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한ㆍ일ㆍ중이 한 배에 탄 제주 정상회의가 종료됐다. 같은 문화권이라 잘 통할 것 같은 세 나라는 예상과는 달리 매사에 삐걱거리기만 했다. 그만큼 풀어야 할 역사적 구원도 많고 경쟁심도 만만치 않다.
그런 세 나라가 화창한 제주 날씨를 만끽하며 아시아의 미래를 논했다. 동북아 경제협력 강화를 위한 ‘비전 2020’이 채택되고 이를 위한 상설사무국을 한국에 두기로 했다. 3국간 자유무역협정(FTA)과 경제통합 추구, 환경보호 협력 확대, 인적교류 증진도 여기에 담았다.
특히 한·중은 양국 간 FTA의 실무 사안을 보다 구체적으로 협의키로 양해각서(MOU)를 맺었고, 한·일은 FTA 협상 재개의 실무대표를 국장급으로 격상시키기로 했다. 또 3국은 한ㆍ일ㆍ중 FTA 체결을 위한 산관학(産官學) 공동연구를 2012년까지 완료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동안 동상이몽 속에 자국의 산업별 득실만 앞세워 왔던 분위기와는 달리 3국의 경제협력을 위한 신중한 논의를 차분하게 진전시켜 나가자는데 합의한 것은 큰 소득이다.
무엇보다 이번 3국 정상회동의 최대 관심사는 ‘천안함 사건’이다. 특히 중국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가 회의 내내 주목거리였다. 우리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중국이 ‘책임 있는 국가’답게 행동하려고 노력한 모습이 역력하게 보인다. 평화와 안정을 위해 ‘제재’보다는 ‘대화’를 강조하면서도, 일본의 하토야마 전 총리가 제안한 천안함 전몰장병에 대한 애도 묵념에 동의하고, 유족에 대해 애도를 표한 것에서 중국의 깊은 의중을 읽을 수 있다.
천안함 피격조사 결과에 대해 평가·분석을 진행 중이라던 기존 태도에서 “공동조사와 각국 반응을 매우 중요시”한다고 밝힌 점은 의미 있는 변화다. 이 문제에 대한 세계 이목을 의식하고 있는 중국이 향후 전개되는 북한 제재에 어떤 카드를 선택할 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지만, 예전처럼 북한만 감싸는 행동으로 버텨낼 것 같지 않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태도를 미리 예단,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반대할 것이 분명하다는 등의 성급한 결론을 내릴 필요가 없다.
특히 이번 회동에서 일본 역할이 빛났다. 대전 현충원의 ‘천안함 용사’ 묘역을 참배하고 정상회의 석상에서 이례적으로 묵념을 제안했으며, 북한의 명백한 반성과 사죄가 전제돼야 6자회담 재개가 가능할 것이란 점을 강조한 하토야마 전 총리의 언행을 높이 평가한다. 앞으로도 이런 한일 공조관계가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회의를 통해 우리의 입장을 다시금 명확히 전달했다. 전쟁을 두려워하지도 않지만 전쟁을 원하는 것도 아니라며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라도 확실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강력한 대북 제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잘못한 북한을 그냥 넘어가서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할 수 없다는 사실, 전쟁 해보겠다는 거냐며 위협하는 북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결심을 중국과 일본에 이해시켰다.
북한은 이번 회담시간에 맞춰 평양 10만 군중대회를 개최, 대남 적개심 고취에 열을 올렸다. 체제 단결을 획책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처지에 놓인 북한 통치권자의 당연한 선택이다. 천안함 소문이 북한 내부에 벌써 퍼진 지 오래다. 남조선 배를 공화국이 수장시켰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6월4일과 5일 사이에 전쟁이 난다는 수군거림이 돌고 있다. 굶어 죽으나 전쟁 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북한 주민 심정이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다.
북한과의 지리한 싸움은 이번 천안함 피격사건을 계기로 끝을 보자. 북한에 끌려 다니는 것도 이번으로 끝내자. 도와주면 감읍해서 변하겠지 하는 짝사랑도 이제 그만 두자. 대신 북한 통치 엘리트들이 어떤 사고에 젖은 사람들인가를 이번에 똑똑히 보자. 잘못한 북한을 어떻게 다루는 것이 효과적인가를 이번에 철저하게 깨닫고 익히자. 이번 제주 정상회의에서 보인 한ㆍ일ㆍ중 3국 공조가 이런 희망을 싹틔우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영수 /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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