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스데이 다음날, 한 연방 상원의원이 공개적으로 사랑을 고백했다 : “난 인디애나 주민을 위해 일하는 것을 사랑합니다. 미국민들이 최선의 삶을 살 수 있게 돕는 것도 사랑합니다” 이어 상냥한 어조가 퉁명스럽게 바뀌면서 그는 내뱉었다. “그러나 난 연방의회는 사랑하지 않습니다” - 그래서 워싱턴정계에서 퇴장하겠다고 인디애나주 연방 상원의원 에반 바이는 3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건 누가 뭐래도 민주당엔 그 여파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호된 타격이었다.
2010년은 공화당의 해다. 전통적으로 집권당이 불리한 중간선거인데다 회복 더딘 경제 때문에 분노한 민심이 공화당의 승운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백악관과 연방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강력 여당이면서도 지난 1년간 업적 하나 번듯하게 실현해놓지 못한 채 공화당 방해전략에 끌려가며 전전긍긍하는 게 요즘 민주당의 모습이다. 당내 사기도 영 말이 아니다. 재선에 직면한 현직의원 상당수가 불안을 감추지 못한다. 지난주까지 4명의 상원의원과 10여명의 하원의원들이 불출마를 선언, 중간선거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는데 바이가 또하나의 폭탄을 던진 것이다.
바이의 퇴장이 충격적인 건 예상 못한 깜짝 선언인 때문만은 아니다. 바이의 의석은 민주당 지도부가 신경 쓸 필요조차 없이 확실한 떼놓은 당상이었기 때문이다.
1년여 전까지만 해도 미 정계의 떠오르는 별로 꼽혀온 54세의 바이는 인디애나에선 가장 인기있는 정치인 중 하나다. 연방 상원의원의 아들로 30세때 주 공직에 선출된 이후 주지사와 연방상원에 이르기까지 선거에서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재정경영을 잘해 세금을 내리고도 16억달러의 흑자를 후임자에게 넘겨준 주지사였고 재정적자 해소와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초당적 합의를 강조한 중도파 상원의원이었다.
그는 지명도와 인기와 신망, 거기에 모금능력까지 갖춘 나무랄 데 없는 ‘꿈의 후보’였다. 불출마를 선언한 상당수 후보는 당선전망이 어두웠다. 그러나 바이의 재선은 거의 확실했다. 상대를 압도적으로 리드하는 지지도에 든든한 자금을 확보했고 후보등록 서류에 서명까지 끝낸 준비완료 상태에서 “굿바이”를 선언한 것이다.
본인은 의회의 기능마비를 초래한 극단적 당파정치에 진저리가 난다고 떠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그의 선언 이후 공감과 개탄, 비난과 발 빠른 이해득실 계산 등 반응과 해석은 다양하고 분분하다.
상원내 중도파의 기수로 진보적 법안에 제동을 걸어온 그의 불출마 결정에 대한 리버럴 진영의 반응은 “초당적 영웅으로 관심 끌려는 책략” “변호사 아내의 재정관련 루머 폭로 막으려고 포기” 등 독설에 가깝다. “민생 위한 해결보다 편협한 이념 대결”에 몰두하고 있는 의회에 대한 그의 비판에 공감하고 함께 개탄하며 그의 퇴장이 “워싱턴을 일깨우는 경종”이 되어야한다는 언론과 학자들의 지적은 백번 타당하지만 현 정치기류로 보아 실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민주·공화 양당의 이해득실 계산이 한창이다.
민주당으로선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바이의 선언 직후 선거분석가들은 인디애나를 ‘민주우세’ 지역에서 ‘공화우세’로 당장 바꾸어 놓았다. 민주에서 공화로 넘어갈 위험에 처한 상원의석은 현재 7~8개로 점쳐지고 있다. 공화당 바람이 세게 불어 10개로 늘어나면 상원의 주도권이 바뀐다. 바이의 선언이 혹 초래할 민주당내 불출마 도미노도 우려된다. 내분부터 수습하고 공화당에 대한 수비 아닌 공격으로 기선을 잡아야하는데…민주당 지도부의 고민이 한층 깊어지고 있다.
웬 떡이냐 싶게 잘하면 인디애나 승리를 얻게 된 공화당은 표정관리를 할 만큼 희희낙락이다. 문제는 경쟁력 있는 후보 확보, 쉽진 않지만 민주당에 비하면 즐거운 고민이다. 당분간 ‘초당적 합의’는 공화당 사전에선 찾기 힘들 것이다. 민주당 법안에 사사건건 딴죽을 걸어온 방해전략이 들어맞았다고 자축하고 있을 테니까.
바이의 퇴장 선언이 정치에 염증을 느낀 때문인지, 다음 단계를 노린 전략인지, 또 경종을 울리려는 숭고한 목적인지, 자신이 몸담았던 정계 개선을 외면하고 혼자 빠져나오려는 무책임인지는 잘 알 수 없다.
한 가지, 워싱턴 정계에 중도파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읽혀진다. 지난해 퓨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당성은 계속 증가세를 보이는 무소속 39%, 민주당 33%, 공화당 22%로 나타났다. 당쟁이 너무 심하다는 응답은 무려 93%나 되었다. 민심은 갈수록 민주당의 파랑도, 공화당의 빨강도 아닌 보라색 중도인데 아이러니칼하게도 이들을 대변할 중도파 정치가들의 설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타협의 최전선이 될 중도파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들 자신만이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좋은 신호가 아니다.
선거까지는 257일이 남았다. 그동안 어떤 변수가 선거판을 뒤흔들지 모를 일이지만 정치가들이 민심을 못 읽는다면 유권자들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박 록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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