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츠러들기 만하는 유럽’- 타임지에 나온 스토리다.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다. 정치가 안정돼 있다. 물질적으로 풍요하다. 평화롭다. 다양한 문화를 자랑한다.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모델이 될 만하다.
그 유럽이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북한 등지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면 유럽은 어디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세계의 열강으로서 그 존재감이 없다는 이야기다.
세계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그렇지만 유럽은 변화를 거부한 채 무기력이라는 장막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은 자살을 꾀하고 있다’-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 유럽, 안일에 젖어 있는 유럽과 관련해 나오고 있는 또 다른 진단이다.
엄청난 경제적 번영을 이룩했다. 2차 대전 이후, 그러니까 20세기 후반부 유럽에 대한 총평이다. 시실리의 농부들은 1960년대만 해도 소, 돼지 등 가축과 함께 잠을 자는 생활을 했었다. 공동변소를 사용하는 가정이 하나 둘이 아닌 게 당시의 유럽이었다.
그런 유럽이 전례 없는 풍요를 구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장래에 대한 두려움이 지배하고 있다. 파멸은 어쩔 수없는 운명이라도 되는 양 페시미즘이 유럽을 휩쓸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간 후에 대홍수가 오든 말든.” 사치와 방탕으로 지샌 루이15세의 정부(情婦)가 한 말이라고 했던가. 그런 분위기에 젖어 있는 게 오늘의 유럽이란 지적이다.
“신(神)은 죽었다. 유럽에 관한 한.” 무엇이 유럽을 페시미즘의 바다로 만들고 있나. 그 답의 일부다. 세속화가 유럽의 자살을 부채질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때 열정적인 가톨릭국가였던 아일랜드에서 ‘성직자’는 ‘위선자’의 동의어가 되고 있다. 더 심한 경우 ‘어린이 성추행’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벨기에의 한 오랜 수도원에는 몇 안 되는 80대 수녀들이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이 수녀들마저 사라지면 이 수도원은 결혼을 하지 않은 전문직 무자녀 동거 커플을 위한 고급 아파트로 분양될 계획이다.
이생이 전부다. 그러므로 이생에서의 즐거움을 만끽해야 한다. 이것이 유럽적인 멘탈리티라고 한다. 모든 것을 극도로 추구한다. 소비도, 스포츠도, 엔터테인먼트도, 경험세계도. 때문에 모든 게 극을 달린다. 만족이 없는 것이다.
과거도, 미래도 없다. 오직 지금 이 시간, 현재뿐이다. 그리고 끝없이 즐거움만 추구하는 거다. 어린 자녀는 자연 부담이다. 발리에서의 멋진 휴가가 어린 자녀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그 결과는 극히 낮은 출산율이다.
“신을 믿지 않으면 아무것이나 믿게 된다. G.K. 체스터튼의 말이다. 여기서 나름의 추론을 하면 이런 말이 가능할 것 같다. 신을 두려워하기를 중지하면 아무것이나 두려워하게 된다고.” 종교전문지 ‘퍼스트 싱’의 데이빗 골드먼의 말이다.
왜 유럽은 변화를 두려워하나. 골드먼 역시 세속화를 그 이유로 보았다. 삶은 그 가장 좋은 시기에도 불확실하다. 위험부담이 큰 것이 삶이다. 유럽인들의 인생관으로, 변화는 그러므로 두려운 것이다.
유대-기독교전통에서 볼 때 삶에서의 위험과 고난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삶에 닥쳐온 고난이 때로는 인간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그러나 그 고난의 배후에는 섭리가 있다. 고난 가운데 삶을 마감할지라도 절대자의 구원 계획에는 흔들림이 없다. 그러므로 고난을, 또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련해 그는 한 가지 가설을 제시한다. 같은 산업선진국이지만 종교성여부에 따라 출산율과 자살률이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그 예로 이스라엘과 미국을 들었다.
산업선진국 중에 자살률이 가장 낮다. 그리고 출산율은 가장 높다. 이스라엘이다. 그 다음은 미국으로, 극히 낮은 출산율에, 자살률이 높은 유럽 국가들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무엇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나.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다. 그리고 이생이 전부가 아니라는 일반적 믿음이 그 원인이라는 게 그가 내린 결론이다.
한국의 출산율이 세계 최저기록을 또 깼다. 한국의 출산율은 2008년에 1.19명을 마크, 기록을 세웠었다. 그 수치가 2009년에는 1.15명으로 더 떨어진 것이다.
기록은 이로 그치지 않는다. 낙태부문에서도 단연 1위다. 연간 34만건으로, 한해에 태어나는 신생아 44만 명에 겨우 10만이 모자란다. 거기다가 자살률도 세계 톱 수준이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사회적 부조리. 경제적 어려움, 정부 정책 부재…. 많은 것이 지적된다. 아마도 틀리지 않은 지적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보다 더 근본적인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이는 아무래도 가치관의 문제, 더 나아가 한국 사회가 맞은 심각한 영적 문제로 보여 하는 말이다.
옥세철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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