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굳 마샬(Thurgood Marshall)은 1967년에 린든 존슨 대통령에 의해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연방대법원 판사로 임명되었다. 볼티모어 태생인 그가 1930년에 흑인 대학 링컨을 졸업하고 고향인 메릴랜드로 와서 메릴랜드법과대학에 입학원서를 냈지만 흑인들의 입학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학장의 짧은 편지를 받게 된다. 그래서 마샬은 워싱턴 DC의 흑인 대학인 하워드 법대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20세기 중반까지 계속된 미국 인종 분리 교육의 사망선고였던 1954년의 브라운 대 (위치타 캔사스) 교육구 사건에서 전국 유색인종발전위원회(NAACP)의 고문 변호사로서 원고들을 대표했던 이가 바로 그였다. 현재 오바마에 의해 존 폴 스티븐스의 후임으로 대법원 판사에 지명된 엘레나 케간 현 법무차관은 변호사가 된 후에 마샬 대법원 판사의 법률 보좌관(law clerk)을 했을 뿐 아니라 대법원 앞에서 연방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법무차관의 위치에도 마샬이 대법원으로 옮기기 전에 있었던 자리고 보면 보통 인연이 아니다.
마샬의 경우 메릴랜드 법대는 대법원 판사를 하나 배출했다고 자랑할 수 있는 기회를 하워드대학에 고스란히 넘겨준 셈이 되었다. 케간이 상원 인준을 받는다면 대법원 판사 9명 전원이 하버드와 예일 등 아이비 리그 출신이 된다. 1960년부터 50년 동안 28명의 대법원 판사들 중 18명(64%)이 아이비 리그 법대들을 다녔다. 그중 하버드 출신이 11명, 그리고 예일 출신이 6명이니까 어느 비평객이 비꼰 것처럼 현재의 대법원은 하버드, 예일 법대의 법률 평론집(law review)의 편집인들의 동창회나 비슷하다. 소위 우수한 일류 법대생들 가운데서도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학생시절에 법률 평론집의 저자들이나 편집자들로 경험을 쌓게 되고 대법원 판사들의 법률 보좌관들로 2, 3년 경험을 축적한 다음에 출세의 가도를 달리게 된다. 예를 들면 오바마도 하버드 law review의 회장 경험이 있다.
케간을 포함하면 역대 대법원 판사가 도합 112명인데 그중 약 반수는 아이비리그, 그리고 반수는 비 아이비리그 출신인 바 1960년 이후에는 위에 지적한 것처럼 아이비리그의 편중이 더 현저해지다가 아예 아이비리그 일색으로 바뀔 찰라에 있다. 그런데 미국의 법과대학 수가 200개인데 대법원 판사들이 두 손으로 셀 수 있는 아이비리그, 그 중에서도 두 군데서만 배출된다면 최고의 지성과 자격을 갖추어 되는 대법원 판사의 위치라고는 하지만 지나친 엘리트 편향이라는 비난에 머리가 끄덕여진다. 더구나 케간이 인준되면 세 명의 여자 판사들 모두가 뉴욕시 출신이라는 지역의 편향도 지적된다. 부시가 2005년 임명했던 백악관 고문 변호사 해리엣 마이어스가 아이비리그가 아니라 텍사스주의 남부 감리교대학 법대 출신이었기 때문에 자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도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있었다고 평가받는 대법원 판사들 중에서 아이비리그 출신이 아닌 사람들이 있다는 점에서도 아이비리그 편중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흑백 통합과 민권 신장에 있어서 엄청난 족적을 남긴 얼 와렌 대법원장은 버클리 법대 출신이다. 헌법 개정 제1조의 언론 자유를 절대적이라고 보았던 휴고 블랙은 앨라배마 법대 출신이었다. 연방대법원의 헌법 해석권을 확립했으며 4대 대법원장으로 34년 동안 재임했던 존 마샬은 윌리엄 앤 메리가 정식 법대가 아니었던 시절 어느 교수 밑에서 법률 공부를 했던 사람이다. 존 폴 스티븐스도 노스웨스턴 출신이며 존 로버츠 현 대법원장 전임자였던 윌리엄 렌퀴스트와 최초의 여성 판사였던 샌드라 데이 오코너는 스탠포드 동창이다. 아이비리그 말고도 200개 중 50, 아니 100 정도의 순위에 드는 법과대학 출신이라도 케간과 견줄만한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케간이 50으로 미혼이니까 레즈비안(여성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 모양이다. 백악관이나 그의 지지자들 측에서는 사실 무근이라고 반박한다. 예를 들면 그의 동창이자 뉴욕 주지사를 하다가 고급 창녀들과의 불륜 행각으로 사직했던 엘리옷 스피처는 자기는 케간과 데이트한 적이 없지만 자기 친구들 중에는 그렇게 한 사람이 있다고 옹호하고 나왔지만 그것이 도움이 될지는 두고 볼일이다.
휴고 블랙과 함께 리버럴한 판사로 유명했던 윌리엄 O. 더글러스는 네 번이나 이혼하고 다섯 번째 부인으로 한창 연하의 변호사와 결혼해서 화제에 오른 적이 있었던 데서도 볼수 있는 것처럼 판사들의 사생활은 별 문제가 안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만약 케간이 동성애자임에도 불구하고 인준에 별 탈이 없다면 동성애가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도 범죄로 규정되어 처벌되곤 했던 역사를 두고 볼 때 세상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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