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가 뿔났다” - 제각기 이슈 다른 지역선거들이었지만 18일 프라이머리 결과에서 몇 개주를 관통하며 확실하게 드러난 공통 기류다.
성난 표심이 펜실베니아에서, 켄터키에서, 그리고 아칸소에서 백전노장 현역의원을 탈락시키며, 과격한 아웃사이더를 깜짝 스타로 부상시키며, 기성정계에 대한 반감을 가차 없는 응징으로 표출했다. 워싱턴 굴욕의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 예선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결과는 의회경력 30년 알렌 스펙터의 낙마였다.
펜실베니아의 최장수 연방 상원의원 스펙터가 6선위한 민주당 후보 경선에 나섰다 패한 것이다. 중도파 공화당 생활을 접고 민주당으로 옮겨오며 “재선을 위해 당적을 바꾼다”고 당당히 공언할 만큼 자신만만했던 게 불과 1년 전이었다. 30년 공화당 의원을 민주당 유권자들이 하루아침에 ‘우리의 대변자’로 끌어안기 힘들었던 것이 패배 요인 중 하나이긴 하다. 그러나 오바마와 주지사 등 민주당 지도부의 공개적 지지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사실 승리한 조 세스택도 워싱턴의 아웃사이더는 아니다. 현직 연방 하원의원이다. 해군제독 출신의 리버럴 민주당인 그는 해군장관 등 고위직 등용을 제의하며 출마포기를 종용한 백악관의 압력을 단호히 물리쳤다. 초반 여론조사에서 스펙터에게 압도적 차이로 뒤지는 무명후보로 출발했지만 반 현역 정서가 확산되면서 풀뿌리 민심을 파고 들 수 있었다. 지지도가 역전을 이룰 무렵 내보낸 TV광고는 판세를 결정지은 폭탄이었다. 공화당 의원 스펙터가 지난 유세에서 부시 전 대통령과 희희낙락하는 모습이 ‘재선위해 당 바꿨다’는 호언과 함께 방영되며 자극적 멘트가 뒤따랐다 : “그는 일자리 하나를 건졌습니다. 당신의 것이 아닌 그 자신의 일자리를”
오바마와 지도부의 도움 없이 민주당 리버럴의 열정을 기반으로 이긴 그는 승리 스피치에서 역설했다. “기성정계 워싱턴에 대한 주민들의 승리입니다”
이번 예선에서 가장 의미있는 결과는 펜실베니아 제12지구 연방하원의원 선거였다.
당 경선이 아닌 지난 2월 타계한 존 머사 민주당 의원의 후임을 뽑는 특별선거다. 공화당이 잔뜩 벼르고 있는 11월 하원주도권 탈환 여부를 가늠하는 시험대였다. 그런데 표밭에 확산된 오바마와 민주당에 대한 반감에도 불구 민주당 후보 마크 크리츠가 승리했다.
금년이 예측처럼 그리 나쁘진 않을 것이란 안도의 눈빛이 민주당에서 교차되지만 속사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크리츠의 승리비결은 민주당 주류와 거리두기였다. 대통령과 하원의장, 지도부 누구의 지원유세도 사절했고 오바마의 헬스케어개혁안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며 일자리 창출 등 민심에 다가가는 지역 공약을 앞세웠다. 로컬이슈에 집중하며 워싱턴과 거리두기는 앞으로 보수지역에서 민주후보 승리전략의 교과서가 될 것이다.
이번 예선에서 가장 흥미로운 결과는 티 파티 후보 랜드 폴의 압승이다.
현직이 출마 안하는 켄터키 주 연방상원 공화당 경선이었다. 공화당 지도부가 적극 밀었던 ‘합리적’ 후보가 참패하고 ‘과격한’ 정치초년생이 극우보수 풀뿌리 운동의 전국적 스타로 깜짝 부상한 것이다.
안과의사 폴은 확실한 아웃사이더다. 스스로 ‘티 파티 무브먼트의 산물’임을 자랑스러워한다. 그가 대변하는 티 파티의 메시지는 과격하기 그지없다. 기성 정계에 대한 시각은 반감정도가 아니라 혐오를 넘어선다. 그들의 칼날은 오바마와 민주당을 넘어 공화당 주류까지 겨냥한다. 현 정부체제 자체를 바꾸는 게 그들의 목표다. 어떻게? 교육부, 상무부, 농무부, 연방준비은행 등을 없애고, 적자를 초래하는 각종 보조는 단칼에 잘라내며, 소셜시큐리티 연금 받는 은퇴연령을 70세로 올려 적자를 10년 내에 해소하고, 의원들의 임기를 제한하며, 예산균형위해 헌법을 수정하고… “우린 우리들의 정부를 되찾으러 왔다”고 폴은 승리축하 파티에서 외쳤다.
이런 티 파티와 전통적인 공화당은 공존할 수 있을까. 폴은 본선을 위해 공화당 기성정계와 손잡고 도움을 받을까.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은 티 파티의 파워다. 보수적인 공화당 표밭에서 입증된 티 파티의 영향력은 중도적인 무소속과 보수적 민주당 표밭에서도 강력하게 발휘될 수 있을까. 대답은 11월 본선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금년 들어 치른 몇 개 주의 예선, 그리고 앞으로 남은 주들의 예선을 통해 드러났고, 드러날 것은 “현역은 싫다, 소속 모호한 중도도 싫다”는 유권자들의 요구다. 보다 보수적인 공화의원, 보다 진보적인 민주의원을 원한다. 분노한 민심이 초래한 모순이다. 이 어려운 시대에 해결책 못 내놓는 무능한 워싱턴도 싫고, 일당독주도 안된다면서 초당적으로 일할 수 있는 중도적 후보보다는 양극적 당파대립을 초래할 이념색깔 선명한 후보를 선호한다. 유권자들의 정서를 읽은 정치가들은 살아남기 위해 다투어 극단적 이념을 내세울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렇게 계속되면 앞으로 워싱턴은 물갈이를 하면 할수록 더욱 양극화로 치달을 것이다.
근본적 대책은 경기 호전이다. 살기가 나아지면 분노가 가라앉고 분노가 사라지면 합리적 판단이 설 것이다. 11월 선거까지는 아직 5개월도 더 남았다. 경기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에 희망을 걸어보기로 한다.
박록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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