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의 첫 아들이 난지 9개월이 좀 넘었는데 귀엽기 짝이 없다. 사람을 알아보고 방긋방긋 웃는 모습하며 도리도리라고 하면 머리를 흔들거나 짝짝꿍하면 손뼉을 치는 시늉을 하는 등 재롱을 떠는 데는 우리가 즐거워 어쩔 줄 모르게 될 정도이다. 세포 하나로 시작되는 태내의 생명이 수십억 개의 세포로 나뉘면서 분화되어 어떤 세포들은 두뇌가 되고 어떤 세포들은 신체의 각 기관으로 발전되는 것은 기적중의 기적이다.
신생아의 성장 과정도 경이롭다. 애기들은 두뇌의 급속도 발전으로 두 살 전후에는 주변 사물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고 아빠 엄마 등의 간단한 단어를 말하기 시작하여 얼마 지나면 지상 생물들 중 유일하게 언어를 습득하는 기적을 보인다.
각 세포 안에 있는 DNA에는 아기가 자라 어른으로서의 신체적 특성 -키 크기, 머리 색깔, 눈 생김 등-을 정하는 수십 억 가지 정보가 들어있다니까 수퍼 컴퓨터가 아무리 많아도 흉내낼 수 없는 창조주의 신비이다.
DNA 같은 과학적인 개념을 알 길이 없었던 다윗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3000여 년 전에 기록한 시편의 내용은 구구절절 우리를 감동시킨다.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하신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되었나이다(시편 139-13-16).”
아이의 생명은 정말로 고귀하고 값진 하나님의 선물이다. 아이를 잘 길러서 좋은 사람이 되도록 돕는 것은 그 같은 귀중한 선물을 받은 부모의 책임이다. 아이에 대한 교육, 특히 도덕적인 영적인 훈육이 부모의 책임이라는 점이 신명기 6:6,7에 이렇게 강조되어 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즉 부모들은 아이들을 먹여 살리는 일에 대해 하나님의 계명과 원칙을 가르쳐 올바른 사람들이 되도록 도와줄 의무 아래 있는 것이다.
최근 워싱턴 DC 서남지구에서 일어난 끔찍한 살인사건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서 거의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는 하지만 특히 미국의 10대들에 의한 범죄 만연의 비극이 결국은 부모의 부재(不在) 때문이라는 결론을 되새기게 되었다. 3월말 자동차로 지나가면서 길에 서있던 사람들에게 반자동 소총을 난사하여 네 명을 죽이고 여러 명에게 중상을 입힌 범인들 중에는 14세 소년이 차량운전자였다고 경찰이 발표하였다가 목요일에는 그가 범행과 관계가 없다는 정정 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그 소년은 아홉 살 때부터 여러가지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해서 몇 차례 법정에 섰다가 DC 아동갱생 서비스국에 맡겨진 아이란다. 따라서 심각한 범죄를 저질러도 아이들을 교도한다는 선의에서 출발한 제도 때문에 그런 아이들이 법원이나 소년 감옥이 아니라 아동 복지 관리들의 감독 아래 있다는 것이 그와 같은 불량 아동들의 변화가 아니라 범죄의 답습내지는 흉폭화에 기여한다는 사실이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콜버트 킹이라는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의 지적대로 아이들이 아이들을 출산한다는 사실이다. 18세 미만은 이미 옛이야기이고 심지어 상당수의 13, 14세의 중학생들이 아이들을 낳는다는 사실은 아버지 없는 애기들을 양산시키고 있다. 엄마 자체가 철딱서니 없는 주제에 애기들을 잘 돌본다는 것을 기대할 수조차 없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도울 수 있으면 불행 중 다행이려니와 대부분의 경우 아이들은 커가면서 길거리의 유혹과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기 때문에 10대 미혼모 현상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남자 아이들은 손쉽게 돈이 벌리는 마약 소매나 심부름에 가담하는 게 예사가 되어버렸다. 부모의 꾸준한 관심 아래서도 아이 기르기가 쉽지 않은 세상에 10대 미혼모 아래서 자라자는 아이들의 장래가 암울한 것은 당연하다.
워싱턴 서남지구에서 자동차로 불과 15분 거리에 살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이 가난 극복의 방책으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아이를 수태시키는 남자의 아버지로서의 책임 수행의 당위성을 아울러 지적하는 것은 그런 연유이다.
아이들은 결혼의 테두리 안에서 태어나야 하며 아빠 엄마 두 사람의 사랑과 훈육 가운데서 자라야 한다는 하나님의 섭리를 무시해온 사회가 거두는 과실은 참으로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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