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확고한 의지가 밑바탕 단어와 문장 함께 공부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 할 수 있을까? 영어가 국어인 미국에서 살고 있는 비영어권 이민자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소원일 수 있다.
미국에서 살아온 세월이 길어질수록 영어실력도 그에 비례해서 늘어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체험일 것이다.
영어를 배우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것은 영어가 다른 언어보다 특별히 어려워서라기보다는,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배우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언어활동이란 것은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의 4가지 국면을 골고루 익혀야 그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언어를 가장 힘들이지 않고 효과 있게 배우는 방법은 애기들이 세상에 나와서 모국어를 익히는 과정을 그대로 따라하면 된다.
아기들이 첫 일 년은 오로지 듣기에만 집중을 하고 그다음부터 주위에서 들어왔던 소리를 내보다가, 다음 단계에 들어가서는 단어를 한 개씩 말해 보기 시작하고, 3~4세가 되면서 글자를 알아보고, 글자가 모여 이루어진 단어를 읽을 수 있게 된다. 마지막 단계의 언어활동이 바로 쓰기이며, 단순한 필기가 아닌 의미 있는 문장을 써 내려가는 기술이야 말로 언어활동 중에서 가장 고단계의 활동이다.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두 개의 언어를 동시에 익히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의 경우에 모국어를 익히고 난 다음에 제2 언어인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보통이다. 외국인이 원어민 수준의 언어 구사력을 갖추게 되려면 대략 12세 이전에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따라서 이 나이를 지나서 새로이 외국어를 배우게 되는 청소년이나 성인들은 다분히 인위적인 학습법을 따라서 외국어를 배울 수밖에 없다.
이 나라의 언어인 영어를 빨리 습득하는 것이 모든 비영어권 주민들에게 중요한 당면 문제이겠지만, 어느 누구에게보다 영어 습득이 가장 절실한 과제가 되는 것은 중학교 이후에 미국에 와서 본토인들과 함께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이다. 이곳에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제대로 마치고 대학에 진학하려면 영어 구사력이 본토 학생들의 수준까지 올라가야 학문적으로나, 사회 활동에서 이들과 공평한 기준에서 경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ESL 프로그램 같은 체계적으로 구성된 학습법을 통해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하루 한두 시간 교실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는 원하는 만큼 신속한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교실 바깥에서 원어민과 함께 어울려 듣기와 말하기를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해야 하고, 문법이나 어휘를 공부해서 충분한 독서 실력을 갖추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영어로 글을 쓰는 것을 배워야 한다.
외국어인 영어를 익히는 데에는 단선적인 한 가지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같이 다양한 통로를 통해서 얻은 기술이 합쳐 상승작용을 해서, 영어 습득이라는 복합적인 결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말은 유창하지만 독해는 서투르던지, 독해는 그런대로 잘 할 수 있지만 작문실력은 수준에 못 미친다는 식으로, 어느 한 가지 기술만 개발해서는 영어 습득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이 지면을 통해서 언어의 한 요소인 단어공부의 필요성에 대해서 얘기해 보려고 한다.
우선 단어를 따로 분리해서 공부하는 것이 비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주장은 옳은 주장이다.
단어는 문장을 이루는 구성요소이지만, 문장 속에서 다른 단어와 어울려 사용되었을 때 그 의미와 용법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문장 바깥에서 개별적으로 단어 공부를 하는 것은 영어 구사력을 키우는데 효과적이지 못한 방법이다. 한국어를 상당한 수준으로 구사하는 어느 미국인 교사가 한인 학생들에게 “지금부터 숙제를 ‘모집’하겠습니다.” 라고 말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개별적 단어의 뜻을 알고 있지만, 문장 속에서의 용법을 모른다면, 언어 구사력이 만족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없다. 사전을 들고 다니면서, 또는 단어장을 만들어 공부하는 것보다는 문장을 많이 읽는 데서 단어의 뜻을 저절로 파악하게 되는 것이 효율적인 방법 이라는데 이의를 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얘기한 대로 비교적 뒤늦게 영어를 익혀야 하는 학생들은 문장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단어를 익힌다는 이상적인 언어습득 방법을 따를 시간적 여유가 없다. 이같이 급하다면 급한 상황에서는 비록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도, 단어를 강제로 외우는 재래식 주입법을 동원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가서 공부하는데 꼭 필요한 기본 단어 리스트에서 하루에 한 개 이상 몇 개의 새 단어를 뽑아 뜻을 익히고, 가능하면 예문을 찾아서 용법을 익힌다면, 오래지 않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독해력과 작문력이 가속으로 향상될 것이다.
옛날식으로 단어의 뜻과 예문을 실은 카드를 들고 다니면서 공부할 수도 있고, 그 날 익혀야 할 새 단어를 전자폰 속에 넣어서 틈틈이 공부할 수도 있다.
한 가지 유의할 것은 매일 한 개 이상 새 단어를 익힌다는 언뜻 보기에 쉬워 보이는 계획 안에 함정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매일’ 이라는 부사이다.
어떤 일이든 웬만한 결심이 없으면 매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재미있지도 않은 단어공부를 ‘매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준급의 영어실력을 갖추겠다는 단단한 결심이 없으면, 효과를 볼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김순진 /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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