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에서는 6월 지방 선거를 앞두고 난데없이 무료 도시락 논쟁이 한창이다. 야당인 민주당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에게 무료로 도시락을 주겠다는 공약을 내놨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에서는 처음에는 이를 ‘포퓰리즘’으로 비판하다가 나중에 입장을 바꿔 저소득층에게만 무료급식을 허용하겠다고 나오고 있다.
돈이 없어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학생에게 밥을 주는 일에 반대하기는 어렵다. 한쪽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밥을 주겠다고 하고 한쪽은 모든 학생에게 밥을 주겠다고 하면 어느 쪽에 표가 많이 나올까.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이 있는 한국에서 이는 물어볼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이번 중간 선거에서 민주당이 이긴다면 그 상당 부분은 도시락 덕이 크다고 봐야 한다. 이것 빼고 주목받을 일은 한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그렇다 치고 다음 번 선거는 어떻게 될까. 아마 모든 학생에게 공짜 저녁을 주자고 나올 것이다. 도시락도 싸오지 못하는 학생이 저녁을 제대로 먹을 리 없고 어렸을 때 건강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저녁을 부실하게 먹여서는 안 된다는 데 생각이 미칠 것이다.
조기 교육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태어나서부터 학교에 보낼 때까지 드는 모든 돈은 마땅히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 출산 육아 비용 부담 문제가 해결되면 저출산도 해결된다. 젊은 부부가 아이 낳기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높은 육아비이기 때문이다. 아니 졸업에 그칠 것도 없다. 취직도, 노후도, 의료비도 모두 국가가 떠맡기로 하는 것이 어떨까.
이런 사회 건설을 실제로 시도한 나라가 있다. 1917년 볼셰비키들의 쿠데타로 수립된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이다. 모든 진보적 지식인의 꿈이던 이 나라가 어떻게 끝났는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이런 사회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은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바로 돈이다. 국가는 인간이 생산한 것을 오로지 분배할 수 있을 뿐이며 복지는 축적된 부가 존재할 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표에 정치 생명이 걸린 정치인들에게는 곳간에 양식이 얼마나 남았는지 보다는 양식을 뿌림으로써 얼마만한 표가 돌아올 것이냐가 더 관심사다.
유한한 양식과 무한한 욕망이 충돌할 때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발언권 없는 미래의 유권자들이다.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는 예외 없이 사회 복지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그 예산은 나날이 팽창하며 이에 비례해 국가 부채는 끊임없이 늘고 있다.
한국인들은 미국보다 먼저 국민 보험제를 실시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지만 비현실적으로 낮게 책정된 보혐료로 매년 1조7,000억 원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저출산이 심화될수록 건보 재정은 급속히 악화되고 이는 훗날 고스란히 후대의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연방 하원은 21일 무보험자를 없애기 위한 역사적인 의료개혁안을 통과시켰다. 리버럴이 백악관을 차지하고 연방 상하원을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지금 이 법안이 통과됐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의 집요한 로비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전원과 민주당 의원 34명이 반대를 했다는 것이 놀랍다.
미국은 향후 10년간 매년 1조 달러의 예산 적자가 예상된다. 소셜 시큐리티와 메디케어의 자금 고갈은 수학적으로 확실하다. 거기다 의료비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하나도 해결하지 않은 채 다시 10년 동안 1조 달러가 더 들어갈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지를 묻는 것은 책임 있는 유권자의 의무다.
민주당에서는 이 안이 예산 적자를 오히려 줄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열렬한 이 법안 지지자인 뉴욕타임스조차 이를 믿지 않고 있다. 타임스는 21일 의회 예산국장이었던 더글러스 홀츠 이킨의 글을 통해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메디케어 삭감 등 잔재주를 빼면 이 법안 실시로 5,600억 달러의 추가 재정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모든 정부 프로그램은 아기 코끼리와 같다. 처음에는 작고 귀엽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크고 흉측하게 변한다. 무보험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박수치는 것도 좋지만 과연 이것이 우리 후대들에게 과도한 짐을 지우는 일이 아닐까도 돌아봐야 할 것이다.
민경훈 /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