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가 준 선물’
한국, 천신만고 16강
말 그대로 입안이 바짝 타들어가고 피가 말랐던 90분이었다. 가슴 철렁한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었고 마지막 휘슬이 울릴 때까지 숨 막힐 것 같은 긴장감이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태극전사들은 끝내 해냈고 우리의 꿈은 다시 이루어졌다.
한국축구가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서 사상 첫 원정월드컵 16강의 쾌거를 달성했다. 22일 남아공화국 더반에서 벌어진 나이지리아와의 남아공월드컵 조별리그 B조 최종 3차전에서 한국은 이정수와 박주영의 골로 나이지리아(1무2패)와 2-2로 비겨 1승1무1패(승점 4)를 기록, 조 2위로 16강 티켓을 따냈다. 같은 B조의 아르헨티나는 그리스(1승2패)를 2-0으로 꺾고 3전 전승으로 조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오는 26일 오전 7시(LA시간) 남아공 포트엘리자베스에서 A조 1위 우루과이와 8강 티켓을 놓고 격돌하며 아르헨티나는 A조 2위 멕시코와 27일 16강전을 갖는다.
이번 남아공월드컵에서 지금까지 벌어진 경기가운데 가장 스릴 넘치는 격전이었다. 동시에 벌어진 같은 조 경기에서 아르헨티나가 그리스를 꺾으면 한국은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오르지만 나이지리아 역시 2연패 출발에도 불구, 한국을 꺾기만 하면 16강에 오를 수 있었기에 시종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긴장감속에 접전이 펼쳐졌다. 하지만 지나친 긴장 때문이지 한국선수들의 움직임은 초반 다소 경직된 듯 했고 단 12분만에 나이지리아에 선제골을 내주고 말았다.
오른쪽 측면에서 볼을 잡은 치디 오디아가 사이드라인을 타고 드리블하다 문전으로 땅볼크로스를 올렸고 이를 칼루 우체가 차두리의 앞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며 차넣어 한국 골문을 열었다. 김정우가 오디아의 크로스를 막지 못한 것이 1차 문제였고 차두리도 뒤쪽에서 우체의 쇄도를 못봐 순간적으로 반응이 늦었던 것이 실점으로 연결됐다.
한국은 충격을 딛고 전열을 정비, 곧바로 차두리가 오버래핑으로 오른쪽 측면을 돌파, 위협적인 문전 크로스로 코너킥을 얻어내며 반격에 나섰으나 나이지리아의 화력은 만만치 않았다. 특히 전반 35분에는 우체가 미사일같은 중거리슛으로 오른쪽 골대를 강타해 한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하지만 한국은 2분 뒤 천금의 동점골을 뽑아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영표가 나이지리아 진영 왼쪽 측면에서 얻어낸 프리킥을 기성용이 문전으로 올리자 뒤쪽에서 이정수가 머리를 들이댔으나 볼은 머리 대신 그의 다리에 맞고 골안으로 들어갔다. 이영표-기성용-이정수의 조합이 지난 12일 그리스전의 선제골과 판박이였다.
오래 끌려가지 않고 바로 동점골을 뽑아 기세가 오른 한국은 후반 3분만에 간판 골잡이 박주영이 그림같은 프리킥 골로 월드컵 첫 골을 신고하며 경기를 뒤집어 16강행을 예감했다. 나이지리아 페널티지역 왼쪽 외곽 25m 지점에서 상대와 경합하다 반칙을 얻어낸 박주영은 선수들의 벽을 돌아가며 원바운드로 골문 오른쪽을 꿰뚫는 환상적인 프리킥을 꽂아넣어 한국에 2-1 리드를 안겼다.
박주영은 6분 뒤인 9분에도 문전 정면 40m 지점에서 얻은 프리킥을 대포알같은 슈팅으로 연결했으나 골대 오른쪽으로 살짝 빗나가 추가골을 놓쳤고 17분에는 염기훈의 왼쪽 크로스를 슬라이딩하며 슛 했으나 골키퍼에 걸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후 나이지리아의 총공세가 시작됐고 한국은 염기훈 대신 김남일을 투입했으나 오히려 수비진과 미드필드에서 볼을 끊기는 실수가 잦아지며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후반 21분에는 오른쪽을 돌파당해 완벽한 실점위기를 맞았으나 나이지리아 골잡이 아예그베니 야쿠부가 텅빈 골문 앞에서 찬 볼이 골문을 빗나나 놀란 가슴을 달랬다. 하지만 바로 2분 뒤엔 김남일이 문전에서 빨리 볼을 걷어내지 못한 뒤 상대선수를 걷어차 페널티킥을 허용, 야쿠부에게 동점골을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종료휘슬이 울릴 때 까지는 한국의 피를 말리는 가슴 철렁한 순간들이 계속 이어졌다. 나이지리아는 후반 34분에도 오바페니 마틴스가 골키퍼 정성룡과 단독찬스를 잡았으나 슈팅이 골문을 외면, 결정적인 재 역전찬스를 날렸고 종료직전인 후반 44분과 45분에도 빅터 오빈나가 잇달아 대포알같은 중거리슛을 때렸으나 모두 골문 오른쪽으로 살짝 벗어났다. 이들 중 하나만 들어갔어도 16강 티켓의 주인이 한국에서 나이지리아로 바뀌는 것이었기에 더할 나위없이 가슴 떨리는 순간순간들이었다. 드디어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한국은 천신만고 끝에 일궈낸 원정 16강 성과에 감격하고 안도했다.
<김동우 기자>
후반 환상적인 프리킥으로 역전골을 터뜨린 박주영(가운데)이 (왼쪽부터) 염기훈, 기성용, 이영표와 함께 환호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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