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4월이 코 앞에 다가 선 철 그른 비가 말이다. 차창밖 빗물딲기(Wiper)가 연신 도래질을 하고 있다. 나는 나의 생일날인 4월 5일로 만료(Expire) 되는 운전면허 경신시험을 치루기 위해 DMV(차량국)로 달려 가고 있었다. 그렇찮아도 나 같은 노인층의 경신시험 합격률이 매우 낮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는 이 마당에 부정적(否定的) 의미를 상징하듯 와이퍼의 도래질이 어쩐지 내 마음을 불안케 한다.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차량국 문을 들어 서고 있었다. DMV 대기실! 그 곳은 영락 없는 인종 전시장이다. 또한 그 희미한 촉광(燭光) 탓인지는 몰라도 동굴 속을 해쳐 들어 가는 기분 마져 든다. 그리고는 지정된 28번 창구에 발을 멈추었을때, 나를 맞이한 시험관은 정년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듯 한, 60 고개를 넘어 선 중국인 같기도 하고, 일본 사람 같기도 한 남자 시험관이었다. 그의 지긋한 나이와 피부색깔 탓인지 몰라도 콩탕콩탕 뛰는 내 가슴의 방망이 질이 다소 가라 앉는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나의 안과 주치의가 적어 준 ‘내가 운전하는 데 별 지장이 없을 것으로 안다’ 라는 소견서(所見書)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내가 2002년부터 지금까지 8년 동안 단 한 번의 티켓(Ticket)도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을 힘 주어 강조했다. 그가 컴퓨터 마우스를 눌르는 동안 나는 눈을 감았다. 위기에 처했을 때에 무력한 인간이 절대자(하나님)께 의지 하는 인간의 원초적(原初的)인 본능에서 도와 달라는 기도를 마음 속으로 뇌이고 있었다.
드디어 내가 몇 년을 두고 우려 해 왔던 시력검사(Vision Test)가 시작 되었다. 그리고 몇 달을 두고 나와 마누라가 가정예배 때 마다 빼 놓지 않고 내 시력검사의 순조로운 통과를 빌었던 그 강구(强求)의 현실화를 확인 하는 시간이 닥아 오고 있었다. 그런데 역시나 내 오른 쪽 눈의 시력이 시험관의 마음에 흡족하지 않는 지 고개를 갸웃둥 거리는 것을 본 나는 마음 속으로 하나님의 권능(權能)도 인간의 육체적인 결함(缺陷)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비켜 가는 구나 하는 불신(不信)이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기 시작할 바로 그 순간, 시험관이 비교적 잘 보이는 내 왼 쪽 시력검사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나에게 건넨 말이 ‘왼 쪽 눈의 시력으로 보아서는 운전에 크게 지장이 없을 것 같애서 자기 나름대로는 합격점수를 주지만, 다른 창구에서 다시 한번 테스트를 할는지 모르겠다’는 단서(但書)를 달고는 4번이나 5번 창구로 가서 사진을 찍고, 필기시험(Writlen Test)를 치루라고 하면서 서류를 넘겨 주는 것이었다.
나는 넘겨 받은 서류를 들고, 4번 창구에서 줄 지어 섰다가 사진을 찍었다. 전에는 필기시험과 시력검사에 합격한 다음에야 최종적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이, 뒤 박힌 순서가 나를 또 한번 당황케 했다. 사진을 찍은 뒤, 나는 필기시험지를 받아 들고 어석한 구석자리에 가 앉아, 파리 잡아 먹은 두꺼비 모양으로 시력검사로 지친 눈을 껌벅거리며 답안지를 힘 없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내 가슴 속에 치밀어 오른 생각은 옛날 같으면 고려장(高麗葬)을 당해서도 벌써 10년도 더 전에 당했을 내 나이에 학생들 학년말 시험 치루듯이 시험지를 내려다 보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도 처량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운전대를 놓치고 방구둘막에 쳐 박힘을 당하지 않으려면 이 길 밖에 없다 싶어, 이 악물고 정답란에 가위표를 쳐 내려 갔다. 그리고는 5번 창구로 가서 답안지를 내밀었다. 결과는 한 문제만 틀린 만점이었다. 나는 한 순간 만이라도 안도의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런데 다음 순간, 월남 국적인듯 한 20살을 살짝 넘겨 보인 그 아가씨가 시력검사를 하자는 것이었다. 나의 안도의 숨은 다시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아가씨에게 밀리지 않을 려고 단호한 어조(語調)로 "아까 28번 창구에서 이미 시력검사에 통과했다!" 라고 하자, 서류를 들고 28번 창구 쪽으로 걸어 갔다. 피 말리는 순간이었다! 잠시후 돌아 온 그는, 약간의 미소진 표정과 함께 나에게 임시운전 면허(Interim Drive License)쪽지를 내밀며 싸인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30일 이내에 정식 운전면허증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을 덧붙혀 주었다.
내가 임시운전면허증을 손에 쥔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는 "하나님 감사 합니다!" 라는 말과 함께, 내 눈에서는 눈물이 핑 돌고 있었다. 그 눈물의 의미는 올림픽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승자(勝者)의 감격의 눈물 같은 뜻과 1976년, 이 땅에 이민 와서 이민 초기에 몇 번이나 한국으로 되돌아 갈 생각을 했지만,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 참아 온 인고(忍苦)의 세월을 되돌아 보는 쓰린 눈물의 뜻이 뒤응킨 눈물이 아니었던가 싶다.
앞으로 5년 동안 운전을 계속할 수 있는 운전면허증을 손에 쥔 나는, 들어 올 때의 그 천근 같이 무거웠던 발걸음과는 달리, 새털 같이 가벼운 발길로 DMV 문을 나서고 있었다.
(다음 주로 계속)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