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상징(symbol)이라는 허상을 쫓아다니는 존재다. 아무 다른 가치를 발견할 수 없다. 오직 상징이외에는. 그러나 그것을 얻고자 그토록 갈망한다. 행동에 옮긴다. 그리고 번뇌한다. 언어학자 하야카와가 일찍이 한 말이다.
대중시대의 스포츠도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팀이 이겼다. 하나의 상징조작일 뿐이다. 그렇다고 내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환호작약한다.
축구에 열광한다. 월드컵시즌이면 더욱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왜. 축구가 주는 무한대의 즐거움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국기(國旗) 아래에서 열리는 축구에서 사람들은 메타포를 스스로 찾기 때문이다. 축구는 그래서 한 민족의 자존감, 때로는 총포 없는 전쟁으로도 비유된다. 때문에 모두 합해 22명이 공을 쫓는 이 축구라는 게임에 사람들은 고도의 정치성을 부과하면서 축구 열강의 대회전, 월드컵에 특히 열광하는 것이다.
“다극체제(multipolarity)란 말을 처음 만들어낸 건 프랑스다. 부시의 일방주의 독주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런 프랑스가 미국의 쇠망을 이야기하면서 제창한 것이 다극체제다.” 타임지의 보도다.
그 프랑스가 추락했다. 대회 시작부터 자중지란을 거듭하더니 예선전에서 1무2패의 초라한 성적을 내고 일찍 짐을 쌌다. 이 프랑스의 조기퇴장과 관련해 타임지는 축구의 다극체제시대 도래를 선언한 것이다. 다극체제란 말의 저작권이 프랑스에 있음을 굳이 밝히면서.
프랑스뿐이 아니다. 2006년 챔피언이었던 이탈리아도 예선탈락의 치욕을 당했다. 축구종가 영국은 간신히 16강에 진출했고 전차군단 독일의 성적도 시원치 못했다. 반면 예상외의 성적을 올린 팀은 축구의 변방으로 취급되던 미국과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이다.
“기존의 세계질서가 무너졌다.” 조 예선전이 끝난 시점에 타임지가 내린 선언이다. 세계화의 물결을 외면했다, 새 조류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런 경우 전통적 축구강호로 불리던 팀들도 추풍낙엽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면서 세계의 축구지도는 큰 변모를 보였다는 지적이다.
하여튼 2010 월드컵의 최대 이변의 하나는 프랑스의 추락이다. 남의 시선에 특히 민감한 나라가 프랑스다. 그 프랑스가 대표 팀의 내홍으로 명예에 먹칠을 했다. 선수가 감독에게 대들다가 팀에서 퇴출됐다. 그러자 팀 전체가 반기를 들었다. 최종 예선전 훈련을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그 결과는 예선 탈락이라는 치욕이다.
그 후유증으로 프랑스는 심각한 사회분열에, 갈등을 겪고 있다. 무엇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나. 좌파와 우파의 진단이 다르다. 경제위기와 유로화 하락이 거론되고, 인종, 종교적 분열이 지적되기도 한다. 결국 대통령까지 나서 진장조사에 나섰다.
그 중 정곡을 찌르는 것은 아무래도 스펙테이터지가 인용한 프랑스의 한 보통 사람의 지적 같다. “90년대에 군 징집제가 폐지된 이후 되는 것이 없다. 젊은 사람들은 규율이라는 말을 전혀 모른다. 직장에서건 축구장에서건 간에 목도되는 게 바로 이 현상이다.”
월드컵 패배가 후폭풍이 돼 국가적 위기를 맞았다. 프랑스가 현재 맞은 상황이다.
프랑스와 180도 대칭선상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히 폐쇄적이다. 남이야 뭐라고 하던 내 방식만 고집한다. 북한이다. 그 북한도 일찍 짐을 쌌다. 예선전 3게임에서 12골을 내주었다. 참가국 32개국 중 최하위성적이다. 이 북한의 패배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44년만의 외출이었다. 당연히 관심이 쏠린다. 또 한 차례 변방의 반란이 성공할 것인지 하는 호기심과 함께. 고슴도치 같이 몰려 수비에 치중했다. 그 결과 세계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선전을 했다. 그리고 2차전이다. 상대는 포르투갈.
이 상황에서 뭔가 오버페이스를 한 것 같다. 전례 없이 그 경기를 북한 주민에게 생중계를 했다. 북한 팀 감독도 이상한 소리를 했다. “장군님이 손수 개발하신 스텔스 전화기를 통해 장군님으로부터 전술적 조언을 직접 받고 있다”고 한 것이다.
의역하면 경기를 앞두고 김정일이 뭔가를 주문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중계를 한 것이다. 결과는 너무나 끔찍하다. 44년 전의 복수는커녕 7대0, 참패를 한 것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스스로의 한계를 모르고 과신을 했다. 그리고 축구를 국면전환용으로 이용했다. 그러나 결과는 수치와 절망뿐이었다. 역효과를 낸 것이다.
축구는 축구일 뿐이다. 축구는 대한민국도, 프랑스도, 조선 인민공화국도 아니다. 그런데도 한 번 무너지자 걷잡을 수 없게 된 북한 축구를 보면서 자꾸만 한 가지가 연상된다.
축구전술까지 지시하는 수령절대주의 체제에 한번 균열이 일면 이후 오는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붕괴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북한 선수들이 걱정이다. 94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한국에 3대0으로 패한 북한 팀이 곧바로 탄광으로 직행했다는 탈북자들의 전언이 들려서다.
옥세철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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