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그린 만화였더라? 어떤 사람이 몇 십층 고층 빌딩에서 떨어지는 중이다. 70층 사무실에서 커피를 들면서 밖을 내다 보던 사람이 뭔가 휙 스쳐는 것을 보았다. 50 몇 층 사무실에서 유리를 닦던 아줌마가 또 무었이 스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저런! 사람인가?” 그런데 막상 떨어지는 녀석은 태평하다. “난, 아직 염려 없다.” 40층을 스칠 때도, 30층을 지날 때도 걱정이 없다. 아직 30층이나 남아 있다는 것인지. 만화니까 그렇지, 고층 빌딩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무슨 경황에 층 수를 세겠는가? 대부분 땅에 닿기도 전에 이미 심장 마비로 죽는다던데. 그런데 만화가는 불과 몇 초 후에 닥칠 운명을 애써 모른척하는 이 사람의 표정을 아주 코믹하게 그렸다. “난, 아직 안죽었다.”
■ 루우불 박물관에서 아까부터 어떤 사나이가 그림 하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그림 제목은 “장군.” 허약한 한 사람이 초조한 표정으로 악마와 체스를 두고 있다. 악마가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장군”을 불렀다. 그러면 당연히 “멍군”하고 받아쳐야 하는데 .. 그런데 묘수가 안보이는 것이다. 그림속의 채스 판을 보아서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다. 그림을 보던 사나이는 몸부림치듯 소리를 질렀다. “이럴 수 없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데 어떻게 인간이 악마에게 지는가?” 박물관 경비원이 처음에는 이 사나이에게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고, 또 이 사나이가 몇번을 발작을 하듯 “이럴 순 없다”고 고함을 지르자 마침내 퇴장을 시켰다. 그런데 경비원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오니 이 사나이가 또 와서 그림을 보고 있는 것이다. 경비원이 난감해서 바라보자 이번에는 사나이가 경비원을 불렀다. “이리와 보시오. 여기, 딱 한 수가 남아있소!” 경비원이 닥아오자 사나이는 의기 양양하게 외쳤다. “이걸 이쪽으로 옮기면 바로 멍군이요!” 경비원은 박물관에서 십 여년을 일하면서 이 그림을 그져 평범하게만 보아왔다. 그런데 이 사나이 말을 듣고 다시 수를 헤아려 보니 “멍군”하고 받아낼 묘수가 딱 하나 있었던 것이다. “그래, 마지막 한 수가 남아 있었구나!”
■ 왕초 악마가 졸개 악마들을 뫃아놓고 어떻게 하면 인간을 보다 효과적으로 타락시켜서 지옥으로 끌어오느냐를 교육시키고 있었다. 이론 강의가 끝나고 다음에는 실습. 먼저 연장실을 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인간을 타락 시키는 여러가지 도구가 놓여 있었다. 돈, 명예, 보석, 마약, 갖가지 사치품, 그리고 이성을 유혹하는 묘약, 하다 못해 화툿장 나부랭이까지 있다. 그런데 한구석에서 녹쓴 도끼가 있는 것이 한 졸개 악마 눈에 띄었다. “이런 볼품 없는 도끼는 어디 쓰는 겁니까?” 왕초 악마가 말했다. “그거 아주 효과적인 연장이야. 희망이라는 끈을 자르데 쓰지. 제아무리 대단한 인물도 희망을 잘라버리는 순간 볼상 사납게 타락해 버리거든.”
■ 나는 요즘 빌딩에서 떨어지는 사나이의 만화 장면을 가끔 생각한다. 만화가의 의도가 몇초 후의 위기를 애써 외면하는 사나이의 우둔함을 보여주려는 것인지 모르지만 내가 받은 메시지는 “위기 속에 갖는 여유”이다. 혹시 누가 알아? 영화의 장면처럼 밑에서 광고용 큰 풍선이 떠 받히고 올라올지, 혹 건초를 잔뜩 실은 트럭이 마침 밑에 지나가고 있었다던지, 아니면 떨어져 땅에 닿고 보니 꿈이였다거나. 하여간 인생에서 만화같은 모양새가 없으라는 법은 없다.
■ 작은 규모였지만 회사를 건실하게 운영했던 K가 얼마전 사업을 접었다. 더 이상 늘어나는 손실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위로차 찾아간 나에게 K는 텅빈 창고 흐트러진 사무실에서 나를 맞았다. “천길 만길 벼랑으로 떨어지는 것같아.” 내 그 심정을 알지. 나도 두번이나 사업을 말아 먹은 경력이 있거든. 그런데 빌딩에서 추락하는 것과는 달리 사업에서 추락하는 것은 그래도 “소프트 랜딩(Soft landing)”이다. 사업을 거덜냈다고 사람이 다 죽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맨 바닥까지 내려가면 덤으로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다른 것이 보여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패를 도약의 중요한 계기로 삼지않는가? 헤르만 헷세도 말한 바 있다. “신이 우리에게 절망을 보내는 것이 어디 우리를 꼭 죽이려는 의도겠는가? 그보다 우리 속에 새로운 생명을 불러 이르키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묘수가 하나 남아 있다면 그것은 희망이다. K군이 새로운 생명력으로 꼭 재기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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