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경수 엄마는 전화를 걸어 몇 번인가 할 이야기가 있는 듯 망설이다가 “이 답답한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아야만 속이 조금은 시원할 것 같다”면서 서두를 꺼냈다.
“나 지금 고해성사하려고 전화한 거야”라면서 머뭇거리며 “저기 우리 아버지가”라고 서두를 꺼내기도 전에 그녀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성미 급한 나는 재촉하듯 “왜 그래? 아버지가 어디 많이 아프셔? 무슨 일 있으시데? 왜 자동차 사고라도 나셨대?”라며 말을 급히 이어갔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내 마음이 많이 아파서. 글쎄, 자기도 알잖아. 우리 친정 어머니 작년에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뉴저지 오빠 집 가까이에 있는 노인 아파트에 혼자 살고계신 것 말이야.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보고 싶어 우리 집에 운전을 하고 오시는데 오시다 보면 아무래도 3~4시간은 걸리니 거기다 조금 천천히 운전까지 하시니 무슨 일 없이 잘 오시나 어떨 땐 공연히 걱정이 될 때도 있어. 이상하게 우리 아이들이 어려서 그러시나 오빠네 아이들도 있는데 유난히 우리 아이들보면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거든... 거의 두 달 정도마다 한 번씩 오시는데, 그때마다 아이들은 산타가 오셨다고 너무 좋아 어쩔 줄 모르지. 왜냐하면 아버지는 정부에서 나오는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우리가 그러시지 마시라고 해도 모아두셨다가 아이들 과자랑 장난감들을 사가지고 오시니까.
그 멀리서 정성이시지. 나보고 누가 돈 줄 테니 두 달마다 3시간씩 운전해서 오라고 하면 나는 절대 못할 것 같아. 물론 아이들이 할아버지가 오시면 너무 좋아서 두 살 위인 누나는 그러지 않는데 특히 개구쟁이 경수는 할아버지 목에 매달리고 업히고 무척 좋아하지.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아이들이 할아버지가 오시면 그렇게 한국말을 잘 할 수가 없어서 우리도 가끔 깜작 놀라지. 그러면 아버지도 ‘아이고, 내 새끼, 아이고 내 새끼 이뻐라’라고 하시며 너무 좋아 하신다 말이야.
그런데 며칠 전 오신 다음날 낮쯤이었어. 내가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경수가 새로 산 세 발 자전거를 할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인지 집 앞 공원에 가자고 졸라대는 거야. 아버지는 그러자고 하시며 한 20분 내는 돌아오신다고 하시며, 경수와 함께 나가셨어. 물론 세 발 자전거도 가지고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두 사람이 돌아왔는데. 경수 이마에서 피가 많이 나고 있는 거야. 그리고 아이는 나를 보더니 죽는다고 울어대는 거 있지. 당황한 나는 아이를 안으며 다짜고짜 아버지에게 화를 냈지. ‘아버지는 도대체 애도 하나 못 보는 거예요. 어쩌다 애를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으셨어요.’ 마치 아버지가 애를 일부러 넘어뜨린 것처럼 말이야. 세상에 아이는 나만 가진 것처럼 난리를 치면서 말이야.
화가 난 김에 나온 말이었지만 아무 대답이 없으신 아버지, 그때 나는 속으로 벌써 후회를 하고 있었지. 그리고 급히 아이를 응급실에 데려가서 3바늘을 꿰매고 돌아오는데, 차 안에서도 역시 아버지는 고개를 푹 숙이시고 아무 말씀이 없으신 거야. 나는 그때 생각했지, 이래서 자식 키워봐야 다 소용없다는 말씀을 어른들이 하시나보다라고. 점심 식사 후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버지가 계신 방문을 열어보니 아버지는 돌아가실 채비를 하시며 짐을 다시 싸고 계시는 거야. 보통 오시면 4~5일은 계시다가 가셨는데 말이야.
그래서 나는 아버지 가방을 뺏으며 저녁 잡수시고 내일 가라고만 했지, 내 목소리 퉁명스러운 것 알지. 거기다 말솜씨까지 없어서 그냥 며칠 더 계시다 가세요라고 할 걸... 그리고 또 후회했지... 그리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아버지를 부르러 방에 갔더니 무척 피곤하신지 낮잠을 주무시고 계셨어.
그런데 아까는 앞에 머리에 모자를 눌러쓰셔서 또 정신없어서 잘 보질 못했는데, 글쎄 아버지 이마에 경수 두 배쯤 더 길게 찢어진 상처가 있는 거야. 그리고 소매를 접었다 편 곳에 온통 피가 묻어 있는 거야. 거기 놀이터에 6개짜리 층계가 있어서 주민들이 항의해서 곧 그쪽을 막을 거라고 했는데...
아마 아버지가 경수가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고 하시다가 그렇게 다치신 것 같아. 자기도 알지. 경수가 워낙 천방지축인거, 정말 못 말려... 나는 약과 응급 붕대를 들고 와서 아버지 이마에 바르려고 하는데... 글쎄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거야. 엄마 돌아가시고 난 후 자꾸 외롭다고 하시는데... ‘아버지 잘못했어요. 이렇게 경수보다 더 많이 다치셨는데 지금이라도 응급실에 가세요’라고 했지.
아버지는 ‘에미야, 나는 괜찮다. 자라는 아이들도 아닌데, 흉터가 이 나이에 좀 생긴다고 아무도 뭐라고 얘기하는 사람 없다’ 하시며 오히려 나를 위로하시는 것이었어.
‘아버지, 우리 아들 유난스러워서 죄송해요.’ ‘아니다, 내 손자인데 뭐라 말하냐’라고 하시는 거야. 그리고 내가 한 행동이 새삼 후회되고 내 머리라도 쥐어박고 싶은 거 있지. 우리가 언제라도 자식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부모 사랑을 어찌 감히 따라 갈수나 있겠어. 그래서 나도 아이들 때문에 요새는 집에 있으니, 또 아버지가 자식들이랑은 함께 안 사신다고 하니 여기 가까이 노인 아파트로 이번 기회에 이사를 오시라고 해야겠어.
그리고 점심이라도 따뜻하게 잡수시게 해 드리고 맛있는 반찬도 자주 해다 드려야겠어.
참 그리고 용돈도 더 드려야지. 그런데 어쩌다 이제 내가 철이 나는지...”라면서 웃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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