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영국계 글로벌 석유회사 BP가 운영하던 멕시코 만의 원유 시추시설이 폭발하여 11명이 죽는 사고가 났다. 이 사고로 바다 밑 유정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기름이 지금껏 유출되어 사상 최대의 환경 재앙을 빚고 있다.
사고가 일어나면 당연히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묻게 된다. 물론 여기서는 일단 이 시설을 운영하던 BP에게 책임을 묻게 된다. 사고를 방지하지 못한 것도 문제가 되겠지만 사고 발생후 BP측이 즉각 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미국정부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사고를 계기로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우리가 기업들에게 과연 어디까지 책임을 물어야 하는 가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00년도 더 되었지만 지금처럼 큰 비중을 갖게 된 것은 지난 20-30년 사이의 일이다. 1984년 유니언카바이드의 인디아 보팔 공장에서 독성개스 유출로 수천명이 죽는 사고가 있었고, 1989년 엑손모빌사의 발디즈 유조선이 알래스카 앞바다에 원유를 엎지르는 사고를 일으켰고, 2001년 엔론 사의 부정과 비리가 큰 파동을 일으켰고, 최근에는 월가 대형 금융회사들의 방만한 경영이 세계적 공황 사태까지 빚어냈고, 도요타 자동차의 대규모 리콜 사태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는 등 대기업을 둘러싼 사고가 빈발하자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오늘날 흔한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은 인류역사상 가장 큰 발명 또는 혁신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다수의 투자자들이 유한책임 주주가 되어 회사를 소유하되 경영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주식회사 기업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가치와 부를 창출하는데 최적이라는 것이 그동안 입증되었다. 그래서 회사 기업들의 폭발적인 증가로 우리는 지금 ‘기업의 시대’를 살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경제단위를 100개 늘어놓았을 때 그 중 반 이상이 기업들이다 (즉, 국가경제 보다 규모가 큰 기업들이 많다). 전 세계 500대 기업들이 세계교역량의 70%를 차지하고 있고 세계 경제활동의 30%를 점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 덕분에 지난 20~30년 동안 세계가 이룬 경제성장은 인류가 초기 농경시대 이후 1950년대까지 거둔 성장보다 더 크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더욱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다.
기업은 성장, 발전하면서 다양한 기능을 하게 되고 영향력도 커지게 마련이다. 여기서 회사가 오로지 주주들을 위해 이윤과 주가를 올리는 데만 몰두하고 종업원이나 소비자, 지역사회나 주위환경을 소홀히 하면 이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책임을 묻자는 것이다. 이는 기업경영의 합법성, 공정성, 투명성, 도덕성을 아우르고 종업원의 근로조건, 제품 안전성과 소비자 권익, 환경 친화적 경영, 지속가능 경영, 나아가 기업수익의 사회환원 같은 덕목도 포함한다.
한편 기업에 이렇게 과중한 책임을 묻는 것은 기업경영을 위축시킬 것이다. 기업들 덕분에 한국도 저렇게 경제가 성장했고 기업들 덕분에 인류가 이 정도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이제 사람들은 기업들에게 모든 책임을 물으려 하고 있다.
그래서 유엔은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를 예방하고 책임 있는 경영을 권장하기 위해 글로벌 컴팩트라는 국제협약을 제정했고, 국제표준기구(ISO)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국제표준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책임의식을 증진시키기 위한 이 같은 제도나 조치들은 종종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그래서 기업들의 자발적, 적극적 참여가 해결책이 될 뿐이다.
기업의 막중한 사회적 책임을 논의하는 중에 한편에서는 기업이 져야 할 유일한 책임은 “장사를 잘 해서 이윤을 많이 남기는 것” 뿐이라고 엉뚱한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노벨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먼 포함). 또 비슷한 맥락에서 기업들에게 여러가지 책임을 따로 물을 필요가 없다고 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기업들이 책임 있는 경영을 하느냐의 여부는 결국 ‘시장’이 가려낼 터이기 때문이란다. 시장은 성실하게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게는 ‘상’을 주고 무책임한 기업에게는 ‘벌’을 내린다는 말이다.
과연 이번 사고 이후(4월말부터 6월초 사이) BP의 시가 총액이 35%이상 하락했다. 시장은 BP의 사회적 책임을 준엄하게 묻고 있는 셈이다. 어쨌거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장석정 / 일리노이 주립대 경영대 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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