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헬스케어 개혁법에 서명을 하던 23일 아침, 알링턴 국립묘지 테드 케네디 연방 상원의원의 무덤가는 조용한 축제, 깊은 성찰의 자리였다. 추모객들이 고개 숙이며 어루만지는 묘비 곁엔 막내아들 패트릭 케네디 연방하원의원이 남긴 짤막한 편지가 꽂혀 있었다 : “아버지, 끝내지 못했던 과제가 완성 되었습니다”
사회저변의 약자들에게 보다 살기좋은 세상을 열어주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그의 반세기 의정생활 중 숙원 과제였던 헬스케어 개혁이 길고 험난했던 정치적 여정을 끝내고 마침내 ‘환자 보호와 감당 가능한 의료 법(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이라는 명칭으로 오바마의 표현처럼 ‘이 땅의 법’이 된 것이다.
저세상에서 미소 지었을 케네디와 함께 이세상에서 가장 기뻤던 사람은 오바마였을 것이다. 개혁안이 하원을 통과하던 지난 일요일 밤 자정 넘어 계속된 샴페인파티에서 오바마는 그 어느 때보다 가장 행복해보였다고 대선 캠페인 참모였던 백악관 선임고문 데이빗 액셀로드는 전했다.
이번 개혁안 발효가 소셜시큐리티나 메디케어 입법에 견줄만한 ‘역사적 승리인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리지만 ‘전국민 의료보험 시대’로 들어서는 역사적 첫 걸음인 것만은 확실하다.
2,400페이지에 달하는 새 법안에 어떤 조항이 어떤 식으로 명기되어있는지, 개인에서 의료기관, 보험사까지 누가 어떻게 영향을 받는가는 지금 당장 정확하게, 자세하게 알기 힘들다. 또 개혁성패의 관건이 될 의료비 상승 통제와 적자해소에 대한 조항은 의회예산국의 희망적 분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설득력이 약하다.
그러나 3,200만 무보험자들에게 혜택을 확대하고, 속수무책으로 감수해야 했던 보험사의 횡포를 중단시키며, 의료비 상승의 고삐를 당겨 가겠다는 기본 취지만으로도 이번 입법화는 충분히 ‘역사적’이다. 수천만명 무보험자를 방치하는 것, 암과 파산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더 이상 미국인에겐 옵션사항이 아니다. 뒤늦었지만 의료보험이 직장인의 특권 아닌 전 국민의 ‘기본권’임을 선언한 것이다.
이처럼 뜻 깊은 승리를 하고서도 오바마는 아직 개혁논쟁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후폭풍이 거세다. 이번주 상원의 수정안 표결에서, 14개주의 위헌소송으로 시작될 법정공방으로, 또 앞으로 7개월 전국의 표밭에서 헬스케어 개혁논쟁은 어쩌면 지금까지 보다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다. 공화당 의원들이 법안 철회추진에 돌입한 워싱턴에서만이 아니다. 전국이 민주와 공화, 진보와 보수로 마치 홍해 갈라지듯 완전히 갈려 팽팽히 맞서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도 종잡기 힘들다. 민주당원은 79%가 찬성, 공화당원은 76%가 반대라는 식으로 극과 극을 달린다.
기능장애에 빠진 의료제도를 개선하여 국민의 기본건강을 지켜주기 위한 ‘선의의 법안’이 절반의 미국인에겐 자유와 생계에 대한 위협으로 비쳐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극우파 티파티어들의 폭언과 살해 협박, 욕설과 침 뱉기 등 반대시위가 폭력으로 치닫고 있지만 공화당은 적극 말릴 기세가 아니다. 헬스개혁 쟁점화를 중간선거의 최고전략으로 꽉 붙든 이상 민주당이 자축하고 있는 ‘3월의 승리’를 ‘11월의 참패’로 몰고 가기 위해 전력투구 중이다.
오바마도 오늘 아이오와에서 대국민 설득 집회를 시작으로 여론과의 전쟁에 뛰어든다. 선거판의 이슈논쟁을 좌우하는 것은 합리적 이론이 아니라 감정적 선동이긴 하지만 민주당에 승산이 없는 것만도 아니다. 보험사 횡포 금지와 소기업 업주 세금혜택 등 인기조항이 먼저 시행되면서 직장보험소유자에게도 궁극적으로 ‘마음의 평화’를 보장해주는 개혁에 대한 지지가 꾸준한 상승세를 보일 수도 있고(실제로 어제 발표된 갤럽조사에서 49%대 41%로 지지가 높아졌다), 아직은 오바마와 민주당이 여론조사에서 공화당보다 높은 지지도를 견지하고 있다. 재계의 조용한 개혁지지로 공화당이 난처해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헬스케어 개혁의 정치적 영향력은 아직 가늠하기 힘들다. 금년선거의 주요 이슈는 경제와 실업률일 것이다. 경제가 호전되지 않으면 개혁지지가 높아진다 해도 여당인 민주당은 중간선거에서 승리하기 힘들다. 실업률이 계속 치솟으면 2012년 오바마가 재선에서 낙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헬스케어 개혁은 그 역사적 첫 걸음을 내딛었고 오바마는 개혁실현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지난 며칠 인터넷을 도배한 수많은 의견 중 LA타임스 중국계 독자의 짤막한 소감이 눈길을 끈다. “정치적으로 무소속이며 괜찮은 직장 의료보험을 가진 한 사람으로, 헬스케어 개혁안 통과에 박수를 보낸다. 최선의 법안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이 나라가 비합리적인 위협과 분열을 진정시킬 수 있는 용기와 의지와 지성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이 법안은 나 같은 귀화시민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지난 3년간 18개의 관련 칼럼을 쓰며 개혁안의 부침을 지켜 본 나도 이번 한 주는 역사적 첫걸음을 축하하고 싶다.
박 록 /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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