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원정월드컵 16강 진출의 목표를 달성한 한국축구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유쾌한 도전’에 나선다. 26일 오전 7시(LA시간) 남아공 포트엘리자베스의 넬슨만델라베이 스테디엄에서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를 상대로 2010 남아공월드컵 16강전으로 세계 8강을 향한 운명의 일전을 펼친다.
이번 대회 목표였던 16강 진출을 달성하기까지 과정이 예비고사였다면 이제부터는 본고사나 마찬가지다. 훨씬 더 어려운 도전일 뿐 아니라 단 한 번의 실패도 허락되지 않는 낙아웃 관문이다. 한 경기를 지더라도 회복할 여지가 있었던 조별리그와 달리 이제부터는 매 경기가 ‘지면 바로 탈락하는’ 사활이 걸린 일전들이다.
하지만 이미 원정월드컵 첫 16강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태극전사들에겐 이제부터가 ‘죽음의 도전’이 아니라 ‘유쾌한 도전’이다. ‘유쾌한 도전’은 허정무 감독이 남아공으로 출발하기 전 내걸었던 대표팀의 모토. 마음에 큰 부담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월드컵 무대에 도전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실 이 표현은 조별리그를 통과하기 전까진 선수들의 마음에 실감되지 않는 말이었다. 국가와 국민의 기대와 열망에 부응해야 한다는 엄청난 짐을 짊어지고 초긴장 상태로 나서는 선수들이 경기를 유쾌한 도전으로 생각하기 힘든 것은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그리스-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를 거치는 험난한 여정을 통과해 16강이라는 1차 목표를 달성한 태극전사들은 이제 어깨를 짓눌렀던 엄청난 부담감을 털어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진정한 의미의 ‘유쾌한 도전’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16강에 진출했으니 이제는 져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진짜 큰 목표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바로 버즈 라이트이어(디즈니만화 토이스토리 주인공)가 외쳤던 ‘무한을 넘어가는 도전(To Infinity, and Beyond!)이다.
한국은 이미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까지 오르는 믿기 어려운 신화를 썼다. 당시 한국의 목표는 1차가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승리였고 2차는 16강 진출이었는데 조별리그에서 폴란드와 포르투갈을 꺾고 이 두 목표를 모두 이뤄낸 뒤부터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거대한 붉은 파도의 용솟음을 타고 세계 4강까지 솟아오르는, 그 누구도 꿈꾸지 못했던 엄청난 일을 해냈다.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범주를 넘어 불가능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 바로 그것이 유쾌한 도전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원정 월드컵 도전 역사는 항상 그 불가능 영역에 놓여 있었다. 한일월드컵의 거대했던 기세의 여세를 몰아 출전한 독일월드컵에서 토고를 꺾고 첫 원정월드컵 승리를 따냈음에도 끝내 16강의 관문은 넘지 못했다. 월드컵 16강이란 성과는 세계 축구의 강호라고 해도 그렇게 달성하기 쉬운 것이 아니다. 믿기 어렵다면 2006 독일월드컵 우승국인 이탈리아와 준우승국 프랑스가 이번 대회서 단 1승도 못 건지고 나란히 조 꼴찌로 일찌감치 보따리를 싼 것을 보면 된다. 그런데 이번엔 우리가 바로 그 관문을 넘어 선 것이다.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었던 박지성이 나이지리아와의 경기가 끝난 뒤 “월드컵 16강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고 고백한 것에서 그 험난함을 실감할 수 있다.
8강행 관문에서 꺾어야 할 상대인 우루과이는 꼭 20년 전인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조별리그 최종 3차전에서도 만났던 팀이다. 그 때 한국은 세계 축구계에서 변방의 팀이었고 벨기에(0-2)와 스페인(1-3)에 연패한 뒤 우루과이에도 0-1로 무릎 꿇어 3연패로 돌아서야 했다. 역사와 전통은 물론 현재 실력에서 우리보다는 강한 팀인 것이 분명하다. 이미 그들은 한국을 ‘으깬 감자’처럼 만들어줄 것이라며 충천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유쾌한 도전에 나선 한국으로선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20년 세월 만에 찾아온 복수전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세계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도약하려는 한국축구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한국축구의 유쾌한 도전이다. 다시 한 번 거대한 붉은 파도의 용솟음치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Let’s Go, “To Infinity, and Beyond!”
김동우 / 스포츠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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