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안에서의 석유시추(offshore oil drill)가 표밭의 쟁점으로 부각한 것은 2008년이었다. 갤런당 4달러로 폭등한 개솔린 가격에 전국의 민심이 뜨겁게 분노했던 그해 여름, 국내 석유생산의 상징인 연안 시추는 대선 캠페인과 맞물려 핫 이슈로 떠올랐다. 공화당 전당대회장은 “드릴, 베이비, 드릴!”을 외치는 함성으로 가득 찼고 ‘환경보호’를 우선해온 민주당도 무조건 반대하기는 어려운 분위기였다.
공화당의 에너지 핵심정책인 연안시추에 강력 반대를 표했던 대선 후보 오바마도 유권자들의 분노지수가 수직상승하자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섰다. “미국인의 석유중독을 악화시키고 대체에너지 투자를 지연시키는 그릇된 정책”이라는 비판에서 “신중하고 책임있게, 초당적으로 추진된다면” 지지할 수도…라며 반대의 톤을 낮추었다.
이랬던 오바마가 지난 주 연안시추 확대 허용을 공식 발표했다. 물론 전면적인 연안 개방은 아니다. 버지니아와 플로리다 동부연안과 걸프만 동부 및 알래스카 북극해 쪽 등 일부 지역이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서부연안과 알래스카의 브리스톨 만 등 환경단체가 애지중지 하는 곳들은 제외되었다. 그래도 2년 전의 ‘마지못한 지지’와 비교한다면 상당히 극적인 입장선회다.
연안시추 찬반은 미국의 해묵은 논쟁 중 하나다. 석유의 국내증산을 요구하는 보수진영과 환경보호를 앞세우는 진보진영이 한 치의 양보 없이 팽팽히 맞서왔다. 한쪽에선 ‘에너지 자립’의 만병통치약인 듯 신봉하고, 한쪽에선 환경보호의 주적인 듯 범죄시하는 ‘시추’는 사실 지난 수십년 개발 금지법에 의해 단단히 묶여왔다.
미 국민의 1년 석유소비량은 70억 배럴이다. 잘 알려진 대로 그중 60%를 수입한다. 미국도 사우디와 러시아에 이어 3대 산유국으로 꼽히지만 ‘전 국민의 오일중독’으로 진단받을 만큼 소비가 엄청나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강조하는 ‘에너지 자립’도 말 뿐이다. 절약도 안하고, 증산도 안하고, 대체에너지 개발도 지지부진…그래서 아직 중동의 볼모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드릴, 베이비, 드릴”은 ‘남의 석유에 목매지 말고 우리 석유 꺼내 쓰자’는 단순한 논리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안 퍼내 묻혀있는 ‘우리 석유’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확인된 세계의 석유매장량은 1조340억 배럴, 미국은 271억 배럴로 세계 10위로 꼽힌다. 그런데 이번 시추 허용 연안의 매장량은 내무부 추산에 의하면 390억~620억 배럴, 미국 소비량 5~9년분과 맞먹는다. 그러나 한 방울도 안 나올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순 없다. 어쨌든 시추금지연안 전체의 잠재적 매장량은 1천억 배럴에 달하며 록키산맥 일대 암석 석유인 오일 셰일까지 적극 개발한다면 1조 배럴이 훨씬 넘게 생산할 수도 있다는 것이 보수진영의 주장이다.
“환경단체들의 히스테리칼한 반대로 시도조차 못한다”는 불평에, “막대한 자금과 시간이 필요한데 반해 결과를 보장 할 수 없는 환상, 환경파괴 위험만 높다”는 반박, “다른 산유국의 환경파괴는 걱정 안하느냐, 그래도 규제 엄격한 미국내 시추가 낫지”…끝없는 논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오바마의 이번 발표의 배경을 두고도 의견은 분분하다. 후보 때와 달리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의 단안이라는 긍정적 시각도 있지만 정치적 전략이라는 분석이 단연 우세하다. 기후변화법안의 상원통과를 위해 공화당에 내미는 타협의 손짓이라는 뜻이다.
다음 주 부활절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연방의회의 우선과제는 우리가 목 빼고 기다리는 이민개혁안이 아니다. 지난해 하원에선 이미 통과시킨 기후변화법안이다. 핵에너지 개발에 냉담했던 오바마가 지난 2월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원자력발전소 건립대출 보증계획을 발표한 것 역시 공화당 달래기라 할 수 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 온실개스 배출 강력규제를 핵심으로 하는 포괄적 기후변화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다. 연안시추와 핵에너지 지원이 포함되면 공화당의 지지 얻기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오바마 자신의 말처럼 “에너지원 공급과 자연보호, 두가지 필요성 사이의 균형”을 잘 잡아서인지, 시추허용에 대한 반응도 다양하다. 공화당 내에선 “긍정적 첫 걸음”과 “너무 부족한 체면치레”가 엇갈리고 민주당내에선 “피치 못할 양보”란 이해와 “언제부터 오바마가 페일린이 되었느냐”는 분노로 양분되고 있다.
보통사람들에게야 이같은 논쟁은 강 건너 불구경이다. 그러나 논쟁의 결과가 개솔린 가격으로 이어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2001년 배럴당 20달러에 못 미치던 원유가격은 2008년 여름 147달러를 고비로 하락세를 계속하다 이번 주 들어 86달러로 오르며 1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원유가 상승은 경제에 대한 자신감 회복을 반영하면서도 어디까지 오를까,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우려를 낳게 한다.
이번에 허용된 시추는 10년은 지나야 시작될 것이다. 근본적 대책은 대체 에너지 개발이다. “그러려면 포괄적 기후변화법안이 통과되어야 하고, 통과되려면 공화당의 지지가 필요하고 공화당의 지지는 시추 허용이 포함되어야 가능하고…” 타임지의 리드미컬한 보도에 화답하듯 대부분 미국인들도 약간 어색한대로 “드릴, 오바마, 드릴”에 동참할 분위기다.
6일 발표한 갤럽 여론조사에서도 ‘환경피해 감수, 에너지 개발 찬성’이 50%로 ‘환경보호 우선’ 43%를 넘어섰다. 10년전 갤럽이 에너지-환경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2001년엔 환경 우선이 52%로 에너지 개발 36%를 압도했었다.
박 록 /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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