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월드컵 축구에 온통 빠져 살았던 지난주 워싱턴 정가를 뜨겁게 달군 것은 원유유출 사태였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의 한 주는 숨 가쁘게 돌아갔다.
루이지애나 주 연안 멕시코만 해상에서 작업 중이던 영국 석유회사 BP의 시추시설 ‘딥 호라이즌’이 폭발한 것은 4월20일 한 밤중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미처 평가하지 못한 BP와 정부당국이 혼선을 빚는 동안 침몰한 시추시설과 유정을 연결하는 파이프에 구멍이 생기면서 기름이 새기 시작했다. 사고 초기 하루 1천배럴 남짓 흐르던 기름의 양이 며칠 안가 5천배럴로 늘어나면서 멕시코만 사태는 순식간에 하루 수만배럴의 원유가 유출되는 미국사상 최악의 환경재앙으로 악화되었다.
시커먼 기름띠가 바다를 떠돌고 기름에 오염된 해양동물들의 사체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그 바다에 의존했던 주민들의 생업이 중단되는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그런데 그 위기의 현장에선 국민들이 기대하는 ‘대통령의 리더십‘이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오바마는 정부의 가용자원을 총동원하여 피해를 막겠다고 약속했고 현장에도 날아갔다. 그러나 평소 대통령의 ‘쿨’한 태도는 피해주민의 절박함을 이해 못하는 무관심으로 보였고 ‘신중한’ 결정과정은 대기업 책임추궁에 소심한 유약함으로 비쳐졌다. 그건 위기에 직면해 불안한 국민들이 기대하는 ‘따뜻한 가슴’과 ‘단호한 결단력’을 겸비한 대통령의 모습이 아니었다.
초기대응에 실패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진보진영 한쪽에선 “대통령이 수퍼맨이냐? 빅 대디냐? 스쿠버 다이버처럼 물속으로 뛰어들어 기름구멍을 막으란 말이냐?”고 두둔하고 나섰지만 보수진영은 ‘오바마의 카트리나’라고 목청을 높이며 비판의 수위를 낮추지 않았다. 여론도 인색했다. ‘BP에 강경조치를 못 취했다’는 답이 71%에 달했다.
지난주는 이 같은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듯 오바마가 원유유출 사태에 전력투구한 한 주였다.
14일엔 4번째로 현장을 방문해 피해주민들도 만났고, 15일엔 취임후 처음으로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에서 엄숙하게 대국민 연설을 했으며, 16일엔 BP 관계자들과 만나 200억달러 피해보상기금을 확보했다. 하루 뒤인 17일, BP의 최고경영자가 출석해 끝없는 변명만 늘어놓은 연방의회 유출사고 청문회는 이번 사태에서 비난 받아야 할 진짜 주범이 누구인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첫 오벌 오피스 연설은 민주당에서조차 ‘알맹이도 빠지고, 김도 빠진, 어색한 스피치’라는 혹평을 당했지만 1주일 집중노력의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특히 효과적인 것은 200억달러 기금확보다. 세금부담이나 적자증가 없이도 절박한 피해주민들에게 돈을 나눠주는 정부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나름 ‘성공적’으로 유출사태 한 고비를 넘기고 잠시 숨을 고르려던 오바마의 이번 주도 또 하나 돌발 사태로 분주하게 시작되었다. 정·부통령을 비롯한 현 행정부의 전쟁정책 책임자들을 겁없이 헐뜯은 아프간 주둔군 사령관의 롤링스톤 인터뷰 파문…소심하다고 비난당한 BP사태 대응에 대한 반작용이었을까, 이번엔 하루 만에 사령관을 경질하는 결단력을 발휘, 강력한 군 통수권자의 이미지를 유감없이 각인시켰다)
원유유출 사태의 정치적 파장은 이쯤에서 진정된 것일까. 아니면 장기적으로 오바마의 정치력에 타격을 주게 될까. 확답은 어렵지만 아직 ‘오바마의 카트리나’는 아니라는 게 대부분 정치해설가들의 견해다.
우선 BP라는 사태의 원흉이 따로 있어 오바마에게 직접 가해지는 손상이 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출 차단의 실무를 담당한 것도 BP다. 지금 대통령이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최선은 BP를 엄격히 감독하며 주민들의 피해보상을 적극 돕는 조처일 것이다.
공화당도 원유유출 정치쟁점화엔 조심스런 태도다. 17일 의회청문회 때 조 바튼 공화당 연방하원의원의 해프닝에 아연실색한 것은 민주당이 아닌 공화당 지도부였다. 전날 오바마가 200억달러 피해보상기금을 확보한 것은 사기업에 대한 “강탈”이라며 BP에게 거듭거듭 사과를 한 것이다. 자신의 발언에 대한 후유증을 깨닫고 사과에 대한 사과를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지난 주말 TV토크쇼에 출연한 램 임마누엘 백악관 비서실장은 “그게 바로 공화당의 통치철학”이라며 ‘힘없는 개인보다는 돈 많은 대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공화당의 이미지’를 거듭 상기시켰다.
오바마가 기름 유출의 정치적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유출이 얼마나 빠르게 차단될 수 있는가가 변수다.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유정의 분출압력을 낮추는 감압유정을 뚫는 것이 지금으로선 유일한 대안인데 그 작업이 최소 2~3개월은 걸린다. 빨라도 8월초인데 자칫 지연되면 중간선거와 그대로 직결된다. 거기에 2천만 주민을 대피시켜야 할 강력한 허리케인까지 엄습한다면…
원유유출 사태는 오늘로 65일째다. 2009년 여름 정국이 티파티에 기습당했듯이 2010년 여름 정국은 혹 끈적거리는 기름띠로 휘감기게 되는 것은 아닐까. 오늘 G-20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캐나다로 떠나는 오바마의 발걸음도 그리 가볍지는 못할 듯하다.
박록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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