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미한인산악회 티벳-네팔 횡단 등반기 <7>
■카롤라 빙하
베이징을 떠난 지 6일 째 되는 날이다. 랜드쿠르즈 6대가 숙소 앞에 서있다. 티벳과 네팔의 국경 도시 장무까지 우리와 동행할 티베트인 여섯 명이 왔다. 각자 자기 소유의 차라고 한다. 대원들과 가이드 텐진은 앞으로 남은 일정을 매일 번갈아 가며 다른 운전자를 만나기로 한다. 장무에 이르는 길은 우정공로이다. 라싸에서 서부 티벳의 끝에 위치한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네팔로 가자면 티벳의 두 번째 큰 도시 시가체를 거쳐야 한다.
4,794m 캄바라 정상선 환상의 경치
쟝즈의 옛 성은 영국군 침략의 상처담겨
시가체 가는 길은 목가적 벌판의 연속
우정공로의 남쪽 코스는 해발 4,794미터의 캄바라 고개를 넘고 티베트의 4대 성호 중 하나인 아름다운 암드록쵸 호수를 지나며, 카롤라 빙하 감상 후 3,800미터의 쟝즈에 도착하면 네팔 양식으로 건축된 쿰붐 사원을 볼 수 있는 길이다. 길은 얄룽창포를 계속 따라 간다. 카일라스에서 발원하여 방글라데시까지 이어지는 2,900여킬로미터의 강은 평균고도만 해도 4,000미터나 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을 흐르는 강이다.
가는 길에 나무들은 이제 초록을 버리려 하고 있다. 가는 길 양쪽에 모래 산들은 고원의 바람으로 목욕을 했는지 말끔하다. 군데군데, 강물을 끌어 올렸다가 단번에 떨어뜨려 전기를 만드는 양수 발전소가 보인다. 강변의 라이 보리밭들은 추수가 끝나 휑뎅그렁하다. 누릇누릇한 가을빛은 황홀했다. 가끔 강변에 한창 꽃이 피어 있는 유채 꽃밭을 스치기도 한다. 노란 비단 같은 유채 꽃밭은 사무칠 만큼 싱그럽다. 황량한 가운데 극적으로 돋아난 노란 빛이 살아 있어 가슴 설레는 희망으로 벅차오른다.
고개 길을 감아 올라가고 가파른 고개로 이어지는 해발 4,794미터의 캄바라 고개 정상에 오르면 환상처럼 찬연히 빛나는 터키 색의 암드록쵸(4,488m) 호수가 내려다보인다. 암드록쵸는 ‘분노한 신들의 안식처’ 란 뜻에 걸맞게 동요 없는 거대한 조용함이 있다. 하늘에서 보면 전갈 모양을 한 웅장한 자태로 누있고, 물이 흘러들지도 빠져나가지도 않는다고 한다. 때로는 비취색, 때로는 터키 색 호수에 매료돼 그 신비한 푸른 보석에 하염없이 붙잡혀 있었다. 티벳식 점심을 먹고 카롤라 빙하로 향했다.
설산으로부터 만년설이 응결해서 생성된 얼음형상이 마치 하얀 스카프를 두른 듯 산을 감싸고 있다. 산 밑으로는 빙하가 녹는 물이 시내를 만든다. 빙하를 보고 내려오는 길에는 거대한 인공호수가 있다. 물의 색깔도 인공으로 물감을 풀어 놓은 것 같다. 물이 부족해서 호수를 만들었다는 게 이해가 잘 되지는 않았다.
쟝즈(갼체)에 도착했다. 여기서 오늘 도착해야 할 시가체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 가면 된다. 과거 이 도시는 인도의 문물이 전래되는 길목이었고 네팔로의 관문이었으며, 차마고도상의 중요한 역이었다. 서쪽으로는 시가체로 남쪽으로는 나투라 고개를 넘어 인도의 동북부로 들어갈 수 있다. 쿰붐사원은 다른 사찰과 달리 아담했다.
네팔양식으로 유명한 쿰붐사원은 티벳 불교의 3대 종파인 샤카파, 카큐파, 겔룩파가 평화롭게 한자리에 모인 유일한 사원이다. 사원 내 유명한 백거 탑은 총 9층, 높이는 35미터로 탑 내부에 사찰이 있으며 사찰 내부에 탑이 있는 탑과 사찰이 조화를 이룬 특이한 건축물이다. 쿰붐은 ‘1만 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뜻이다. 스투파(불탑)에는 순례자들과 도시를 응시하는 ‘보호의 눈’ 네 쌍이 사방에 그려져 있다.
시내에서 사원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그리 높지 않은 산자락을 빙 둘러쌓은 고성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갼체 종(왕궁과 성)이다. 갼체 종은 본래 있던 산성을 14세기 들어 팍파 펠장포가 요새형 궁전으로 만든 곳이다. 9세기쯤 얄룽 왕조의 마지막 왕인 팔코르첸의 궁전도 이곳에 있었다. 과거 갼체 종은 라다크를 비롯한 주변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한 요새로서, 오랫동안 함락되지 않는 성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1904년 영국군의 침공으로 성벽과 상당수의 건물이 파괴됐으며, 중국 점령 이후 또 한 번 파괴돼 성벽 일부를 제외하곤 옛 모습을 거의 잃었다.
마을을 돌아보니 흙벽돌로 된 2∼3층 집들은 대부분 흙벽에 흰색 회칠을 해놓았다. 1층은 따로 외양간이나 마구간으로 사용하는 집도 있지만, 갼체의 집들은 상당수가 골목과 집 사이가 그냥 외양간이고 마구간이다. 해서 전통구역 골목에서는 유난히 많은 소들이 눈에 띈다. 집집마다 담과 벽에는 ‘쭤’를 붙여놓은 풍경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쭤’란 야크나 소똥을 칭커짚과 섞어 흙반죽을 하듯 둥그렇게 만든 덩어리를 가리킨다. 이 쭤는 볕이 잘 드는 벽이나 담에 붙여놓았다가 다 마르면 불쏘시개로 사용한다. 지붕에는 나뭇가지에 타르초를 걸어놓은 룽다가 집집마다 걸려 있고, 대문에는 티베트 불교를 상징하는 해와 달이 곳곳에 그려져 있다.
시가체 가는 길은 말 들이 노니는 목가적인 벌판으로 이어진다. 추수가 끝난 너른 들판에는 짚단들이 군데군데 쌓여 있고 밭이랑으로 흐르는 시냇물에는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편안한 가을 색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넓은 시냇물에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냇가에는 사람들이 앉아서 뭔가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빨래를 하겠거니 했다. 눈조리개를 움직여 초점을 맞추니 남자들도 여자들도 아이들도 다 벗고 목욕을 하고 있다. 가이드 텐진을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니 그제야 설명을 해준다. 일 년에 3일 만 목욕을 하는 데 오늘이 바로 그날 중에 한 날이란다. 곧 겨울이 오면 물이 얼 테니 깨끗이 씻고 빨래도 해 놓아야 한다.
아련한 시골 풍경이 끝나고 해발 3,900미터에 위치한 시가체에 도착했다. 내일은 판첸라마가 사는 화려한 타쉴훈포 사원을 방문하고 에베레스트 전망대 기념비가 있는 갸초라(5,216m)를 지난다.
<수필가 정민디>
자연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카롤라 빙하. 거대한 자연의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1만 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쿰붐사원. 탑과 사찰이 한 몸을 이루는 특이한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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