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자신의 생활권에서 만나지 못한 사람들과 부담 없이 담소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주고, 무심코 지나쳤던 일들을 다시 한 번 생각게 함으로써 때로는 우리에게 소중한 것을 깨우쳐 준다. 필자는 모처럼 서부로 출타하여 서울에서 온 몇 분의 학자들과 한국 얘기를 가볍게 나누었는데 여기에 소개해 본다.
북한의 도발 직후 치러진 한국 지방 선거에서 친북 정책을 취하는 야당인 민주당이 대승하였는데 그 비결이 무엇이었는가라고 물었더니 한 분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한나라당이 이기면 대북 관계가 경직되어 전쟁이 나기 쉽고, 청년들은 군대에 나가 싸우게 될 것이라고 해서 젊은층이 민주당에 투표하였고 50대 주부들은 자식들의 입대를 염려하여 가세를 하였다고 한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다. 우선 전쟁에 대한 공포를 부추겨 국민을 선동하는 정치인들도 지탄받아야 하겠지만 권리를 주장하면서 의무를 망각하려는 상당수의 청년들에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와 평등을 가치로 삼는 민주주의는 독재 권력에 항거하며 피 흘려 쟁취한 것이고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얻어진 것이다. 자유 시민의 의무를 소홀히 한다면 누가 그들을 대신해 지켜줄 것인가?
다음은 다른 분에게 4대강 사업이 왜 그렇게 시끄러운 정치 쟁점이 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대답은 이러했다. 지금 한국의 큰 강들은 하류에 토사가 쌓여서 수면이 상승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따라서 4대강의 치수사업은 시급한 국토 개발의 일환으로서 임시방편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야당이 반대하는 숨은 이유는 이 사업이 끝나면 청계천에서 보는 것처럼 MB의 업적이 부각되고 여당의 치적 때문에 야당이 차기 정권을 잡는데 걸림돌이 될 것이기에 어떤 명분을 내세워 저지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와중에도 야당이지만 전남 지사는 영산강 치수 사업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또한 대통령이 외교에 중점을 두고 있어 내치의 문제를 많이 위임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로 인해 갭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 국민은 교육 수준이 높아 치수 사업에 대해 ‘비용 대 효과’를 분석하여 4대강 사업의 당위성을 잘 이해시킨다면 야당의 정치 선동쯤은 자충수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하기야 야당은 경부고속도로 건설 때에도 무조건 반대를 하였고 그런 분들이 나중에 대통령까지 하였으니 진실은 역사가 평가할 일이다.
다음은 세종시 문제에 관해서 물어 보았다. 어떤 분은 세종시의 수정안이 원안보다 경제적으로 더 큰 이득을 주민들에게 가져다 줄 것이라고 하였다. 대기업의 주요 산업이 들어와서 기업의 생산기지를 건설하는 것이 정부의 행정시설이 들어오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충청도에 정치 기반을 둔 세력이나 세종시 원안을 주도했던 여야의원들이 정치적 명분을 앞세워 수정안을 반대하고 있다고 하였다. 필자는 전문적인 분석을 해보지 않아 논평을 할 수가 없었다.
지난해 국방 예산과 관련하여 장차관 간에 잡음이 있었던 것에 대해 한 분은 언론의 보도가 과장되었으며 장관이나 차관이나 자기 직분에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다른 한분이 말하기를 MB는 기업에서 배운 ‘왕회장’식 경영방식을 정부 운용에 적용하고 있다고 했다. 과거에 한국 재벌기업들은 계열사를 운영함에 있어 인사와 재무 담당을 회장의 심복을 임명함으로써 경영 수완이 탁월한 계열사 사장을 견제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국방차관은 ‘왕회장’인 MB의 측근이니 건재하고 국방장관은 계열사의 월급 사장격이니 내쳤다고 한다. 비유가 적절한 것인지 잘 모를 일이다.
이번 천안함 격침 이후 합동참모본부가 취한 조치와 이에 따른 초기 보도는 국민들을 다소 혼란스럽게 한 것은 사실이나 사건 조사위원회의 과학적인 수사 결과가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은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를 계기로 해서 국방 조직의 자체 정화는 물론 취약한 분야의 준비 태세를 보완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이제 주변 국가에서 세계의 중심 국가 대열에 진입하고 있다. 1950년에 개인당 국민 소득이 미국의 11분의 1밖에 안 되었으나 2009년에 구매력 평가지수(PPP) 기준으로 1.66분의 1로 향상되었으니 얼마나 장한 일인가! 이번 여행은 필자에게 한국을 보다 많이 생각할 기회가 되었다.
김휘국
동서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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