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의 대량 리콜 사태가 터지기 훨씬 전인 2006년 초다. 갖고 있던 올드카를 처분하고 미국생활 근 20년만에 처음 도요타를 장만했다. 8기통 대형 스포츠유틸리티 차량이다. ‘너도 타고 나도 타는 한인사회 국민차’는 개성이 없어 싫다는 단순한 이유로 도요타를 ‘거부’해왔지만 이전 차량의 잦은 고장으로 워낙 고생한 탓에 ‘품질의 도요타’ 구매 행렬에 가세했다.
하지만 웬걸. 도요타에 대한 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실망으로 바뀌었다. 구입한 지 한 달이 채 못돼 CD플레이어가 됐다 안됐다 하면서 기분을 잡치게 하더니 서너 달 후부터는 차량 뒤쪽에서 종종 귀청을 울릴 정도의 소음이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딜러나 미캐닉에 가져가 테스트를 할라치면 정작 소음은 나지 않아 매번 ‘이상무’라는 말만 들으니 더 답답했다.
“쌈짓돈까지 털어 큰 맘 먹고 장만한 ‘재산목록 1호’인데…” 도요타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변하면서 간혹 내 SUV를 보며 “좋은 차 샀네요. 사고 싶었던 차인데…”라고 부러워해도 “이 차 성능 별로예요. 사지마세요.”라는 혹평만이 튀어 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도요타가 최고라는데 왜 내 차만…, 어지간히 운도 없나봐.”라고 생각하던 중 조금 앞서 도요타 미니밴 시에나를 구입한 친구 일가족이 라스베가스로 여행을 가던 중 프리웨이에서 연료펌프가 터져 곤혹을 치렀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어떤 동료는 “동생이 도요타를 샀는데 얼마나 골치를 썩었는지 몰라요”라며 혀까지 찬다. 이상했다. 도요타라면 품질의 대명사인데….
알고 보니 내가 꼭 운이 나빴던 것도 우연만도 아니었던 것이다. 지난 2004년 미 시장에서 도요타 판매량은 200만대를 돌파하며 승승장구했다. 이때부터 도요타의 명성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만들기 무섭게 팔릴 정도가 되니 비용 절감을 위해 부품 공유를 늘리고 신 모델 출시도 지나치게 서둘렀다. 당연히 리콜은 급증했다. 이 해 리콜된 차량만 100만대 이상, 판매량의 절반을 훌쩍 넘었다.
대량 리콜로 촉발된 도요타 사태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급가속이다. 연방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이후 도요타 차량의 급가속과 관련 52명의 아까운 인명이 희생됐다. 특히 미국에서 지난 30년간 급발진 등으로 사망자가 발생한 윤화 중 거의 절반이 도요타였다니. 최근 급가속 문제로 리콜돼 수리를 마친 차량 중 또 다시 급가속 현상이 발생했다는 신고도 105건에 달해 문제의 심각성은 여전한 것 같다.
현재 도요타가 전세계에서 리콜한 차량은 800만여대. 생명과 직결된 자동차의 리콜은 숫자 이상의 의미가 있다. 리콜 차량의 오너라면 누구든지 위험성을 안고 핸들을 잡는 셈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요즘 새 차 구입을 앞둔 한인들의 고민이 많다. ‘두말 할 나위 없이’ 도요타를 살 계획이었던 한인들이라면 더 그렇다. 물론 리콜 사태 때문에 찜찜해 일부는 다른 브랜드로 마음을 바꾸기도 했다. 지난 24일 블룸버그통신이 전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44%는 내년에 신차를 구입할 경우 도요타를 사지 않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도요타에 변함없는 신뢰와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키플링거’ 매거진 자동차 전문 칼럼니스트 제시카 앤더슨은 “도요타는 오랜 기간 품질을 인정받았으며 지난 10여년간 미 빅3에 비해 소비자 불만이 적었던 브랜드”라며 “지금은 리콜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도요타가 문제를 해결하고 언론의 관심이 잠잠해질 즈음에는 리세일 밸류가 반등하는 등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캘리블루북’ 관계자 말을 인용해 “작금의 도요타 사태는 프로덕트가 아닌 이미지 문제로,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고도 했다. 리콜 사태로 도요타 차량에 대해 ‘추천’ 등급을 잠시 거둬들였던 소비자 정보지 ‘컨수머리포츠’도 문제가 해결되는 데로 다시 복원할 입장을 밝혔다.
최근 도요타의 파격적 인센티브도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 한때 웃돈까지 얹어줘야 했던 인기 하이브리드카 프리어스의 2010년형은 스티커 가격보다 1,000~1,500달러 디스카운트 된 인보이스에 근접한 가격에 살 수 있다고 ‘키플링거’는 전했다. 또 대부분 모델도 60개월 0% 파이낸싱을 제공한다.
도요타를 살 것인가 말 것인가? “겁나서 안 탄다. 도요타 밖에 차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도요타만한 차는 없다. 다른 브랜드도 리콜 많이 했는데…” 선택은 전적으로 소비자들의 몫이다.
이해광 /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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