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주지사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멕 휘트먼(53)이 지난달 베벌리힐스에서 모금파티를 갖고 있을 때 행사장 밖에서는 또 한명 멕 휘트먼의 여왕 대관식이 열렸다. 붉은 벨벳 왕관을 쓰고 롤스로이스에서 내린 ‘멕 여왕님’은 모노폴리 게임의 가짜 지폐를 뿌리며 “헬스케어는 귀족에게, 교육은 선택된 소수에게, 교도소는 만민에게“를 선언했다. 엄청난 부를 과시하며 사상 초유의 ‘돈 선거’를 치르고 있는 휘트먼 캠페인을 공격하는 간호사노조의 항의 시위였다.
지난해 2월 출마선언 이후 휘트먼이 쏟아 부은 선거자금은 이미 5,900만 달러로 주지사 선거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대부분이 자기 돈이다. 이 같은 돈 잔치가 민주정부를 이끌어 갈 공직자 선출에 바람직한 일인지에 대한 논란을 접어둔다면, 일단 효과는 대단했다.
15개월전 여론조사에선 “휘트먼? 잘 모른다”가 51%에 달했는데 지금 대다수 캘리포니아 유권자에게 TV와 라디오에서 매일 보고 듣는 ‘주지사 후보 멕 휘트먼’은 낯설지 않다. 공화당 지명전의 라이벌 스티브 포이즈너를 지지율 40% 포인트 이상으로 압도했고 민주당의 사실상 단일후보인 제리 브라운도 따라 잡았다. 내내 뒤졌었는데 한두달 전부터 역전, 44% 대 41%로 리드하고 있다. 5,900만 달러의 힘이다.
‘아메리카 주식회사’란 유행어가 나올 만큼 돈 많은 최고경영자(CEO) 출신의 정계진출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시선은 반반이다. 연방에서 시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부가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으니 탁월한 경영능력에 기대를 걸지만, 정부와 기업은 다르니 정치경험 부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탁월한 경영능력이라면 휘트먼만한 보증수표도 드물 것이다. 그가 10년간 이끌어온 인터넷경매회사 이베이(eBay)에 언제나 따라다니는 한마디는 ‘경이적 성장’이다. 처음 CEO로 취임했을 때 종업원 30명, 연매출 400만달러 규모에 불과했던 이베이는 그의 진두지휘 10년만에 종업원 1만5,000명 연매출 85억 달러로 급성장했고 주가도 1,000%이상 뛰어 올랐다.
뉴욕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휘트먼은 사업가인 아버지에게서 비즈니스를 배웠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머니에게서 강인한 생활력을 익혔다. 의사가 되려고 물리학 전공으로 프린스턴 대학에 들어갔다가 여름방학 중 잡지광고 판매 아르바이트를 해본후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꿨고 하버드에서 MBA를 받았다. 그리고 프록터&갬블, 베인&컴퍼니, 디즈니, FTD, 하스브로 등 상당수의 대기업을 거치며 아집을 다스릴 줄 아는 유연한 경영철학을 터득했다.
2008년 이베이를 떠날 때까지 해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명단에 올랐던 그에겐 온갖 찬사가 쏟아졌다. 5피트11인치 큰 키에 패션과는 거리가 먼 털털한 차림으로 늘 친근한 미소를 띤 그는 직원들과 한 공간에서 일하고 그들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면서 ‘마미 CEO’라는 따뜻한 이미지의 독특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이베이의 창업자는 “강한 결단력을 가졌지만 남을 지배하려는 성향이 없는 경영자”라고 평가했고 미디어들도 “다스리지 않는 경영자, 보스처럼 군림하지 않아도 임직원들이 존경하며 따르는 리더”라고 다투어 칭찬을 아까지 않았다.
당시 1만여명 이베이 직원들을 사로잡았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수백만 유권자들에게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가에 정치가 휘트먼의 성패가 달렸다.
기성 정치인들에게 분노하면서 아웃사이더의 신선함에 매력을 느끼는, 금년 미 전국 선거판의 가장 뚜렷한 추세는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풍부한 자금과 스타파워의 효력은 아직 장담하기에 이르다. 캘리포니아는 과거 백만장자 후보들에게 별로 친절하지 않았다. 대부분 낙선했다. 게다가 약속은 화려했으나 실적은 초라한 ‘돈 많은 스타 주지사’ 아놀드 슈워제네거에 대한 실망이 현재진행형이다.
같은 공화당인 슈워제네거에 대한 비판은 삼가면서도 거리두기는 분명히 하는 휘트먼은 대표 공약으로 딱 3가지만을 강조한다. 일자리 창출, 정부지출 삭감, 공립교육 개선이다. 많은 것을 허황되게 늘어놓기보다 “몇 가지를 시작해 반드시 끝내겠다”고 당면과제 집중완성 능력으로 이름났던 CEO 휘트먼은 말한다.
재정적으로는 보수, 사회이슈에선 중도로 알려진 휘트먼의 공약 중 논란의 대상은 지출 삭감부분이다. 특히 공무원 4만명 감원과 웰페어 수혜자격 심사강화인데 이것은 그의 ‘사면 반대’ 이민정책과 함께 앞으로 한인사회도 이해관계를 자세히 분석해보아야 할 부분이다.
정계입문 전까진 선거와 담 쌓고 지낸 저조한 투표 기록, 골드만삭스 부정거래 스캔들 연루 의혹 등 한 두 가지 암초에 부딪치긴 했지만 휘트먼의 캠페인은 대체로 순항 중이다. 맹공격을 퍼붓는 포이즈너의 분투 열정이 읽혀지긴 하지만 공화당 지명전은 이제 한달밖에 안 남았다. 다음 주엔 부재자 투표용지가 발송된다. 중량급 돌발변수가 없는 한 휘트먼의 승리는 확실해진 것이다.
새 주지사를 뽑게 될 금년 11월, 우리에겐 두 가지 컬러풀한 선택이 주어질 것이다. 보고 또 보아 온 72세 역전 노장 ‘제리 브라운 리사이클링’? 억만장자 정치초년생 ‘멕 여왕님’? 선택의 확신이 생길 때까지 알아야할 사항이 한두개가 아니다.
박록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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