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의 자결은 청사(靑史)에 빛난다. 쇠잔한 국운을 피 토하며 절규한 외교관의 찬란한 순국은 백성들의 혼백으로 꽃 피운다. 구한말 민영환 선생은 자유와 독립이 강탈당할 때 백성은 노예가 되지 않느냐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순국정신은 선비의 완전한 희생을 뜻한다. 열강의 지원을 울부짖던 초대 주미전권 공사 민영환의 자결(당시 45세)은 역사와 민족을 향한 경고였다.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민병진 황실 지친은 한국 관광 산업의 선구자로만 알았다.
잠시 후 그의 정신적 유산은 민 공사의 열강 외교 활동이 세계만방에 달했고, 일본의 강탈과 잔인성은 ‘조선을 죽이다(2009 동국대 출판부 발행)가 입증하듯 “늙은 여우를 단칼에 찔렀다”는 명성황후 시해에 사용한 살상용 칼의 내력을 들을 수 있었다. 현지답사로 본 조계사 옆 초라한 민 공사 동상 주변의 여러 노숙자와 1백여 년 전 99칸 저택이 한식 요정에서 종로구 견지동의 한미빌딩이 된 한말의 비극을 엿 볼 수 있었다.
국운이 기울던 대한제국을 대표하여 미·영·불·독·노·중·일·오 등을 특명 전권대사로 국제적 인정, 대화 이익증진에 성심을 다했다. 그는 “매국 멸종의 망동을 보며 국운이 기울어지는 형편을 관망할 수만은 없다”고 설파했다.
그의 주장은 대한제국의 민권신장과 근대적 자본주의 사회발전을 향한 부국강병책이었으나 각료(대신)들은 사사건건 반대하고 나섰다.
황제는 대한 독립을 지켜 줄 전략적 동반자로 미국의 힘을 믿었다. 최초의 미국공사 푸트(L.H. Foote)가 1883년 5월에 도착하여 조미조약 제 1조에 제 3국의 부당한 간섭이나 침략에 대한 중재를 약속했다.
고종은 미국이 조선을 독립국으로 대우하는데 감동하여 천군만마를 얻은 듯 기뻐했다. 고종은 ‘독립국’을 재다짐 하고자 미국에 보빙사를 보냈다. 보빙사절은 DC 백악관 문턱에서 큰 절을 하며 수혜조약까지 시도했으나 미국은 통상 시장으로 인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일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는 저녁에도 황제의 결재도 없이 도장을 쉽게 찍어 준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의 매도 소식에 분개하여 피눈물로 통곡하면서 문을 닫고 말았다.
며칠 후에 찾아 온 판중추원사 조병세와 함께 조약폐기를 주장하는 두 번의 상소를 올렸다. 마침내 경무관 오진섭이 대전서 해결방안을 묻자 답하여 “신의 상소가 효험이 없다면 신의 머리를 베어 속여서 아뢴 죄를 대신 하겠나이다”하니 붉은 충심에 백관들도 감탄했다.
고종 32년(1895, 34세)에 주미 전권공사로 임명을 받았으나 잔인한 일본의 명성 황후 시해 사건(비밀작전 ‘여우사냥’)에 충격을 받고 낙담, 고향에 내려갔다. 이후 일체 외부와 소식을 끊고 교제를 단절하며 접촉을 피했다.
순국 결행은 회나무골(현 종로구 공평동 1번지)의 염종(청지기) 이완식 집에 갔으나 일본군의 감시로 그의 동생 이만식 집에서 결행했다. 그는 주머니칼로 스스로 목을 찔러 절명했다. 본댁(전동)서 시행할 수 없었던 이유는 7순 노모와 유족 5남매에 대한 예의와 일본 군인의 감시 때문이었다. 그때 그의 나이 45세였으며 1905년 11월30일 새벽 6시의 일이었다.
려흥 민씨 가문에서 태어난 민 공사는 황실지친으로 황후 민비의 종질이며 황제의 외종제로서 흥선 대원군의 처조카였다. 고종 14년에 문과 장원급제 했으며 20세(1881)에 당상관으로 승진, 대사성·동부승지가 되었다.
그의 애국애족 정신은 이후 항일 투쟁의 의병활동, 3·1독립 운동, 임시정부 수립, 8·15 광복절로 이어졌다.
마침내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급)이 1962년 3월1일에 수여됐다. 미국 선교사 헐버트(H. B. Hulbert)는 “동양 제일의 의인이요, 공평정대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유서 두 통을 남기면서 “이 몸은 죽어서 황은에 보답하고 이맘은 동포들을 도우리라”라고 썼다.
“큰 종이 울려 퍼지는 듯 했다”는 덴마크 격언처럼 주권을 빼앗기고 혼탁하던 구한말 시대에 큰 울림이 되었던 민 공의 애국심이 새삼스러운 시대를 살고 있다.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아끼는 외교관을 보고 싶다. 외교는 국정 운영의 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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