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 폭설로 워싱턴이 사실상 기능 마비상태에 빠졌던 지난 주말 테네시 주 내슈빌에선 ‘티 파티 컨벤션’이 열렸다. 워싱턴을 불신하고 연방정책에 분노하는 민심을 정치세력으로 묶어보려는 첫 번째 전국적 총회였다.
티 파티(Tea Party)는 조직화된 단체나 기구가 아닌 하나의 무브먼트다. 미 독립전쟁의 발단이 된 보스턴 차사건(Boston Tea Party)에서 이름뿐 아니라 조세저항 정신까지 함께 전수해 온 아직은 강력한 리더도, 일사불란한 조직도 없는 아마추어 시민운동이다. 태어난 지도 불과 1년이다.
지난해 2월 CNBC-TV의 릭 샌텔리기자가 오바마 주택구제정책의 형평성 문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수면아래 눌려 있던 민심의 분노와 불만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개인의 모기지 연체를 세금으로 돕는 것은 결국 근검절약한 성실한 사람들의 세금으로 무책임한 연체자를 구제하는 꼴”이라며 당시 시카고 상품거래소 취재현장에 나가있던 샌텔리는 주변에 가득 모인 사람들에게 물었다. “여러분은 이웃의 연체 모기지를 대신 갚아줄 생각이 있습니까?” “노오우우-” 샌텔리는 대상을 바꿔 다시 물었다. “오바마 대통령, 듣고 있습니까?”
백악관은 샌텔리의 ‘무식의 소치’라고 응수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부도덕에 대한 포상’이라는 불평이 55%에 달하는 가운데 샌텔리의 4분짜리 보도는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확산되면서 수백만명이 시청한 CNBC의 가장 인기있는 동영상으로 뛰어 올랐다. 샌텔리의 분노는 ‘티 파티 탄생의 빅뱅’이었다. 같은 불만을 참고 있던 사람들, 특히 보수주의자들이 함께 모이며 분노를 터트렸다. 2월말 백악관 앞 시위, 4월 중순 세금보고 마감일을 전후한 전국 곳곳 연인원 50만명의 항의 집회, 8월 헬스케어 개혁안 저지위한 타운홀의 반란, 9월 수십만(혹은 수만)이 참가한 워싱턴의 대규모시위…지난 한해 곳곳에서 소규모로, 중간 혹은 대규모로 기성 정계를 향한 항의 집회는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중년이상의 백인 중산층이 주류를 이루는 티 파티어들은 오바마 행정부의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책, 헬스케어 개혁을 격렬히 반대한다. 때로는 표현 방법이 리버럴 진영에서 ‘백인중산층 폭도’로 규정할 만큼 극단적이다. 오바마를 히틀러에 비유하고 이민 유권자에겐 영어를 제대로 하는지 문맹테스트를 치르게 하자는 억지 주장도 서슴없이 내뱉는다. 게다가 스피치와 인터뷰를 무사히 마치려면 아직도 손바닥 메모가 필요한 새라 페일린을 대선 후보로 지지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런 요소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티 파티 적극지지를 주저하게 한다.
그러나 ‘웃기는 사람들, 과격한 소수’로만 치부한다면 그건 위험한 과소평가다. 티 파티의 컨벤션엔 참석하지 않아도 ‘감세, 작은 정부, 개인 자유, 적자 없는 재정적 책임’ 등 그들의 기본 신념에 공감하는 미국인은 많다. 호감도 역시 기존 정당들 보다 위다. NBC-월스트릿저널 여론조사에 의하면 티파티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가진 응답자는 41%로 민주당 35%, 공화당 28% 보다 높다.
현재 전국에는 수천개의 티 파티가 산재해 있다. 중앙조직이 따로 없으니 중구난방이며 내부 갈등도 심심치 않게 노출된다. 그러나 시위로 점철된 첫 해를 보내고 지난 서너달 몇 번의 선거에서 역전승을 경험하며 티파티 일각에선 변신과 도약을 추진하고 있다. 자신들의 신념에 맞는 후보를 당선시키거나 맞지 않는 후보를 낙선시킬 수 있는 ‘정치 세력’으로 거듭나려는 것이다. 당장 티파티의 자산은 분노와 열정, 민심의 물결뿐이다. 이번 컨벤션은 말하자면 ‘분노의 조직화’라는 실험인 셈이다. 준비 작업으로 티파티의 정치행동위원회(PAC)를 구성하고 11월 중간선거 캠페인을 위해 100만 달러 정치모금도 계획했다.
티 파티의 정치적 잠재력이 상당하다는 것은 이미 증명되었다. 1월 매사추세츠 이변의 주인공 스캇 브라운 연방상원의원 당선의 일등공신이 바로 티 파티의 적극 지지였고 플로리다 연방상원 공화당 지명전에서도 이미 역전을 예고하고 있다. 캠페인 초반 31% 포인트를 리드하던 중도파 찰리 크리스트 현 주지사가 티 파티 후보로 강경보수를 표방하는 마르코 루비오 전 주상원의장에게 지금은 44% 대 30%로 뒤지고 있다.
큰 정부의 적자지출을 반대하고, 리버럴을 편애하는 미디어와 할리웃을 증오하며 자신들을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 ‘진정한 미국인(real American)’으로 자처하는 이들의 정치적 파워는 금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보다 정확하게 평가될 것이다.
동서부 할 것 없이 예년보다 추운 올겨울은 민심도 얼어붙은 ‘불만의 계절’이다. 연방정책에 화가 난다는 미국인이 75%에 달한다. 티 파티가 극단적 표현을 자제하며 민심에 어필하는 대안을 제시한다면 극우보수 뿐 아니라 무소속에게까지 공감대를 상당히 넓혀갈 수 있다는 의미다. 티 파티저변에 깔린 반이민 정서를 생각하면 우리에겐 그리 반가운 이야기가 아니다.
박록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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