두 애리조나다)”
요즘의 ‘애리조나’, 정확히 말해 ‘애리조나 이민단속법’은, 실패한 연방이민정책과 그로 인한 부담을 떠맡게 된 지역정부와 주민들의 분노와 갈등을 상징하는 단어라 할 수 있다. 마약범죄 등에 시달리는 국경지대 주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워싱턴포스트 6월 여론조사에 의하면 58%가 애리조나 법을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이틀 전 연방법무부가 애리조나 주를 상대로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4월말 통과되어 7월29일부터 발효되는 새 이민단속법이 연방정부의 권한을 침해, 헌법에 위배된다고 지적하며 무효화를 요구하는 한편 사법부 판결이 나올 때까지 발효를 중지시키는 가처분 명령도 청구했다. 지역경찰이 ‘합리적으로 의심’될 만한 사람들에게 합법신분여부를 검문하도록 요구하는 애리조나 법은 인종차별 소지가 다분하다는 비난을 받았으나 이번 소송에선 ‘인종 프로파일링’은 거론하지 않았다.
정가에서 이민논쟁은 ‘승자가 없는 싸움’으로 불린다. 양당 어느 쪽도 쉽게 진화하기 힘든 ‘정치적 산불‘이라며 될수록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오바마가 정면으로 승부수를 던지면서 이민논쟁은 이제 싫든 좋든 중간선거를 앞두고 워싱턴 뿐 아니라 미전국의 표밭에서 격하게 대립할 전면전으로 비화되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애리조나에선 연방과 주의원들이 한 목소리로 연방정부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부끄러운 줄 알라, 불법이민을 막아 주민을 보호해야할 정부가 주민을 궁지로 몰다니, 애리조나 주민과 대다수 미국민에 대한 모욕이다!”
유권자의 분노에 편승하여 의회주도권 탈환을 꿈꾸는 공화당, 급상승하는 라틴계 보팅파워를 끌어안아 장기적 기반을 다지려는 민주당 - 양당 모두 이민전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야심은 만만해 보이는데 포괄적 이민개혁을 위한 진지한 노력은 여전히 어디에서도 읽을 수 없다.
재판결과에 대한 전문가들의 전망도 아직은 이르다. 대부분 연방의 승소를 예측하지만 단속법 중 일부 조항만 위헌으로 판결하고 나머지는 합헌으로 인정하는 ‘사실상 애리조나의 승리’를 점치는 전문가도 있다. 어쨌든 연방대법원까지 가는 긴 여정이 될 것이다.
걱정되는 것은 전쟁이 격렬해지는 동안 더욱 확산될 반이민 정서다. 불법, 합법할 것 없이 ‘이민은 문젯거리’라는 미국인이 이미 54%나 된다.
항의집회에서 멕시코 국기를 흔들며 데모하는 라티노들을 본 한 미국인의 불평이 LA타임스에 실렸다. “진심으로 이사회에 속하기를 원하기는 합니까? 그렇게 떠나온 본국에만 충성을 다짐하려면 왜 여기로 온 걸까요?” 그 라티노는 반드시 성조기도 들고나가라는 안토니오 비아라이고사 LA시장의 당부를 못 들었나보다.
박록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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