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때마다 빛을 발한 것은 그의 연설이었다. 뉴햄프셔 예선에서 패배했다. 그 곤경을 빼어난 연설로 극복했다. 그의 영적 스승인 제러마이어 라이트 목사의 증오로 가득 찬 설교내용이 폭로됐을 때 그의 정치 생명은 끝나는 것 같았다. 그 위기를 역시 연설로 벗어났다.
그가 다시 연단에 올랐다. 정치적 역풍이 거세질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그의 연설이 또 다시 위기에서 그를 구할 것인지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면서. 69분이란 긴 시간 동안 연설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 첫 국정연설은 그러면 소기의 효과를 가져왔을까.
“확신을 심어주기에 부족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지적이다. 파당적 정치를 지양하겠다고 선언했다. 재정적자를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경제문제에, 직업창출에 전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러나 어딘가 진정성이 결여된 느낌으로, 확신을 주는 데는 실패했다는 평가다.
“그 동안의 판단착오를 인정하고 새로운 어젠다를 제시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 기대는 그러나 어긋났다.” 샌디에고 유니온 트리뷴의 논평이다.
왜 중도세력 유권자들이 등을 돌렸나. 경제적 위기를 극단적 변화를 추구하는 기회로 삼았다. 과도한 재정적자, 월 스트리트 중심의 구제금융, 헬스케어 개혁으로 대표되는 의안 등이 그것이다. 거기에 진저리를 낸 것이다. 그 결과가 매사추세츠에서의 대반전이다.
과오를 인정하고 새 출발을 하라는 것이 일반 국민의 정서다. 국정연설에서 그 기미를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실망만 안겨주었다는 게 이 신문의 지적이다.
“마치 교장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번에는 워싱턴 포스트의 마이클 거슨의 지적이다
민주당은 놀란 토끼 같다고 질책을 받았다. 공화당은 사사건건 반대만 하고 있다고 주의를 받았다. 대법관들도 야단맞기는 마찬가지다. 정치적 표현과 관련된 최근의 대법원 판결이 잘못 됐다는 비난을 면전에서 들었다.
국민들도 꾸중을 들었다. 국민을 위해 내놓은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이 꾸중 뒤에 남는 것은 그러면 무엇일까. ‘지혜와 청정함으로 가득 찬 높은 타워에 홀로 있는 오바마’다.
그런 그가 정죄하고 가르쳤다. 그 가르침을 전 미국은 과연 따를까. 그가 던진 질문이다.
모순투성이다. 오바마 국정연설에 가해지는 또 다른 비판이다. 이것 조금, 저것 조금 짜깁기를 했다는 것이다. 증세를 이야기하다가 감세를 말한다. 새로운 재정지출의 필요성을 역설하다가 지출동결을 약속한다. 환경문제를 거론하면서 유전탐사를 새 정책으로 제시한다.
왜 모순투성이인가. 진보 좌파를 의식했다. 중도파의 반발을 고려했다. 보수 세력을 염두에 두었다. 중간선거의 해를 맞아 표를 의식한 것이다. 미래지향적이지 못하다. 낙관론이 결여돼 있다. 방어적이고, 분노에 차 있다. 쏟아지는 또 다른 지적들이다.
“69분 동안의 연설에서 해외정책에 대해서는 9분 동안만 언급했다.” 오바마 국정연설에 대한 다른 각도에서의 분석이다.
미국은 현재 두 곳에서 전쟁 중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다. 거기다가 계속 테러전쟁의 와중에 있다. 북한과 이란은 핵개발을 강행하면서 긴장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중동사태는 여전히 불안하다. 중국, 러시아 등 권위주의 형 독재체제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고….
그러나 해외정책과 관련된 구체적 언급이 없었다. 상징적으로 한 두 마디만 했을 뿐이다. 한 가지 구체적 제안은 동성애자 군복무 금지규정을 완화하겠다는 것으로, 오바마 독트린 발표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미국의 대통령이 연초 국정연설을 하면 전 세계가 귀를 기울인다.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지도자로 그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 그것도 전시의 국정연설은 적지 않은 부문을 해외정책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그 동안의 정석이다. 그것이 빠진 것이다.
무엇을 말하나. 중간 선거를 상당히 의식했다는 것이 아닐까. 전쟁은 인기가 없다. 해외정책에 있어 표심을 자극할 만한 이렇다 할 업적도 없다. 그러니…. 이것이 우선의 이유다.
또 하나가 있다. 미국은 점차 내부지향적이 되면서 해외로 눈을 돌릴 틈이 없다는 사실이다. 주요 해외정책 이슈를 마치 골칫거리를 다루는 것 같이 한다. 오바마 행정부가 보여 온 모습으로, 바로 이 점이 미국의 맹방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 시대의 첫 해는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유포리어와 함께 시작됐다. 두 번째 해, 그 벽두를 지배하는 것은 변덕스러움과 불안과 초조감이다.” 분노로 점철 된 듯한, 그러면서도 자존감에 스스로 갇혀 어딘지 현실감이 결여 된 오바마 국정연설에 대한 한 논객의 총평이다. 오바마 매직은 완전히 사라졌다는 말이다.
2년째를 맞는 오바마 시대, 그 기상도가 어쩐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옥세철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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