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미한인산악회 - 티벳-네팔 횡단 등반기 <9>
■ 초모랑마(에베레스트)
참으로 높다랗고 기다란 길을 왔다. 드디어 만년설이 빛나는 티벳의 8.000m급 이상 되는 14개의 고봉 중 에베레스트, 초오유, 시샤팡마 베이스캠프 정찰이 시작된다. 오늘은 시가체에서 쉐가르(뉴 팅그리 4,050m)까지 270km를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한다. 하루 종일 승마를 하는 것같이 차안에서 튀어서인지 피곤하다. 라체 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조금 일찍 숙소에 도착해 쉬기로 했다. 에베레스트 전망대 기념비가 있는 갸초라(5,216m)를 지나 쉐가르에 오니 3시쯤 되었다. 황야의 무법자라도 나올 것 같이 도시가 스산하다. 바람에 흙먼지가 날린다.
해발 5천m 산장에 도착하니 어질어질
티벳말로 ‘대지의 여신’ 그 위용을 실감
해질 무렵땐 시시각각 찬란한 산 빛깔
다음날 조식 후 쉐가르를 출발해 우정공로 남쪽의 롱복사원(5.030m,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원) 진입로로 들어가 1시간 정도 올라가니 팡 라(Pang la 5,120m) 고개에서 ‘초모랑마’를 만났다. 저 멀리 ‘마칼루’(8,463m)와 ‘로체’(8,516m)도 자그맣게 수줍게 서있다. 4번의 티벳 방문과 20번 남짓 히말라야 고산을 등반한 신영철 대원이 오늘부터 빛을 발할 차례이다. 이번 원정대 고산정찰과 모든 일정을 신 대원이 기획해 아주 짜임새 있는 정찰이 되었다. 가이드 텐진이 설명을 한 후 본인은 보조가이드라며 보충설명을 부언한다. 겸손한 경험자의 해박한 설명으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향기를 발한다.
대원들은 오늘 계획한 트레킹에 아침부터 기대에 부풀어 있다. 매주 일요일 산을 오르는 습관이 있어 몸이 조건반사를 한다. 롱복사원에서 초모랑마 베이스캠프(5,200m)까지 12km거리를 걸을 계획을 했다.
히말라야는 티벳와 네팔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에베레스트로 알려진 최고봉의 원래 이름은 ‘초모랑마’다. 히말라야 산맥의 초고봉이자 세계에서 제일 높은 네팔과 티벳 국경에 솟아 있는 높이 8,848m의 봉우리다. 지난 1846년 영국이 인도에서 식민정책을 펴나갈 때 지도를 만드느라 히말라야 봉우리에 대한 측량을 실시했다. 당시 에베레스트 산의 비공식 명칭은 ‘피크 15’ 였다. 영국의 측량국장이었던 앤드류 워는 9년여 간의 측량을 지속한 결과, ‘피크 15’가 지상에서 가장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워는 전임 측량국장이었던 조지 에베레스트(Everest)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마운트 에베레스트’ 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티벳에서는 에베레스트 산을 초모랑마(대지의 여신이란 뜻)로, 네팔에서는 사가르마타(세계 어머니 여신)로 불러 왔으며, 중국에서는 음차해 주무랑마라고 불렀다.
첫 등정은 1953년 5월 29일 에드먼드 힐러리에 의해 인류 역사 사상 최초로 제3의 극점이라 불리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그로부터 에베레스트는 세계 산악인들의 동경의 대상으로 매년 원정대가 끊이질 않았다. 한국은 1977년 9월15일 대한산악연맹원정대(대장 김영도)의 고상돈대원과 펨바노르부 세르파가 남동릉 루트로 등정해 세계 8번째 에베레스트 등정국이 되었다.
재미한인산악회가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에 뜻을 세운 것은 오래 전 이었다. 2001년 히말라야 원정 단일팀이 임자체 등정 및 에베레스트 정찰을 마치고, 그 원정 이후 김명준 대원이 2005년 에베레스트를 올라 기네스북에 등재되는 영광도 있었다. 김명준 대원은 세계 7대 대륙의 최고봉, 남극의 빈슨 매시프, 북극 마라톤을 다 섭렵하고 지금도 끊임없는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에베레스트를 보고 있는 지금도 저 뾰족한 곳에 도달한 김명준 대원의 투지가 잘 믿어지지가 않았다.
수목 한계선인 5,000m 위에 위치한 롱복사원은 건조한 고원의 바람으로 바짝 말라 있다. 비구니 몇 명만이 살고 있다는 말도 들려 왔다. 티벳인들 염원의 불가사의가 나무 한그루 없는 이곳에도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많은 방문자들의 수요에 의해선지 새로 지은 듯한 라지가 번듯하게 있다. 우리는 방을 배정 받고 트레킹 할 준비를 한다. 어질어질 했으나 에베레스트의 위용을 잡힐 듯 벌써 봐 버려 한 시도 지체하지 못하고 더 가까이 달려가고 싶었다.
아뿔싸! 걸어갈 수 없다고 말하는 가이드에 미안한 얼굴을 본다. 베이스캠프까지 여권검사를 다시 한 다음 환경버스로만 이동할 수 있다고 한다. 어마어마하게 소중한 자원인 에베레스트를 보존하는 것이다. 트레킹 폴(지팡이)까지 들고 나온 우리는 낙담을 했다. 버스로 가는 12km의 길옆은 빙하에서 녹은 물이 철철 흐르고 있다. 베이스캠프에는 일본팀과 오스트리아팀 만이 쓸쓸히 정상공격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봄 시즌에는 많이 북적이나 지금은 철이 지난 곳이다.
신영철 대원은 초로랑마의 온몸을 이렇게 샅샅이 본다는 것은 우리 대원들이 공덕을 많이 쌓아서 일거라고 흥분을 섞어 얘기한다. 아! 과연 3대 극지점이 저기던가. 전율이 흘러 어지럼증을 부추겼다. 대박 난 날이다. 심술궂은 구름이 보여줄까 말까 하고 가려 버리는 날이 대부분이라 한다. 그래서 아름다운 구름이라는 말 대신 ‘개스’라고 부르며 대항하는 듯하다. 베이스캠프 찻집에 내려와서는 야크버터 차를 마시며 환희에 찬 고소증을 넉넉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해질 무렵이 되자 시시각각 초모랑마는 얼굴 색을 바꾼다. 이번 원정대에 훈련대장이자 사진을 담당한 임흥식 대원은 숙소 베란다에 앉아 초모랑마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빛의 움직임을 담기에 여념이 없다. 초모랑마는 하얗게 우뚝 빛났다가 노을에 발그스름해지다가, 차가운 바람 때문인지 파랗게 질려 잠겨 버렸다.
저녁에는 식량담당 송정순 대원이 수제비를 끊여 준다고 해서 손뼉을 쳤다. 문제는 물이 100도에서 끓지를 않아 수제비가 풀어져 걸쭉했으나 오랜만에 한국 밑반찬과 함께 먹을 수 있었다. 5.200m 고지는 과연 숨이 찬 곳이다. 간밤에 잘 견디던 나도 잠을 제대로 못자고 헉헉 거렸다. 새벽 5시 에베레스트는 초승달을 머리에 이고 북두칠성과 은하수와 동무하며 빛을 깨우고 있었다. 칼날 같은 푸른 아침이었다. 아침에는 경미한 위급 상황이 발생했다. 몇몇 대원이 산소 부족으로 얼굴이 퉁퉁 부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미리 산소통을 준비했었다. 흡입하니 상태가 많이 호전이 됐다. 조식 후 팅그리(4,390m)로 출발해 머지않아 정상등반 계획이 있는 초오유 베이스캠프(4,950m)로 향한다.
<수필가 정민디>
‘대지의 여신’으로 불리는 초모랑마(에베레스트)가 얼굴을 드러냈다. 대자연의 장엄한 모습은 인간으로 하여금 머리를 절로 숙이게 만들지만, 한계를 극복하려는 도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오지에서 맛보는 우리 음식은 단순히 배고픔을 달래는 것이 아니라 기를 살려준다. 대원들이 수제비를 떠 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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