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이사 온 집 근처에는 ‘오리지널 타미스 월드 페이머스 버거’(타미스버거)라는 햄버거가게가 자리하고 있다. 올해로 문을 연지 64주년을 맞는 이곳은 타미스버거가 태동한 본점 격이다.
외관은 강산이 여섯 번 이상 바뀌도록 거의 달라지지 않아 역사만큼이나 후줄근하다. 촌스럽기까지 한 빨강색 지붕, 안이 들여다보이는 협소한 주방에는 캐시어와 주방직원들 3~4명이 뒤엉켜 일을 하고 있다. 여기다 꼬박 서서 햄버거를 먹어야 하는 불편(이곳은 좌석과 테이블은 없고 주차장 구석에 스탠드만 있다)까지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도 문을 여는 24시간 내내 북적인다. 대략 일주에 1만5,000명 이상이 찾는다고 하니 하루 고객만 2,000명이 넘는 셈이다. 이곳에서는 2~3년 된 단골은 명함도 못 내민다. 향수가 그리워 찾아오는 30~40년된 광팬들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종종 할리웃스타 뺨치는 멋진 차림을 한 사람들이 리무진에서 내려 줄을 서는가 하면 아예 인근 대로에 대형 소방차를 주차한 채 동료들과 ‘오붓한 회식’을 갖는 소방관들 모습도 볼 수 있다.
햄버거 가게가 지천인 LA에서, 그것도 럭서리한 인테리어의 멋진 매장을 제쳐두고 허름한 이곳까지 고객이 몰리는 이유는 타미스버거만의 독특한 맛 때문이다. 얼리지 않은 신선하고 두꺼운 패티 위에 치즈와 양파, 토마토 등을 듬뿍 넣고 그것도 모자라 히스패닉 음식인 걸쭉한 칠리까지 얹으면 타미스만의 색다르고 오묘한 맛을 내는 ‘원조 칠리버거’가 탄생한다.
타미스버거를 여느 동네의 장사 잘 되는 햄버거 가게쯤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창업주 타미스 콜럭스에 의해 1946년 현 1호점 자리인 베벌리와 램파트 길 코너에서 구멍가게로 출발했지만 성장을 거듭, 지금은 라스베가스를 포함 남가주에 30여매장을 둔 어엿한 패밀리 기업이 됐다.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던 타미스 패밀리 사이에 최근 불화가 불거지면서 ‘쨍그랑’ 소리가 문밖까지 들렸다. 창업주 아들로 회사 지분 10%를 보유한 타미스 콜럭스 주니어가 ‘타미스 주니어 칠리 팩토리’라는 온라인 업체를 만들어 따로 칠리를 판매한 게 발단이다. 이름은 물론 타미스버거의 트레이드마크인 칠리까지 유사하다는 판단에 타미스 일가는 판매중지 소송을 제기했고 양측 간 감정의 골은 더 깊어졌다. 타미스버거는 1992년 창업주가 사망한 후 경영권이 가족들에게 분할됐고 현재 콜럭스 주니어의 조카딸이 최고 경영자를 맡고 있다.
콜럭스 주니어는 “어려서부터 스탠드에서 아버지가 칠리를 만드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내가 판매하는 칠리는 고기가 더 많이 들어간 진하고 깔끔한 맛”이라며 자신만의 칠리를 만들어 팔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타미스 측은 “콜럭스 주니어가 칠리 레서피를 훔쳐 갔지만 맛은 오리지널과 다르다”고 전제하면서도 소송 취하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어 타미스 패밀리 간 싸움은 더 치열한 양상을 띨 것으로 보인다.
‘먹거리 천국’ LA에는 제법 성공한 레스토랑 가족기업들이 많지만 그만큼 경영권 등을 둘러싼 가족 불화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가족 간 패가 갈리며 몸살을 앓았던 지중해 스타일 치킨체인 ‘잔코 치킨’(Zankou Chicken)의 경우 오너가 그의 오누이와 어머니를 살해한 후 자살하는 끔찍한 비극을 겪었으며 ‘인 앤 아웃’ 햄버거도 최근 몇 년간 치열한 ‘권력투쟁’의 아픈 상처를 갖고 있다. 1948년 리처드 스나이더 부부가 볼드윈팍에서 창업한 ‘인 앤 아웃’의 경우 1993년과 1999년 스나이더의 두 아들이 비행기 사고와 처방약 남용으로 각각 숨을 거둔 후 창업주 손녀가 가업을 이어 받았으나 ‘분쟁의 덫’에 걸려 한동안 휘청거렸다.
“인간은 아버지의 죽음보다 유산의 상실을 더 오래 기억한다.” 외교관이자 정치이론가인 마키아벨리의 말이다. 서글프지만 ‘돈이 피보다 진하다’는 상속분쟁을 대변한 표현이다. 특히 패밀리 기업에서 형제·자매 등 가족 간 상속이나 경영권을 놓고 싸울 경우 감정적으로 더 격하게 대립하게 되며 법적분쟁에 이르면 ‘핏줄’까지 갈라놓기도 한다.
‘타미스버거’나 ‘인 앤 아웃’ ‘잔코 치킨’ 등은 LA를 대표하는 레스토랑 가족기업이며 독특한 맛을 자랑하는 LA의 ‘지역음식’이기도 하다. 사실 미국사람 중에 ‘타미스버거’나 ‘인 앤 아웃’ 햄버거를 맛본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이들 식당은 먼저 입소문을 타게 되고 LA에 올 때 한 번쯤은 찾게 되는 관광상품 역할도 하는 것이다.
‘인 앤 아웃’의 내분이 발생했을 때 많은 단골고객과 주류 언론들이 걱정한 것은 혹시나 맛과 신선도, 분위기 등이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LA의 대표적 식당 가족기업들의 분쟁이 여기까지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해광 /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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