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현 존 케리 연방 상원의원 부인의 남편이자 하인즈 케첩으로 억만장자가 된 집안 출신인 존 하인즈 연방 상원의원(공, 펜실베니아)이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면서 상원 자리가 공석이 됐다. 공화당에서는 아버지 부시 행정부 하에서 법무장관으로 있던 딕 손버그를 후보로 내보냈다. 그 때만 해도 걸프전에서의 승리로 아버지 부시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몰랐고 손버그는 펜실베니아 주지사를 지낸 경력까지 있었기 때문에 승리는 ‘떼 놓은 당상’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였다. 그가 해리스 워포드라는 무명의 후보에게 패한 것이다. 이는 걸프전 승리에 도취해 있던 공화당과 부시 행정부에게는 충격이었다. 전쟁에만 신경을 쏟다가 불황으로 고통 받고 있는 미국민들의 민심을 잘못 읽은 것이다. 이 때 워포드가 들고 나와 재미를 본 것이 의료 보험 개혁이었다. 공화당이 어물어물 하고 있는 새 1992년 대선의 승리는 ‘신 민주당원’을 자처하고 나온 빌 클린턴에게 돌아갔다.
그 후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2010년 이번에는 정반대 현상이 벌어졌다. 에드워드 케네디 연방 상원의원(민, 매사추세츠)이 50년 가까이 갖고 있다 그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상원 의석이 무명의 공화당 후보 스캇 브라운에게 넘어간 것이다. 매사추세츠는 불과 1년 전 대선에서 오마바가 26% 포인트 차로 이긴 민주당의 아성이다. 이변도 보통 이변이 아니다.
이번 선거 패배로 연방 상원에서 민주당의 수퍼 머저리티 60석이 무너지면서 오바마의 의료 개혁 통과가 사실상 어려워졌다. 기술적으로는 브라운 당선자의 취임을 미루고 표결을 강행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 민의를 거슬렀다는 후폭풍에 휘말려 다가올 중간 선거에서 민주당이 전멸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러지 않아도 ‘매사추세츠에서 민주당 후보가 떨어진다면 안전한 곳은 하나도 없다’는 인식 때문에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탈표가 나오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브라운 후보는 이번 캠페인에서 오바마 의료 개혁 저지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매사추세츠는 주정부 차원에서 이미 전 주민 의료 보험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이는 오바마 의료 개혁안의 모델이기도 하다. 전 주민 의료 보험제를 직접 경험해 본 매사추세츠 주민들은 이 제도가 세금만 올리고 의료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등 부작용이 오히려 많다는 것을 피부로 실감하고 있다.
거기다 상원에서 60표를 확보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이 결정적인 반감을 샀다. 네브라스카 출신 상원의원의 표와 노조의 지지를 얻기 위해 그곳 주민들과 노조에게만 특혜를 준 것은 ‘추잡한 밀실정치’라는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로서는 오바마가 원하던 대대적인 의료개혁은 물 건너갔다는 것이 중론이다. 낸시 펠로시 연방 하원의장은 “연방 상원이 통과시킨 개혁안을 하원에서 통과시킬 표가 모자란다”고 시인했고 오바마 대통령도 오바마 개혁안 중 핵심 사항만 통과시키는 방향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케네디의 숙원사업이었던 의료 개혁이 그의 죽음으로 무산될 위기에 빠진 것은 아이러니다. 이는 오바마가 민심을 잘못 읽었기 때문이다. 1992년 선거에서 진 부시가 그랬지만 클린턴도 마찬가지였다. 1992년 대선에서 이겨 백악관과 연방 의회를 다 민주당이 차지하자 좌파 일변도의 정책을 폈고 그 결과는 1994년 중간선거에서의 참패와 의회 소수당 전락이었다.
2000년 양당의 화합을 내걸고 당선된 아들 부시도 우파 일변도의 정책을 밀고 나갔다 2006년 중간 선거에서 져 공화당은 의회 다수당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2008년 선거에서 역시 화합을 강조했던 오바마는 당선 후 지난 1년간 공화당의 협조를 구하기보다는 힘으로 밀어붙였다. 그 결과가 이번 보궐 선거다.
미국 유권자들은 묘한 데가 있다. 한쪽으로 쏠리는듯 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균형을 잡아준다. 오바마가 이번 선거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초당적인 지지에 발판을 둔 정치를 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클린턴과 부시의 전철을 밟으며 의료 개혁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좌절을 맛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경훈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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