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함성이 진동한다. 그 함성이 하나가 되어 거대한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느낌이다. 또 다시 울려 펴지는 ‘대~한민국’의 연호. 4년마다 월드컵의 들뜬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축구란 무엇인가. 새삼 되새겨지는 질문이다. 그래보아야 공놀이 아닌가. 애써 그 의미를 축소시킨다. 그러면서도 가슴 졸이며 새벽부터 TV 앞에 나가 앉는 스스로의 모습에 겸연쩍은 생각마저 든다. 축구가 도대체 뭐길래….
“축구는 세속화된 종교다. 기독교인은 전 세계인구의 30%다. 알라 신봉자는 20% 정도다. 그러나 사람들의 축구에 대한 헌신은 모든 종교의 신조, 인종, 언어를 초월한다.” 타임지의 축구 예찬론이다.
“전 세계 208개국, 400개 TV를 통해 지구촌 곳곳으로 중계된다. 그 TV 브라운관을 통해 수십억 인류의 눈은 현대의 판테온에 모셔진 신(神)들의 몸놀림을 뒤쫓는다. 축구팬들에게 있어 월드컵 무대를 수놓는 그들은 부족을 대표한 전사(戰士)이자 신, 그 자체다.” 이어지는 보도다.
“오사마 빈 라덴이 살아 있다면 TV 앞에서 월드컵 경기를 지켜볼 것이다. 수십억의 축구팬들처럼.” 8년 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한 서울 월드컵 때 뉴욕타임스의 보도다. 축구만큼 세계화 한 것도 없다는 이야기다.
“축구는 국가와 국가 간의 보편적 가치인 민주주의의 표현이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 민주적이다. 축구의 제전인 월드컵은 모든 차별에 맞서서 인류의 하나 됨을 선포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석학 기소르망의 말이다.
계층, 국가, 인종, 이념의 벽을 넘게 하는 문명의 에너지로 축구를 바라보았다. 축구를 세계화 시대의 이데올로기이자 평화의 중재자로 파악한 것이다.
글쎄, 그런가. 그렇지만 질문은 계속 뇌리를 맴돈다. 축구는, 아니 월드컵은 한국인들에게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질문 말이다.
2002년에 이은 2006년 월드컵의 문화 코드는 광장이다. 한 한국의 문화평론가의 지적이다. “한국의 문화코드에는 광장이란 것이 없었다. 골목이 존재했다. 골목은 끼리들만이 모이는 폐쇄적 공간이다. 골목문화는 확장성과 개방성으로 발전되지 못한다. 이 골목문화를 열린 문화로 바꾼 것이 붉은 악마의 길거리 응원이다.”
붉은 색 하나로 자발적 통합을 실현시킨 붉은 악마의 길거리 응원을 아름다운 신명으로 묘사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동시다발로 스스로 모여 한 마음이 돼 기쁨을 작열시킨다.
감동적인 열린 광장, 그 길거리 응원을 한국이라는 공동체의 힘을 보여준 응집력으로 풀이했다. 서울 월드컵에서 시작된 이 길거리 응원야말로 한국의 자랑스러운 문화라는 것이다.
‘광장’으로 지목된 이 문화 코드에는 그러면 부정적 요소는 없는 것일까. 그리고 ‘월드컵’자만 들어갔다고 하면 수십만, 수백만이 몰려 ‘대~한민국’을 외쳐대는 그 모습이 과연 외국인에게 부러움으로만 비쳐질까.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십만의 붉은 물결. 이는 단순히 축제로 보기에는 어딘가 비정상적이다. 거기서 많은 외국인들이 발견하는 것은 감동의 축제가 아닌 과도한 한국적 민족주의다.
시도 때도 없다. 툭하면 광장으로 모이는 거다. 그리고 거기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월드컵 4강’ 이후의 현상으로, ‘광장병’은 붉은 악마의 길거리 응원이 남긴 사회적 병리다.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 자기를 확인한다.
그 자기 확인과정에서 발견 되는 것은 ‘우리’로 포장된 획일성이다. 오직 붉은 색 투성이인 단일색은 색깔이 없는 것과 다름없다. 색깔 없는 획일주의가 지배하는 광장은 그 자체가 대중의 밀실이다. 숫자가 많은 것 같지만 결국은 하나다. 그런 대중은 광장에 집결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월드컵은 대중이 하나 된 힘으로, 목청 높은 소리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풍조를 정착시켰다. 낮에는 박수치며 소리 지르고, 데이트에, 이벤트까지 벌인다. 그리고 밤에는 촛불을 켠다. 무슨 문제든 광장에서 해결하려 들면서 모든 집회와 행사는 놀이화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와 동시에 발견되는 또 다른 현상은 쏠림이다. 사이버공간을 제멋대로 휘젓고 다니는 댓글의 폭주에서 그 현상은 재삼 확인된다. 그 신드롬에서 촉발된 게 촛불문화다. 미선·효선이 촛불시위에서 탄핵반대시위, 그리고 미친 소가 날뛰기까지.
“2002년을 기점으로 월드컵은 우리에게 괴물이 됐다. 돈벌이 도구, 애국을 증명하는 도구가 됐고, 다툼과 분열의 원인이 됐다.” 모두가 월드컵에 열광한다. 그것은 결코 지고(至高)의 선(善)일 순 없다는 깨달음에서 비롯된 한국 사회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자성의 소리다.
축구는, 아니 월드컵은 한국인에게 무엇인가. 재차 질문을 던져본다. 글쎄…. 여전히 혼란스럽다. “대~한민국, 짝짝 짝 짝짝”의 엇박자 소리에 가려서. 그 답은 아무래도 2010 월드컵이란 한 여름 밤의 꿈이 끝난 시점에서 보다 명료히 떠오르는 게 아닐까.
옥세철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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