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사랑한다면 / 날 아직 사랑하고 있다면 / 고향 마을 어귀 떡갈나무 가지에 / 노란 손수건을 달아주오 / 행여 그 리본이 보이지 않는다면 / 난 버스를 타고 그냥 지나쳐 / 우리의 옛사랑을 모두 잊어버릴 거요 / 행여 떡갈나무 가지에 / 노란 리본이 보이지 않는다면….
오랜 감옥생활의 형기를 마치게 된 한 남자가 옛 여자에게 편지를 썼다. 자기를 용서했다면, 아직 사랑하고 있다면 마을 어귀 늙은 떡갈나무에 노란 손수건 한 장을 묶어 놓아 달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출소하게 된 남자는 초조한 마음으로 버스의 맨 앞자리에 앉아 차창 밖을 지켜보며 고향 마을 앞을 지나게 된다.
그리고 온통 노란 꽃을 피운 떡갈나무를 발견한다. 한 장의 손수건만 달아 놓으면 행여 못보고 지나칠까봐 여자는 수백 장의 노란 손수건을 나무에 묶어 놓았던 것이다. 감동적인 두 사람의 이야기는 영화가 되었고 또 오래도록 불리워지는 <늙은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오>라는 팝송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영국의 유명한 시인 바이런은 다리를 저는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같은 동네에 사는 마리라는 처녀를 사랑했지만 그의 사랑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들의 애틋한 사랑을 안타까워하고 있던 어머니에게 날아드는 마리의 결혼소식, 어머니는 손수건을 준비하여 아들의 얼굴에 내밀며 그 소식을 전했다.
사랑하는 아들이 치러 내야 하는 이별예식 앞에 어머니가 준비할 수 있는 건 작은 손수건 한 장이 전부였다. 첫사랑을 잃어버린 아들의 슬픔보다 손수건 한 장을 들고 서있는 어머니의 마음이 더 안타깝게 전해지는 대목이다. 바이런은 그 손수건에 눈물을 남기지 않았다. 그의 눈물은 찬란한 슬픔의 시어들이 되어 지금까지 그의 작품들 속에서 빛나고 있다.
날이 새면 온통 새로운 것들의 이름으로 채워져 가고 있는 세상에서 잊혀져가고 사라져가는 것들의 목록이 늘어가고 있다. 오늘 문득 그 사라져가는 것들의 이름 중에서 손수건 한 장이 떠오른 것은 푸르른 오월이 되면 생각나는 내 가슴 속 손수건 한 장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단발머리 중학생 시절에 나는 어머니께 손수건 한 장을 선물했던 적이 있다. 학교에서 만든 종이카네이션을 가방 속에 넣고 돌아오던 그날, 나는 시내 잡화점에서 잔꽃 무늬가 사방으로 울타리를 치고 있는 분홍 손수건을 한 장 샀다. 어머니날인 다음날 아침, 꽃도 선물도 받아보신 적이 드문 어머니는 딸이 불쑥 내민 선물 앞에 겸연쩍어 하시는 기색이셨다. 그리고 물 묻은 손을 치맛자락에 문지르시며 손수건을 펴보시고는 딱 한마디 하셨다. “너두 나처럼 잔꽃을 좋아하는구나. 나두 잔꽃이 좋더라” 그것은 고맙구나, 맘에 꼭 드는구나, 의 어머니식 표현이었다.
어머니는 종이로 만든 그 가짜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하루 종일 부엌에서 텃밭으로, 텃밭에서 수돗간으로, 다시 빨랫줄로, 장독대로, 종종걸음을 치셨다. 어머니의 앞섶에서 거꾸로 매달려 있기도 하던 그 꽃은 밤이 되면서 안방 달력 위 대못 위로 옮겨졌다.
봄의 고궁을 배경으로 우아한 한복을 입고 서있던 배우는 문희였던가, 남정임이였던가, 달력 속의 여배우가 철쭉꽃 대신 부채를 바꿔 드는 여름이 와도 종이카네이션은 여전히 대못 위에 걸려 있었다. 시간마다 뎅뎅거리는 괘종시계 밑에서 파리똥을 꽃잎에 묻힌 채, 흰눈에 발목이 빠지는 겨울이 와도 어머니가 걸어 놓은 종이카네이션은 시들 줄을 몰랐다.
손수건을 선물했었다는 기억마저 까마득히 있고 있었던 어느 해던가, 어머니가 계시지 않던 날, 인감도장을 찾아 학교로 가져오라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인감도장을 찾기 위해 장농을 열고 이 서랍 저 서랍을 뒤지던 중 가장 밑에 있는 서랍의 옷품 사이에서 도장을 찾았다. 그리고 거기 같이 들어 있는 어머니의 소중한 재산목록을 훔쳐보게 되었다. 노란 순금반지 하나와 적금통장 하나, 청포도 부로우치, 그리고 그 분홍색 손수건이 풀기를 그대로 간직한 채 거기 함께 간직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재산목록, 그 조촐했던 어머니의 물건들이 있던 자리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물건들을 생각하면 나의 왼쪽 가슴에 뭉근한 통증이 느껴지기도 한다.
내게도 몇 가지 재산목록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머니처럼 소소한 물건들이다. 그중에는 아직 뜯어보지 않은 봉투도 하나 있다. 아이가 첫 아르바이트로 번 돈이라며 베게 위에 놓아두었던 하얀 봉투 하나, 나도 그 옛날 어머니를 흉내 내어 그 봉투를 어머니가 재산목록을 두시던 바로 그 자리쯤에 숨겨 두었다. 그 청포도 부로우치처럼, 그 잔꽃 무늬 손수건처럼 차마 아까워서 그냥 간직하고 싶은 마음, 그것이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처음 학교에 가던 날, 왼쪽 가슴에 달고 사용하기 시작했던 손수건, 손수건의 역할은 콧물을 닦아주는 것만이 아니었다. 눈물을 닦아주는 것만이 아니었다. 손수건은 살면서 맞닥뜨려야 하는 절박한 외로움과 운신할 수 없는 절망의 외딴 길목에서도 기꺼이 따라나서며, 손을 잡고 동행을 해준 따뜻한 친구였다.
어설프게 만난 풋사랑 앞에서 손수건만 애매하게 만지작거렸던 기억, 세숫비누에 거품을 내어 손수건을 빨고 푸르던 하늘을 향해 널던 기억, 꾸득하게 말린 손수건에 다림질을 하면서 맡아지던 비누향기, 지금 그 사람의 얼굴이나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도 저물던 나무벤치에 그 사람이 깔아주었던 손수건의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손수건으로 정서를 표현하고 마음을 전하던 아름다운 시절의 이야기이다.
이제 사람들은 손수건을 쓰지 않는다. 오늘도 우리가 무심코 당기고, 뽑아 쓰는 티슈들을 만들기 위해서 어딘가에선 가는 오월의 숲이 베어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아무렇게나 툭툭 뽑아 쓰고 또 휙, 던져버리는 그것들은 숲의 눈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숲에 가득하던 새의 발자국 대신에 탄소 발자국이라는 신종어가 등극되고도 다시 몇 해가 흘렀다.
다시 손수건을 꺼내 보는 건 어떨까. 첫사랑의 기억처럼, 분 냄새 나던 어머니의 기억처럼, 하얀 운동장에 줄을 서던 유년의 왼쪽 가슴, 그 설레이던 기억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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