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주문하다 보면 와인 리스트에 적힌 가격이 일반 판매가보다 몇 배나 비싼 것을 보게 된다. 똑같은 와인도 식당에 따라 가격이 많이 다르니, 식당의 와인 가격은 순전히 바가지가 아니냐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바가지 맞다. 그러나 순전히 바가지인 것만은 아니고, 식당들 입장에서 나름대로 합리적인 방법으로 산출한 바가지다.
일반적으로 레스토랑의 와인 가격은 도매가의 3배 또는 소매가의 2~4배를 붙인다. 그런데 이것도 일률적인 것은 아니어서 싼 와인은 많이 붙이고 비싼 와인은 좀 적게 붙인다. 예를 들어 10달러짜리는 4배인 40달러를 붙여도 크게 표 나지 않지만, 500달러짜리 와인에 4배인 2,000달러를 붙였다가는 절대 팔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것일 뿐 식당에 따라 적용하는 룰이 또 다르다. 어떤 곳에서는 100달러를 기준으로 그 이하는 더 많이 붙이고 그 이상은 점차 적게 붙인다. 어떤 곳에서는 모든 와인에 도매가의 3배를 붙인 다음 몇년에 한번씩 보관과 숙성을 이유로 가격을 더 올리기도 한다.
이것은 각 식당의 폴러시가 다르기도 하지만 식당마다 와인의 구매방법이나 시기, 또는 구입가격이 다른데서 오는 차이다. 저장 공간이 충분한 식당에서는 취급하려는 와인이 출시되자마자 와이너리로부터 직접 구입해 연도별로 쌓아놓는다. 이것이 와인을 가장 싸게 구입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셀라가 없는 식당이나 문을 연지 얼마 안 되는 식당들은 지나간 빈티지 와인이나 구하기 힘든 와인을 경매 등을 통해 비싸게 구입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다.
또한 당연히 짐작할 수 있는 대로 고급 식당일수록 마크업 폭이 크다. 그 이유는 셰프도 일류, 소믈리에도 일류, 와인 셀라도 훨씬 더 규모가 크고 정리가 잘 되어있는데다 와인 잔과 서비스도 훌륭하기 때문에 고객은 그 모든 고급 서비스의 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그러면 고객 입장에서는 어떤 와인을 주문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일까?
첫째, 잔으로 주문하기보다는 병으로 시킨다. 식당 입장에서 가장 이윤이 큰 와인은 잔으로 파는 와인(wine by the glass)이다. 사람들은 병으로 주문하기 부담스러울 때 ‘하우스 와인’(보통 한 잔에 7~10달러)을 시키는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식당에서는 여기에 가장 높은 마크업을 매기고 있다. 하우스 와인은 한잔만 팔아도 한 병 값의 본전을 건지도록 하고 있으니, 보통 와인 한병에서 6잔이 나오니까 6배 이윤을 남기는 것이다.
둘째, 중저가 와인보다는 싸거나 비싼 와인을 시킨다. 사람들은 너무 비싼 와인은 부담스럽고, 너무 싼 것은 창피하기 때문에 중간이나 그보다 약간 아래의 와인을 많이 시킨다. 바로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식당들은 그 가격대에서 가장 이윤을 많이 남기도록 하고 있음을 알아두는 것이 좋겠다.
셋째, 잘 안 알려진 지역에서 나온 와인이나 비인기 품종(즉 잘 모르는) 와인을 시킨다. 아르헨티나나 남아공화국 와인은 나파 밸리나 보르도의 와인보다 마크업이 적다. 또 샤도네나 소비뇽 블랑보다는 그루너 벨트라이너나 마르산을, 카버네 소비뇽이나 멀로보다는 그레나슈나 템프라니요를 오더하는 것이 덜 바가지 쓰는 선택이다.
그런데 사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주의해야할 것이 있다. 그것은 식당에서 와인보다 다른 술에 붙이는 이윤이 훨씬 크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와인이 비싼 것은 엄청 신경 쓰면서도 맥주, 보드카, 위스키, 클럽소다 같은 알콜 음료에 식당들이 무려 5배 이상의 가격을 매기고 있음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예를 들어 크라운 로얄은 마켓에서 한병에 20달러도 안 되는데 식당에서는 100달러가 넘는다. 룸살롱은 그보다 훨씬 심해서 조니 워커 블랙의 경우 마켓에선 35달러 정도지만 룸살롱에 가면 400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무려 10배가 넘는 진짜 바가지 술을 호기 좋게 마시는 사람들이 겨우 3배에 불과한 와인을 시키면서 바가지라고 투덜거리는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 사람일수록 와인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남들 앞에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시키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러면 그 바가지를 폼 재는 값이라고 여기고 기꺼이 지불하는 것이 어떨까.
정숙희 / 특집 1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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