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병술·전략·개인기 모두 밀린 한국 1-4 충격패
모두가 꿈꿨던 대 파란은 없었다. 한국축구가 강호 아르헨티나에 호된 맛을 봤다. 비록 공을 둥글었지만 월등한 실력 차는 어쩔 수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행운마저 따라주지 않았다.
17일 새벽 남아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사커시티스테디엄에서 펼쳐진 남아공월드컵 B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한국은 우승후보 아르헨티나에 1-4로 무릎을 꿇었다. 전반 초반 박주영의 자책골로 선제골을 내준 뒤 곤잘로 이과인에 해트트릭을 얻어맞는 등 무려 4골이나 내준 것은 충격이었고, 전반 종료직전 상대수비 실책에 편승, 이청용이 한 골을 만회해 영패를 모면한 것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로써 조별리그 1승1패를 기록한 한국은 오는 22일 나이지리아(2패)와의 B조 최종전에서 원정월드컵 16강 목표달성의 사활을 건 한판승부를 펼치게 됐다.
이날 허정무 감독은 그리스전과 달리 박주영을 원톱, 박지성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세우고 오른쪽 풀백 차두리 대신 오범석을 내보낸 4-2-3-1 포메이션으로 1차전과 달리 변화를 줬다. 공격수들까지 수비에 적극 가담, 수비벽을 두텁게 쌓아 아르헨티나의 수퍼스타 플레이메이커 리오넬 메시에게 공간을 주지 않고 그에게 패스가 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한 뒤 역습을 노리는 작전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작전은 완전한 실패였다. 아르헨티나의 4골은 모두 오범석이 지키던 측면이 뚫리면서 비롯됐고 중앙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선 박지성은 근래 가장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공수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출발부터 수비적인 자세는 그리스전 완승으로 충천했던 자신감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초반 주도권을 뺏기고 일방적으로 밀리는 경기를 하는 빌미가 됐다.
하지만 이날 한국이 맥없이 무너진 최우선 이유는 바로 메시였다. 그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대하는 메시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한국 수비수 3~4명이 따라붙는 가운데서도 신들린 집중력과 드리블로 한국 수비진을 공포에 몰아넣었고 그를 막기 위해 더 많은 한국선수가 몰리면서 후방이 완전히 노출됐다. 사실 이날 3골을 넣은 이과인보다 메시가 훨씬 두려운 존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초반부터 아르헨티나의 공세에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한국은 전반 17분 자책골로 뼈아픈 선제골을 헌납했다. 오범석이 페널티박스 왼쪽 외곽에서 파울을 범해 프리킥을 내주자 이를 메시가 전매특허 왼발로 날카롭게 문전으로 올렸고 예리하게 날아간 볼은 수비에 가담했던 박주영의 정강이에 맞고 굴절돼 골문에 빨려 들어갔다. 바로 앞에서 점프한 박지성과 마르틴 데미첼리스가 모두 볼을 미스하면서 박주영은 꼼짝 못하고 자책골의 멍에를 뒤집어쓰고 말았다.
기세가 오른 아르헨티나는 33분 추가골을 뽑았다. 왼쪽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니콜라스 부르디소가 백헤딩으로 연결하자 골문 오른쪽에 도사리고 있던 이과인이 헤딩으로 연결, 2-0을 만들었다. 이후에도 아르헨티나는 안헬 디마리아와 메시의 위협적인 슛으로 계속 한국 골문을 위협했고 한국은 그대로 무너지는 듯 했으나 전반 종료직전 상대 실수를 놓치지 않은 이청용의 집념어린 만회골로 희망을 되찾았다. 인저리타임에 정성룡이 길게 차낸 볼을 박주영이 헤딩으로 떨어뜨려 주자 이를 걷어내려던 데미첼리스의 실수를 틈타 볼을 가로챈 이청용이 오른발슛으로 아르헨티나의 골문을 열었다.
기세가 오른 한국은 후반들어 공세로 전환하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 아르헨티나를 압박하기 시작했으나 후반 12분 결정적인 동점찬스를 염기훈이 살리지 못해 땅을 쳤다. 역습상황에서 중앙을 돌파해 들어간 이청용이 페널티박스내 오른쪽으로 내준 패스를 받은 염기훈은 골키퍼와 1대1 상황에서 왼발 슛을 때렸으나 옆 그물을 때리고 말았다. 이 슛이 들어갔으면 당시 분위기상 아르헨티나도 낙관하기 힘든 상황이 될 뻔 했지만 불발탄이 됐고 후반 31분 아르헨티나의 쐐기골이 터지며 승부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한국 페널티박스 왼쪽을 완전히 돌파한 메시는 강력한 왼발슛을 날렸고 첫 슈팅이 정성룡에 맞고 튀어나오자 재차 왼발슛을 때렸는데 볼은 골대에 맞은 뒤 문전 앞에 서 있던 이과인 앞에 떨어져 3번째 골로 연결됐다. 사실 이과인이 볼을 잡을 때 오프사이드 위치였지만 부심의 깃발은 올라가지 않았다. 이르헨티나는 4분 뒤 메시의 절묘한 패스를 받은 서지오 아게로의 칩샷 크로스를 이과인이 헤딩으로 꽂아 넣으며 4-1 대승의 마침표를 찍었다.
<김동우 기자>
곤잘로 이과인(9번)이 자신의 해트트릭을 완성하는 아르헨티나의 4번째 골을 성공시킨 뒤 환호하고 있다.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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