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많은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신대륙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컬럼버스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는 명백히 역사적 사실과 위배된다. 엄밀히 말하면 컬럼버스는 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고 카리브 해의 바하마 등 섬을 발견한 것이다. 거기다 그 섬에는 이미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컬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 서양 침략의 물꼬를 튼 인물이다.
컬럼버스 이전에 미 대륙에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는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이들이 언제 어떻게 이곳으로 건너 왔으며 컬럼버스 이전에 얼마나 많은 원주민이 살고 있었느냐를 놓고는 현재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종전까지는 지금부터 약 1만3,000년 전 빙하시대에 해수면이 낮아져 지금 베링해협이 육지가 되자 이를 이용해 시베리아 쪽에서 원주민이 건너왔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연도수를 1만3,000으로 잡은 것은 뉴멕시코 클로비스라는 곳에서 발견된 원주민 유물이 탄소 측정 결과 이 때 것으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출토된 화살촉은 특이한 모양으로 미전역에 걸쳐 나오고 있다.
이런 정설은 70년대 말 칠레 몬테 베르데에서 1만2,800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나오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베링해협에서 남미까지 걸어가려면 최소한 수천 년이 걸렸을 것이기 때문에 원주민들의 미 대륙 도착 시기도 더 올려 잡을 수밖에 없었다.
유전 공학이 발달하면서 조기 이주설은 더 힘을 얻고 있다. DNA 분석 결과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유전자는 서로 매우 흡사하며 이들 혈액형의 90%가 O형이다. 외부 집단과는 시베리아 원주민과 가장 가까우며 이들과 분리 시기는 2만2,000에서 2만9,000년 전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베리아 원주민 유전자가 한민족과 비슷한 점을 감안하면 바이칼 호 인근에서 살던 그룹 중 남하한 것이 한민족이고 동진한 것이 인디언이라 봐도 큰 무리는 없다.
고고학적 발굴이 계속되면서 더 놀라운 사실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멕시코 마야 문명의 원조인 올멕 족은 기원전 1,800년에 이미 피라미드를 건설하고 인도인보다 먼저 0의 개념을 발견했다. 페루 잉카 문명의 전신인 노르테 치코 일대의 부족들은 기원전 3,500년 수메르 인들보다 먼저 대규모 토목 공사를 일으켜 관개시설을 만들고 농경과 어로에 기반을 둔 국가를 세웠다. 지난 10여년간 밝혀진 사실은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뿐 세계 문명사를 다시 쓰기에 충분한 것들이다.
학자들이 지난 수백년간 원주민들의 출생 사망 기록을 뒤져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원주민의 95%가 유럽인들이 가져온 전염병에 걸려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원래 원주민 수도 종전 1,000만에서 5,000만에서 1억으로 크게 상향 조정되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은 전염병에 취약한 것을 빼고 구대륙에 비해 업적으로나 수적으로 별로 뒤질 것이 없는 것이다.
미국은 원주민을 몰아내고 세운 나라며 가주를 비롯한 서부의 광대한 땅은 멕시코와 불법적인 전쟁을 통해 얻은 곳이다. 원주민과 멕시코인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땅을 잃은 것도 분한데 인디언 보호구역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두고 불법체류자라는 이름으로 내쫓는 것은 억울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미국은 불법체류자의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1,100만에 달하는 불법체류자의 신분 합법화를 포함한 이민 개혁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민 개혁은 오바마 대통령 출마 때부터의 공약이었다. 불법체류자들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일을 하고 있다. 미국 고실업의 책임을 이들에게 돌리며 쫓아내려는 것은 경제적으로 어리석은 일일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염치없는 짓이다.
인생에서 죽음과 세금 외에 확실한 것이 있다면 미국내 라티노 인구는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정치적 파워를 무시하는 정당은 미래가 없다. 공화당이 당내 반이민 세력에 끌려 다니며 이민 개혁에 딴지를 건다면 오래 동안 소수당으로 남을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반드시 필요한 이민 개혁이 초당적인 협조 아래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민경훈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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