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당의 집권이 선거를 통해 달성된다. 그런데 선거에서 이기자면 아니 경쟁하자면 정당의 정책 제시와 후보자의 경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돈이 꼭 필요하다. 시군 단위의 각 지방 선거가 아니라 많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아야 하는 주나 연방 정부의 선거에 있어서는 특히 필수불가결한 게 선거 자금이다.
엄청난 부의 소유자들인 대 회사들이나 기타 조직들이 선거 활동에 개입하는 경우 그들이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자들이 당선될 확률이 크기 때문에 법인체들의 선거 활동은 여러 제약 아래 있어 왔었다.
그러나 지난 21일 연방 대법원이 5 대 4의 결정으로 법인체들의 선거 활동에 대한 일부 규제들이 위헌이라고 판결해 심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수정헌법 제1조에는 연방의회가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떤 입법도 할 수 없다고 되어 있는데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언론의 자유가 자연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기업 등 법인체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번 결정은 약 100년 동안 연방 정부와 주 정부 선거에 대한 기업들의 참여를 제한해왔던 모든 규제의 기초를 뒤엎는 획기적인 것으로 공화당 쪽에서는 반색을 하는 반면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 쪽에서는 대기업 등 특수 이해단체들의 돈이 선거에 물밀듯이 모여지게 하는 청신호라고 비난한다.
연합된 시민들 대 연방 선거위원단(Citizens United v. Federal Elections Commission)이라는 제목의 이번 사건은 2008년 대선에 ‘연합된 시민들’이라는 보수 단체가 힐러리 클린전의 선거 운동을 방해하기 위해 만든 90분짜리 비디오를 케이블 TV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냐가 직접 쟁점이었다.
입법 제안자들의 이름을 붙인 맥케인 파인골드 선거자금법은 회사나 노동조합의 정치 광고는 예선 전 30일 이내 혹은 총선 전 60일 이내에는 방영할 수 없다고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연방 선거위원단이 ‘연합된 시민들’의 반 힐러리 비디오를 케이블 TV에 보여 줄 수 없다고 결론지은 사건이 대법원에까지 올라 온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평소 중도파로서 5 대 4의 결정이 보수 성향이냐 또는 진보 성향이냐를 판가름하는 앤소니 케네디 판사가 다수 의견서를 쓰고 존 로버츠 대법원장, 앤토닌 스칼리아, 클라렌스 토마스와 새무엘 얼리토가 그에 동조하면서 헌법적 근거로 결정을 내렸다.
다수 결정에 대한 반대에는 존 폴 스티븐스,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스티븐 브라이어, 그리고 오바마가 임명한 소토마요 판사가 서명했다. 특히 스티븐스 판사의 반대 의견에는 이번 사건 결정에 있어서 5명의 다수파가 법인의 언론 자유가 자연인의 언론 자유와 꼭 같이 수정헌법 제1조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고 주장한 것이 기발한 착상이라고 맹비난하였다. 스티븐스는 이어 다수파의 견해는 건국 초부터 회사들이 자치 정부를 위협할 가능성을 방지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이들 회사가 선거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개연성을 예방하기 위해 노력해 왔던 미국 국민의 상식을 파기하는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이번 대법원의 결정으로 회사들이 연방 선출직 후보자들에게 직접 기부하는 것만은 계속 금지되지만 회사나 노동조합들이 연방 의회나 대통령 선거에 있어서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 선거 광고를 제작하고 배부하는 데 있어서는 아무런 제한도 없어지게 되었다. 1947년부터 있어 왔던 금지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또 없어진 것은 맥케인 파인골드 법 가운데 예선 전 30일 그리고 총선 전 60일 동안에는 회사들이 선거 광고를 할 수 없다는 제한이다.
오바마를 격노케 했지만 이번 결정의 영향을 극복하는 방법이 별로 없다. 그의 임기 중 대법원 판사 결원이 특히 보수 경향이 있는 쪽에서 두세 번이라도 생겨 진보 성향 인사들로 충원하는 일이 있기 전에는 회사 등 이익단체들의 특정 후보 선거 광고는 홍수처럼 범람하는 일이 올해부터 시작될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돈의 위력이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다.
남선우 / 변호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