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그동안 연예인들의 자살이 이어지고 있어 주목을 끌어 왔는데 최근 또 어느 젊은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다시 한 번 자살 파장이 일었다. 지난 십수년 사이 한국에서는 잘 알려졌다는 가수나 배우가 13명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자살이 많은 것은 연예인들 사이에서만의 일이 아니다.
박봉을 비관하여 목을 매는 시간강사, 생활고로 자녀와 함께 극약을 마시는 엄마, 학업부진을 비관하여 동반자살 하는 여고생들, 비리 조사를 받다가 목을 매는 공무원, 성형수술이 잘 못 됐다고 자살하는 젊은 여성, 자녀의 카드 빚 때문에 투신하는 가장, 공부가 힘들다고 목을 매는 명문대 학생, 연구실적 부진으로 생을 마감하는 대학교수, 그리고 이민생활에 지쳐 자살하는 미주한인도 있다. 그 중에서도 큰 충격을 준 자살은 지난해 5월 벼랑에서 떨어져 목숨을 끊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OECD 회원국 중에서, 즉 믿을 만한 통계를 내는 나라들 중에서 한국의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지만, 지도자에서부터 인기 연예인까지 모범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자살하고 있는 한국을 놓고 한국인들 스스로가 ‘자살공화국’이라고 칭하고 있음은 당연하게도 들린다. 한국의 자살률(10만 명당 24명)은 미국(11명)은 물론 일본(19명)보다 높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자살한 연예인은 일본에서도 꽤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죽자 많은 일본 팬들이 애통해 하면서 “한국사회는 도대체 어떻기에 연예인들이 계속 자살하는가”라고 안타까움과 비아냥거리는 말을 하고 있단다.
연예인들의 자살에 대해 한국의 미디어들은 원래 연예인은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고 인기관리에 대한 강박감, 활동 불안감, 겉보기와 다른 내면적 고독, 소외감, 우울증세 등에 시달리는 직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스트레스 없는 직업이 어디 있는가. 누구나 다 때로는 강박감, 불안감, 고독함, 소외감, 우울함을 느끼면서 살고 있는 것 아닌가. 높은 자살률이 연예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하면서 불편한 현실을 짚어봐야 할 때다.
한국사회의 허술한 사회보장 체계, 불건전한 인터넷 이용의 확산, 파행
적 교육현실 속의 사회적 압력 가중, 가족 간 의미 있는 대화의 시간과 공간 상실 등이 자살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여기에 매사를 합리적, 이성적으로 처리하기보다 조급하게 감성적으로 대하고 쉽게 흥분하는 한국인들의 심성이 자살률을 높이고 있을 성 싶다.
아울러 전체적으로 한국의 자살률이 높다는 사실은 결국 한국인들의 ‘인생관’에 관련된 문제일 것이라 생각된다. ‘생’(生)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자세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인데, 그것은 부끄러운 얘기지만 아직도 생명경시 현상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전통적으로 수직적, 계층적 사회구조를 이루어온 한국사회는 모든 생명의 보편적 고귀함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남의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목숨도 쉽게 버릴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적 유산을 가진 미국에서는 태아도 생명이라 여기면서 낙태를 반대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낙태가 알게 모르게 수없이 저질러져 왔다. 한국에서 그동안 아이를 버리거나 밖으로 입양시키는 일이 많았던 것도 반드시 궁핍한 형편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구급차나 학교버스에 최우선권을 주고 작은 공사를 해도 인명보호를 위해 철저한 안전을 도모하는 것에서 미국인들의 생명 중시 가치관을 볼 수 있는 반면, 큰 공사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어린 아이들까지 그 속을 헤집고 다니도록 내 버려두는 것이 한국사회의 안전 불감증 또는 목숨 경시 현상이었다.
과학기술이 진전되고 물질문명이 발전될수록 생명 중시와 인간 존중의 가치관을 더욱 굳건하게 다져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아직도 한국사회가 생명 경시라는 악습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인명을 중시하는 미국인들은 사람이 일단 죽고 나면 냉정할 정도로 차분한 모습을 보이는데 반해 사람이 죽었을 때 한국인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 한국인들은 생명의 귀함을 오직 죽은 뒤에야 깨닫는 모양이다. 남의 목숨이나 내 목숨이나 생명은 살아 있을 때 귀하고 중한 것이다.
장석정 / 일리노이 주립대 경영대 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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