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의 타이들 베이슨 호수가의 벚꽃이 비록 만개는 했었지만 올해는 그 고운 연분홍 자색(自色) 제대로 한번 못 내고는 스러져 버리고 말았단다. 원산지가 제주산 왕벚꽃나무라고 목소리 죽여 외쳐대던 어느 힘없는 한 한인학자의 변(辯)에 그래도 조금은 부끄러워서 그랬나 보다.
일본 상사주재원들이 많이 사는 락빌에서 작은 스시바를 운영하는 혼다(本田)씨는 아사다 마오(淺田眞央)가 밴쿠버에서 김연아에게 패하는 바람에 금년 벚꽃축제의 ‘여왕’으로 등극을 못했고 그 바람에 이땅에서 실추된 ‘일본’을 위해 ‘마오’붐을 기대했던 많은 일인들이 또 한번 패배의 쓴잔을 마셨기 때문에 벚꽃마저 그 빛깔을 잃었다고 몹시 허탈해 했었다.
요즘 한국은 신록의 설악, 오대산 등정을 끝낸 도심의 등산객들이 서둘러 동해안 포구에 들러 평생 먹어보기 힘든 살아있는 갈치회를 즐겨먹고 온단다. 예년 겨울 이상 수온 덕분에 뜻밖에 복요리를 즐겨먹었던 추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동해안에서 사라진 명태를 대신해 등장한 제주해역에서 잡히던 갈치가 그저 신비스럽기만 하단다.
가쓰오(Bonito)를 첫 생선으로 시작한 일본에서는 지금쯤 단단히 벼르고 있는 생선이 있다. 이름 하여 ‘도끼시라즈’란 애칭의 흰연어(White Salmon) 바로 이놈인데, 보통의 연어들이 가을이 돼야 비로소 강을 따라 올라오는데 시도 때도 모르고(時不知-도끼사라즈)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희귀한 이 연어는 고르게 퍼진 지방의 고소한 맛과 부드러우면서도 탄력 있는 살 때문에 이철 최고의 별미 어종으로 취급될 때다. 더군다나 이 연어 머리의 얼음처럼 투명한 연골로 만든 빙두나마쓰(식초무침)는 이 계절 푸릇한 산채류와 더불어 최고의 전채요리가 아닌가!
한편 도쿄의 스끼지(築地)수산시장 한 곁에 자리한 미니 대장간에서는 밥짓기 3년(사리기레산넨)을 끝내고 비로소 스시바로 진출한 스시 초년병들이 평생을 같이할 칼을 주문하면서 칼등에 제 이름자를 새겨 넣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늙은 대장장이가 잘 벼리어 놓고도 맘에 들지 않아 벼린이의 이름도 새겨놓지 않은 야나기바(버드나무 잎파리를 닮은 긴 횟칼)일지라도 처음으로 가져보는 제 칼을 향해 고생스러웠던 지난날의 기억을 묻으며 대장장이의 칼에 혼을 담지 않으면 결코 훌륭한 쉐프가 될 수 없다는 애절한 충고를 귀 담아 듣고 있을 것이다.
일본 지바현(干葉縣)에 가면 포정총이란 칼의 탑이 있다. 칼을 쓰는 사내들이 평생 자신의 마음을 담았던 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운 칼무덤인 것이다. 또한 상상 속의 요리의 신을 모신 사당도 있고 사이다마현(琦玉縣) 역사 깊은 소림사 경내엔 스시를 쥐는 나한(羅漢)상이 있다. 어쩌면 이런 상징물들은 칼 한자루에 생명을 걸고 평생을 장인 정신으로 살고자하는 스시맨에게 커다란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하는 모성애 같은 힘이 될 테고 마음속 고향 같은 존재일 것이다.
요즘 근처 한인 스시바를 가면 거의 다가 엷은 비닐장갑을 끼고 생선을 자르고 초밥을 움켜쥔다. 핏기 없는 창백한 석고상을 닮은 하얀 손, 그러면서 미끄덩거리는 손으로 스시를 빚다보면 스시맨의 칼끝이고 손끝이고 다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장갑낀 손으로는 생선의 살아있는 각 하나 세우기 힘들고, 몇 번이고 주물러대야 겨우 틀이 잡히는 스시는 이미 그 신선도를 잃었고 이를 바라보는 스시의 격을 아는 손님은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바를 떠나버린다. 반드시 장갑을 끼어야만 되는 위생국 규정 때문이다.
헌데 일본인 경영 큰 일식집 스시바에 가면 맨손으로 밥을 쥐고 생선을 자른다. 이 또한 위생국 규정에 따른 것이다. 예년 봄, 연방 식품의약청은 누구든지 음식을 조리할 때는 반드시 비닐장갑을 끼도록 했는데 스시바만은 또 예외 규정을 두었던 것이다.
스시는 우직스러운 사나이의 빠르고 예리한 칼솜씨와 투박스런 손끝에서 수백 년 간 그 맛이 변치 않고 살아 내려오는 천연의 음식임을 잊지 않도록 하자.
스시는 생선 본연의 색상이 화려한 것이지 너무 퓨전이 강조된 스시는 스시 본연의 맛과는 무관한 가공의 아름다움뿐인 것이다. 우리 스시바도 스시문화가 갖고 있는 당당한 권리와 배경을 힘껏 살려 생선이 살아 숨쉬는 멋진 스시바를 만들자.
이규억 / 알렉산드리아,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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