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한인교사회 회장 김 은주
내가 공립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던 십 수년 전에 한인 학부모가 주최하는 어느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이 행사도 그때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이 내게 가보라 해 일부로 지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저녁때 이 행사 장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우연히 어느 외국인 교사와 함께 행사 장소에 도착했다. 그 때 입구에서 외국인 교사를 본 한인 학부모 관계자들이 그를 향해 벌 떼같이 몰려왔고, 환영 인사를 하며 과도할 만큼의 관심을 보였다. 반면에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 관심을 주는 이는 없었다. 외국인 교사들에게는 코사지(corsage)꽃도 달아주고, 90도로 인사도 여러 사람이 하고 순서지도 친절히 전해주고 경품권(raffle ticket)에 관한 설명도 해 주고 자리까지 안내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야말로 개밥의 도토리였다. 나에겐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나에겐 아무도 코사지를 달아주지 않았다. 나에겐 아무도 친절하게 경품권에 관한 설명도 해 주지 않았고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때 나는 과거의 흑백 인종 차별을 떠올리게 되었고, 노골적으로 차별을 당한 흑인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많은 재미 한국인들이 고국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것 같다. 심지어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점을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이것은 마이클 잭슨이나 타이거 우즈처럼 백인 우월주의 병을
앓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여전히 소수 민족이라는 피해 의식 속에서 살고 있고, 그 질병을 우리 자녀들에게까지 유산으로 물려주고 있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교에서 반갑고도 놀라운 소식이 있었다. 그것은 한국어를 영재반 학생들에게 가르치라는 교장 선생님의 명령이었다. 한인 학생이 10%도 채 되지 않는 학교에서 영재반 학생들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라니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교장 선생님께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아보았다. 알고 보니 영재반의 타민족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의견을 올렸다는 것이다. 반면에 한국어반이 시작한 이후 몇몇 한인부모들과 외국인 부모들이 교장 선생님을 찾아갔다. 그들은 교장에게 따졌다. “Spanish 요청했는데, 왜 한국어냐며…” 오히려 불만을 토로했다.
교장 선생님은 이 사건이 내게 상처가 될까 염려하여 비밀리에 직접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한국어 반에서 배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Ms. J. Kim 선생님이 가르치는 한국어는 어떠냐고 학생들에게 물어 보았다고 한다. 학생들은 한국어가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한국어를 배울 때 자신이 특별한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한국어 교사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교장 선생님은 이 평가 자료를 가지고 한국어를 반대하는 몇몇 한인 부모 및 타인종 부모들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몇주 후 타 민족 부모님들부터 한국어반을 찬성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교장 선생님은 나에게 기쁜 마음으로 칭찬하며 격려해 주셨다.
뉴욕 뉴저지 정규 학교에 한국어 개설 및 유지로 많은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돈을 걷어서 학교에 갖다 주는 일은 열심히 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한국어가 개설되는 결정적인 시간에는 한인부모들이 걸림돌이 되고 막상 중국어나 일어가 개설되면 한인학생들이 제일 많이 중국어와 일어를 등록 한다고 한다. 이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 과연 우리 재미 한인들의 정체성은 이 미국 땅에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학구열에 불타는 한인들에게 민족의 정체성은 관심 밖의 일인 것일까? 한인 동포가 가지고 있는 이 “특별한 selfhood-less”는 어디에서 어떻게 발생한 것일까? 우리 스스로 이 병을 치우 받을 수 있을까?
역사만 탓하고 손 놓고 그냥 흘러가는 인생에 치우쳐 살아야 하나? 한국인은 어떤 얼을 가지고 사는 자인가? 미국에서 살면 한국인이 아닌가? 또 한국에서 산다고 꼭 한국인인가? 우리가 사는 땅, 더불어 사는 사람이 달라도 변치 않아야 할 것이 바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아닐까? 그럼 이 정체성은 어떻게 정의하고 누구로 인해 정체성를 유지하고 보관하고 배포해야 할까? 다시 한번 생각 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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